오늘 지하철 가판대를 보니 문화일보 외설때문에 청와대가 삐지니깐, 문화일보는 1면머리에 부동산 정책 욕하는 제목으로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감정싸움 들어가면 유치해지는 건 못배운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문화일보뿐만이 아니라 옆에 나란히 놓은 기타 신문들 대부분이 1면 머릿기사에 온통 '부동산 부동산 부동산'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었다.
부동산발 IMF시대가 다시 온 것마냥 난리치는 이런 기사를 보면 씁쓸해진다. 기자들이 갑자기 신경써 주는 덕분(?)을 보고 있는 당사자인 '돈 없는 서민'이라 쓸쓸하기도 하지만, 내 고향 부산, 지하철 가판대에 놓여있을 '부산일보 1면에도 부동산이 제일 큰 소식일까?' 싶어 또 씁쓸해진다.
알다시피 서울을 제외하고 테레비 뉴스를 보면 처음에는 전국뉴스가 나오고 뒤에는 각지방 방송사별로 지역뉴스가 나온다. 그런데 앞에 나오는 전국 뉴스라는 것도 실상 대부분은 '서울뉴스이지 전국뉴스'라고 불러주기엔 약간 민망하다. 엄밀히 보면 국회도 서울 소식이요, 청와대도 서울이요, 법원도 서울이요, 대다수 소식이 서울 소식인데도, '지방'어디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빼곤 서울 뉴스가 항상 '전국 뉴스'로 남한땅 곳곳에 전파를 탄다. 진정한 전국적인 소식이라곤 내고향 6시에서 각 지역별 산지 농수산물 소식말고 그다지 없어보인다. (아, 이것도 서울에서 주관하는 거구나)
'지방' 사람이라 아직까지도 헷깔리는 고민거리가 소위 '지방'이라는 범위에 '인천과 경기도도 들어갈까, 말까?'라는 것이다. 경기도 '지방'이 지방이 아니면, 그냥 '수도권'을 통칭하는 범위에 들어가는 건지, 아니면 '서울이라는 범위'에 편입시켜 말하는 건지 늘 혼동된다.(그리고, 분당과 일산이 시(市)가 아니라 '구(區)' 단위라는 건 서울 올라와서야 알게 되었다. 분당은 왜 성남시라고 부르지않지? 해운대 신도시라는 개념이랑 다른 건가?)
유학이나 출장, 해외 여행같은 이유로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보통은 그 나라 주요 공항을 거쳐 그 나라 국내선으로 한번 정도는 갈아타주는 일이 많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그렇게 한번 갈아탄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없고, 이상하게 여길 이유도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냥 인천공항에 내려서 전용고속도로타고 서울로 와버리면 'IN SEOUL WE TRUST'
'지방'으로 옮긴다는 얘기가 나오면 '근접성'이 떨어진댄다. '근접의 편리성'이라고 한다면 그 전제 조건이 최소한 두 군데 이상의 대상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어디와 어디가 가까워야 그렇게 편리함이 극대화되는 걸까?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억세디 억센 내 부산억양을 들으면 하는 얘기가 '여기도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서울에 뭐 할 거 있다고 서울 옵니까?'라는 식으로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막힌 얘기를 들은 경험이 좀 있었다. 따지고 본다면 서울에 서울사람 몇명이나 될까싶지만, 막상 서울에서 좀 살다보면 '서울 프리미엄'은 익숙해지는 반면, 지난한 일상의 고통만 남는 모양이다. 뭐 사는 게 다, 그렇기는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의 소외감을 잘 모른다. 설령 촌동네 출신이라고 해도, 자기가 촌동네 출신이라는 걸 감추려고 그러는건지, 지방에 대해 더 외면하려는 태도를 주위에서 종종보기도 한다.(그러면서 명절때는 꼬박꼬박 고향가기는 가더만...)
지역별로 자기 고향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 한번 얘기해보자고 하면, 여기 댓글이 쭉쭉 달릴 것이다. 우선 내 고향 부산부터 한가지만 얘기해보자.
"부산 말입니꺼? 말이 좋아서 제 2 도시, 최대 항구도시지, 울나라 100대 기업 순위에 들어가는 부산 기업은 딱 한개밖에 업심더~. 세계 100대 기업도 아니고, 우리나라 100대 기업중에 들어가는 게 딱 한개라 이 말임니더. 이래가꼬 무신노무 제 2 도시는 도시입니꺼~"
그럼, 완전소중 박정희, 부활을 외치는 제 3의 도시, 대구는 어떠한가? 밀라노 프로젝트 덕 좀 보고 있는가?
아니면, DJ시절, '개도 만원짜리 물고 댕긴다 카더라'고 카던 광주는 지금 어떤가? 목포의 눈물은 목포의 돈잔치로 확 바뀌었나?
어제 어디선 본 것같은데, 어느 시민단체에서 부동산정책 실패를 질타하는 내용이 진짜 씁쓸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는 '서울집값은 오르고, 지방은 내렸으니 쌤쌤이니깐, 실패한 것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건 서민들을 우롱하는 숫자놀음이다. 왜냐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 걸 그냥 취지만 옮겼다) 이 사람의 비판은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역시 '서울'이라는 한정된 시각이 대한민국 전체로 보고 있는 걸 무의식중에 넘어가고 있고, 또 전국민도 다 '그러려니~'하고 있으니 씁쓸하다.
'부동산때문에 서민이 죽어난다!'라는 이 소식은 이렇게 풀이해야 마땅하다.
'(서울에 있는) 청와대와 (경기도 과천에 있는) 건교부의 (강남에 살고 있는) 정책입안자들이 (강남땅부자로 대표되는) 투기세력들의 돈지랄에 휘둘려 (수도권 일대) 부동산 투기를 잡지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수도권을 떠나기 싫어하고, 떠날래야 떠날 방법도 없는 수도권) 서민들이 고통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비단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니다. 1500년전 신라 경주(오유에서도 그림 자료로 간간히 올라오는 세계4대 도시 경주 그 당시)도 경주 집중화 문제가 지금 서울집중화보다 훨씬 심각했던 걸로 안다. 결국 집권자들이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자기 눈앞에 보이는 곳만 신경쓰고 말았다는 걸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권력이 있는 곳에 돈이 있고,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서울의 이런 소식을 자꾸 접하다 보면, 싼값에 필요한만큼 자기땅 가지고 사는 '지방' 2류 국민들도 '때되면 나도 한탕해야겠군'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심어준다는 게 진짜 문제일 것이다. 전국토의 예비 투기꾼 양성 교육을 정부+언론이 해주고 있는 셈이다. 바른 자세라면 경제범위에서 땅과 건물이 빠지도록 다른 쪽으로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근본적 해결책이 될 터인데, 지금은 '부동산이 문제다'라고 얘기하면 할수록, 부동산이 진짜 문제가 된다. 물론 문제가 아닌데 문제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문제다. 그런데, 문제라고 얘기하는 문제도 동시에 문제다. 문제는 많은데, 그 어디에도 해결책이 없다는 게 문제고, '왜 해결책이 없냐?'고 따지는 그 태도 또한 문제다. (이렇게 되면 세상만사 문제만 있지 답은 없다 ㅡㅡ;)
언론이 주식사라고 할 때가 팔 때라는 얘기가 거의 다 사실이듯, 지금 부동산 소식을 들으면 이제 정말 작전 끝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진짜 투기꾼은 자리 떴다라는 얘기도 나오는 걸 보면 믿을만한 얘기는 뭐가 뭔지 알래야 알 방법이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몰라도 'Republic of Seoul의 문제'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니 가뜩이나 추운 날씨가 '지방 사람'에겐 더 을씨년스럽다.
부산은 지금도 한낮엔 그래도 반팔입어도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