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터무니가 없는데 근거는 설득력이 있는 가설은 아주 희귀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가설은 기존의 관념들을 재해석하게 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하죠.
오늘은 그런 흥미로운 가설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이하 책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 기억나는데로 확인해가면서 인용,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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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구분능력이 동물의 자명한 능력은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이 색맹이고 개도 색맹이며 아주 잘들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색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 색지각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참으로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니라고 할수가 없다.
이 결론이 맞으려면 두가지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1. 색지각으로 마음상태를 알수 있다.
-> 마음상태와 색이 관련 없으면 이 주장은 시작도 못한다.
2. 인간의 색지각 능력은 마음읽기에 적합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마음읽기가 색지각 능력의 부차적인 기능이 아니라 본질적인 기능이기 위한 명제다.
우선 마음상태의 변화를 색지각으로 알수가 있을까?
답은 '있다'이다. 얼굴색으로 마음상태를 알수가 있다.
마음상태가 바뀌면 몸상태가 바뀌고 이는 몸속의 혈류량이나 혈류 산소포화도를 바꾼다.
그것은 얼굴 피부 맨살 아래로 흐르는 피도 마찬가지며 이것은 얼굴색의 변화로 반영이 된다.
이런 변화를 사실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반응하고 있다.
최근에 이것과 관련된 재미있는 광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쿠퍼스 광고다.
이 광고에서는 이런 마음상태 변화에 따른 얼굴색 변화 현상을 아주 극단적이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다음, 인간의 색지각 능력은 마음읽기에 적합하게끔 설계되어 있나?
답은 역시'그렇다' 이다. 인간 색지각 능력은 얼굴색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처럼 관찰이 된다.
인간의 눈으로 볼때 피부색은 '인지적으로' 무색이다.
피부가 색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피부색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입속의)침의 맛을 지각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있는 열기를 인지하지 못하듯이
우리는 피부색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색 지각 스펙트럼은 피부색의 반사 스펙트럼과 상관성을 가진다. (관심있으면 책으로 확인 바람)
인간에게 피부색은 일종의 기준색이고 그래서 피부색은 다른색과는 달리 마땅히 범주화 되지도 못한다.
(인종주의적 비판이전까지 살색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일수도 있다. )
인간 눈의 기준색이 피부색이라는 것은 인간의 색지각에서 가장 민감한 색이 피부색임을 의미한다.
쉬운 예가 체온이다. 인간의 기준온도는 체온이고, 인간의 온도지각 민감도는 체온을 기준으로 가장 높다.
(우리는 정상체온 기준으로 2~3도정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무려 차갑다거나 뜨겁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침도 마찬가지다. 자기 침에서 맛을 느낀다면 다른 음식의 맛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격게 될 것이다.
아무튼 눈의 기준색이 얼굴색이기 때문에, 얼굴색을 기준으로 조금만 빨개져도 알수가 있고, 조금만 노랗게 되도 알수가 있게 된다.
이 주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한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겨야 한다.
인간의 색지각 기준색이 피부색이라면, 그리고 인간개체간의 색지각 능력에서 큰 편차가 없다면 인류의 피부색은 당연히 비슷한 한가지 색이어야 한다.
그러나 잘알다시피 인류는 크게 흑인, 황인, 백인으로 나눠져 있으며 그 나눔기준은 당연히 피부색이다.
이런 현상적 상태는 앞서의 인간의 색지각 기준색이 피부색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엉터리였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라 말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은 반대로 앞서의 주장에 대한 아주 강력한 증거다.
왜냐하면,흑인, 황인, 백인의 피부색은 적어도 빛 반사스펙트럼 상에서 보면(믿기 어렵겠지만) 모두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책으로 확인바람)
예컨데 토마토나 바나나 같은 상당히 다르게 보이는 두 물체는 스펙트럼 상에서도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는데, 얼굴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즉, 흑인, 황인, 백인 모두 얼굴색이 서로 상당히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비슷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색지각능력이 피부색의 변화에 너무나 민감하기 때문에 인종간에 피부색은 사실은 약간의 차이인데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덧붙여 이 결론이 참이라면, 그러니까 인간의 색지각 능력이 피부색의 변화 감지를 통해 마음상태를 읽기 위한 것이라면은 얼굴이 털로 덮혀있는 다른 영장류의 색지각 능력은 어떤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얼굴이 털로 덮혀 있으면, 얼굴 색을 확인할수가 없고, (피부색 변화 감지가 본질적인 기능인) 색지각 능력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기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상은 이 가설의 예측과 일치한다.
여우원숭이, 안경원숭이 같이 얼굴전체가 털로 덮혀있는 영장류는 색맹인 반면, 얼굴의 일부만 털로 덮혀있는 영장류는 암컷만 색시각이 있으며, 얼굴 대부분에 털이 없는 영장류는 색지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이 된다.
이는 (영장류의 경우) 눈의 색지각 능력이 얼굴에 있는 털분포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진화하였음을 암시한다.
얼굴은 가능한 얼굴색 변화가 잘 드러나게 진화하였고, 눈은 가능한 그 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진화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상태를 서로 드러내놓고 공유하는 것이 종의 생존이나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