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는 산신령으로 취급받던 호랑이들이
일본넘들의 고기로 전락한 것을 보면 웬지 슬픈..ㅠ
[임기상의 역사산책 21]일본인들의 호랑이와 표범 사냥터가 된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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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잡은 포획물은 기차 화물칸 한 칸을 가득 채웠다.
정리해보면, 호랑이 두 마리, 표범과 수호, 곰 각각 한 마리, 멧돼지 세 마리, 산양 다섯 마리, 늑대 한 마리, 노루 아홉 마리, 다수의 기러기와 청둥오리, 꿩이 있었다.
각 언론은 이번 사냥은 대성공이라고 보도했고, 야마모토는 으시대며 다녔다.
사냥꾼들은 원산으로 집결해 포획물을 여관 뒷마당에 쌓아 놓았다. (사진=에이도스 제공) ◈야마모토, 모교인 교토의 도시샤 고등학교에 호랑이와 표범 잔해를 기증하다
도시샤 고등학교 표본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호랑이 박제 (사진=에이도스 제공)
같은 표본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표범 박제 (사진=에이도스 제공) 야마모토는 호랑이 두 마리의 고기는 다 먹어 치웠으나,모피 등 다른 잔해는 모교인 도시샤 고등학교에 기증했다.
표범 한 마리와 수호도 같이 기증했다.
호랑이 두 마리 모두 중간 크기로 젊은 호랑이다.
표범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으나 어느 것이 호랑이와의 혼혈이라는 기록은 없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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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호랑이와 표범은 언제 나타났나?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조선 호랑이와 일본 순사 미야케 요로우. (사진=엔도 키미오 제공)
1921년 10월 추석을 앞두고 경주 대덕산에서 나무를 베던 주민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고 주재소에 신고했다.
마침 일본 왕실의 귀족이 경주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주재소는 비상이 걸렸다.
이 기회에 공을 세우자고 나선 미야케 요로우 순사는 길닦기 공사 중이던 조선인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를 쏘아 죽였다.
이후 지금까지 93년간 남한에서 호랑이가 나타난 적이 없다.
북한에서는 지난 1993년 자강도 낭림산에서 호랑이 일가족 3마리가 생포되었다.
이 가운데 한 마리가 1999년 1월 서울대공원에 반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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