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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l_23417
    작성자 : 여름하늘
    추천 : 17
    조회수 : 2080
    IP : 182.172.***.19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2/04/03 05:41:25
    http://todayhumor.com/?lol_23417 모바일
    [감동실화]정글 돌던 신지드.
    벌써 수십 판 전에 일이다. 내가 갓 배치고사를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심해에 내려가 살 때다. 우리 팀에 스마이트를 든 신지드가 있었다. 봇라인에 소라카와 무덤이 있어 강한 압박이 예상되니 갱킹을 자주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니 라인을 당기고 막타만 챙기면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좀 대충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갱킹 한번 가지고 흥정하겠소? 귀찮거든 나는 다른 라인 갱킹을 가겠소."

     대단히 무뚝뚝한 신지드였다. 뭐라 항변하지도 못하고 갱킹이나 잘 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정글을 돌았다. 처음에는 봇에 오는가 싶었으나 5렙을 찍을때까지 레이스를 잡고 작골을 잡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봇라인에 와도 될텐데, 탑이랑 미드만 왔다가고 통 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와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상대 무덤은 곧 빅뻐킹소드를 뽑을 기세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정글은 더 돌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갱이나 와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파밍을 해야 템이 나오지, 카탈이 재촉한다고 로아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라인을 타워 코앞까지 당겨놓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리란 말이오? 신지드양반 외고집이시구먼. 무덤이 cs를 엄청나게 먹고있다니까요."

     신지드는 퉁명스럽게,

     "미드한테 로밍이나 오라고 하오. 난 안 가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오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 킬먹기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손이 꼬이고 늦어진다니까. 갱킹이란 제대로 들어가야지, 갔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상대 정글 부쉬에 들어가 태연스럽게 블루가 젠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상대의 블루를 카운터하고 6렙을 찍더니 다 됐다고 갱을 온다. 사실 갱킹은 아까 라인 당겼을때 왔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소라카를 놓치고 무덤만 잡은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글을 돌아 가지고 게임을 이길 턱이 없다. 신지드가 정글을 돈다는거 자체가 트롤이다. 그래 가지고 성질만 더럽다. 갱킹 올줄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정글러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신지드는 태연히 용 앞에 핑와를 박고 상대팀의 와드를 부수고 지나갔다. 그의 인벤에 놓인 흡총과 똥신발, 그리고 핑와를 보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정글신지드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 소나는 신지드가 참 잘한다고 야단이다. 전판에 같이 했던 정글러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판의 정글러나 신지드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소나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신지드가 달려와 깔아주던 끈끈이는 백발백중이었으며, 플링으로 던질때도 원딜과 가장 가까운 각도로 던져주어서 쉽게 킬을 딸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맵을 읽고 필요한 곳에 꼭 알맞은 때에 갱을 와주는 정글러는 심해에선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신지드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시즌 1, 이블린이 처음 등장했을때 사람들은 OP의 등장이라고 두려워하며 경배했다. 그러나, 요즘 이블린은 닷지유도용 말고는 도무지 써먹을 곳이 없다. 예전엔 은신해서 다가와 뒤통수에 스턴을 쑤셔넣는 은밀한 갱킹으로 라이너에게 확실한 킬을 보장해 주었다. 물론 과거의 영광이다. 요즘 이블린은 고인중에서도 최고의 고인으로 그 악명이 자자하다. 그렇지만 어디선가는 이블린의 상향을 믿으며 꿋꿋하게 이블린으로 경기를 캐리하는 장인들이 있을 것이다.

     쉔만 해도 그렇다. 언제나 고인을 언급할때 빠지지 않던 쉔은 궁극기를 써서 아군을 도와주러 갔다가 아군과 함께 죽어서 원플러스원이라는 인식과 함께 쉔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최근 상향되어 랭겜 벤리스트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쉔이 쉔레기라 불릴때도 나름대로의 근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플레이 해왔던 쉔 장인들이 있었다. 궁으로 딸피인 아군을 살리고 적을 도발해서 아군이 피할 시간을 벌어주고 장렬하게 죽어갔음에도, 피더라고 욕을 먹었다. 하지만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쉔을 파던 장인들은 쉔이 버프되자마자 단숨에 폭발적으로 승을 거두고 더이상 쉔을 골라도 사람들이 닷지를 하거나 욕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정글신지드도 그런 장인정신으로 정글을 돌았을 것이다. 나는 그 신지드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정글을 돈담.' 하던 말은 '그런 장인이 나 같은 베인충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심해에서, 어떻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신지드를 찾아가서 블루버프에 엘릭서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신지드의 아이디를 친구추가했다. 그러나 그는 내 초대를 받아주지 아니했다. 나는 그 신지드가 돌았던 정글을 돌아보다가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봇라인의 베인충과 블리츠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숨어있지 않은 부쉬를 다 뽑아버릴듯한 기세로 블리츠의 그랩이 날아가고 있었다. 상대편 라이너는 둘 다 우리편 베인을 열심히 두들겨 패서 퍼블을 먹었는데 말이다. 아, 그때 신지드도 저런 짓을 반복하던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가 . 열심히 정글을 돌다가 적절한 지원으로 미드 라이너에게 퍼블을 먹여주던 신지드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가는 팟마다 헬팟이면 니가 병신이다.' 라는 와우(WoW)의 명언이 새어 나왔다.

     오늘 랭겜에 들어갔더니 1픽이 갱플을 고르고 정글을 외친다. 갱플 너프 전에 탑솔로 가서 캐리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1픽이 되어본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계속 5픽이라 서포터 말고 다른 캐릭을 고를 수 조차 없다.  문득 수십판 전 정글 돌던 신지드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하늘의 꼬릿말입니다
    소재를 준 춘식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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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03 06:00:17  1.24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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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2/04/03 07:45:38  211.230.***.60  
    [7] 2012/04/03 08:48:34  165.13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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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2/04/03 09:38:02  118.221.***.8  제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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