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서 퍼왓어요^^
동생아, 누나다.
너한테 뭔가 글 써보는 게 참 오랜만이다.
가끔 너랑 판 얘기, 톡 얘기 했었던 게 기억나서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톡이란 걸 써본다.
동생아, 밥은 챙겨먹고 다니니?
우리 3월 초에 이사 와서 너는 이 곳에 새로운 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복학을 했지.
한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은 학년이기 창피한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원하시니까 복학을 한 네가 그래도 좀 대견했었어.
이 동네에 친구 한 명 없고 아는 사람 한 명 없지만 그런 대로 다시 마음 잡고
학원도 꼬박꼬박 나가고 그러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정에 다시 평화가 오나보다 싶었었어.
사실 우리, 어려서부터 많이 힘들었었잖아.
아빠는 매일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엄마, 나, 너를 모두 싫어했었고,
5살이었던 너에게 모진 매도 많이 때렸었고,
걸핏하면 집을 나가고 1년 넘게 월급을 안 줄 때도 있었지.
그리고 너도 한동안 게임에 빠지고 문제가 많았었잖아.
그러고 보면 지난 십 수 년 동안 우리 너무 많이 운 것 같지 않니?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너의 모습은 너무 안쓰럽기도 했지만
굉장히 기대되고 나와 엄마에게는 큰 희망이었어.
그런데 얼마 전, 너는 너보다 한 살이 어린 같은 학교 동기와 시비가 붙어서 싸우러 나갔었지.
그런데 그 애가 6~7명의 동네 친구들을 더 데리고 나와서 집단폭행이라면 집단폭행일 수 있을 정도로
맞고 들어왔었잖아. 너가 아무리 강한 척 하고 말해도 너가 어디 가서 처음으로 맞고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속상했었다.
표현은 안 했지만.
넌 그 때 얼굴을 집중적으로 맞아서 눈 주위 뼈가 부러지고 코뼈도 부러지고도
엄마 아빠에게 숨기고 몇 시간 후에야 못 견디고 구토를 하고 새벽에 병원에 갔었지.
그 때 난 너에게 미련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남자구나 했어.
네가 평소에 잘 생겼다고 말하던 얼굴은 시퍼렇게 멍들어있고 부어 있고,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얼마 전 네 얼굴을 자세히 봤을 때는 붓기가 빠졌는데도 눈이 푹 꺼져있는 것 같아서
나도 많이 속상했어.
이 일이 있고 나서, 깨진 유리알을 붙여놓은 것처럼 겨우 붙여놓은 우리 가정에 다시 금이 가고 있었지.
처음에는 우리 엄마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싹싹 빌던 그 너와 시비 붙었던 동기(ㅈㅁ)네 엄마가
그 집 아저씨랑 같이 막 뻔뻔하게 나오기 시작했어.
그래서 기 세던 우리 아빠도 우울증에 빠졌고, 엄마도 매일 매일 우셨어.
너도, 많이, 힘들었지?
재수생이라는 핑계로, 그리고 어려서부터 너에게 당한 게 많다는 피해의식으로,
너에게 너무 관심 가져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병원에 가느라 학교를 나가지 않던 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너는 너무나도 학교에 가기 싫어했지.
그 아이가 퍼뜨려 놓은 너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네가 다니는 이 새로운 학교를 무사히 졸업만 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꼭 학교에 가야한다고 하는 아빠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겠지.
그 딜레마가, 결국 집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나왔던 거겠지.
동생아, 네가 집을 나간 건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빠는 점점 더 우울해져가고, 하루에도 죽겠다는 말을 열두 번도 넘게 한다.
그나마 신앙심 깊은 엄마도 매일 밤 네 방에 들어가서 울며 몇 시간 씩 기도를 하셔.
아빠가 많이 변화한 것 같아 마음 놓았던 나와 엄마는 다시 너무나도 우울해 진 아빠를 보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해.
다시 네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네 친구가 너를 책임지고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그 말에 기분 좋았다가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시 우울해하셔.
네가 너무나도 싫어했던(지금도 싫어하는지..?) 아빠지만,
나랑 엄마한테는 네 얘기 꺼내지도 말라고 해놓고
아빠는 계속 네 얘기만 한다.
우리 세 명, 밥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 나누다가도 5분에 한 번씩 한숨 쉬는 아빠야.
네 앞에선 표현 안 했지만.
동생아, 엄마 아빠가 너를 괴롭히려고 학교에 다니라고 하는 게 아니야.
이 말은 너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너 17살 때 학교 안 다니던 1년 동안 너의 라이프스타일을 떠올리면, 객관적으로, 넌 학교 다니는 게 맞아.
넌 그래도 엄마 아빠가 많이 원망스럽겠지.
널 믿어주지 않는다고. 너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동생아,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정말 그게 아니야.
갓 졸업한 내가 생각해도 고등학교 시절은 너무나 크고 소중한 추억이고,
네가 그 시절을 보내지 않는다는 건, 내가 볼 때도 너무 아까워.
그런데 엄마 아빠는 오죽하겠니?
사회생활을 할 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건 엄마 아빠가 생각했을 땐 너무 큰 타격일거야.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십중팔구가 그렇게 생각할걸?
너한테 엄마 아빠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야.
다만, 너 혼자 그 피해의식에 빠져서 상처 받고 마음 아파하는 게 너무 싫다.
안 아파도 되는 일에 말이야.
동생아, 잘 지내니?
사실 나는, 네가 집을 나가면 좋을 줄 알았다.
너 때문에 피해 보는 것도 너무 많았고, 네가 매일 화내고 욕하고 하는 것도 너무 싫었어.
곰살 맞게 웃다가도 내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하면 바로 욕하는 그런 모습들이,
예상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고, 무섭기도 했고, 다른 집 동생들은 누나한테 안 이런다는데..
이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네가 너무 미웠던 게 사실이야.
그래서 처음 네가 집을 나갔다는 얘기를 전화로 전해 들었을 때,
그 일 때문에 슬퍼할 엄마 걱정은 했지만,
그리고 화낼 아빠 걱정은 했지만,
네 걱정은 많이 안했어.
앞으로도 안 할 줄 알았고.
그런데 있잖아, 진짜 이상해.
학원에서 모의고사 보는데 네 생각 때문에 지문도 안 읽히고 자꾸 집중력도 떨어져서 진짜 짜증났는데,
심지어 어제는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더라.
또 웃긴 게, 나 너 때문에 울기도 했다.
웃기지.
어제는 네가 보고 싶어서 싸이를 들어왔었는데, 우리 일촌도 아니더라.
동생아.
ㅈㅁ네 엄마 아빠는, 이제, 법적으로 하라고 당당하게 나온다.
그래서 아빠가 경찰서에 갔는데 말이야, 피해자 진술이 필요하대.
그런데 네가 없잖아.
아빠는 그 일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네가 없으니까 가장 이익 보는 사람들은 ㅈㅁ네 엄마 아빠다.
피해자 진술을 못하니까 ㅈㅁ는 그냥 계속 학교 다녀도 되고,
치료비 안 물어줘도 되니까.
동생아.
엄마는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전화를 받는다.
외가에서 한 번, 친가에서 한 번.
그리고 끊을 때마다 한숨을 쉰다.
동생아.
오는 수요일에 너 병원 가야 된다더라.
검사 받아야 된대.
너 얼굴 평생 잘못되면 어떡하냐.
그건 내가 용납을 못하겠다.
그래도 봐줄 건 얼굴이었는데, 너 큰일 난다.
동생아.
지금 당장 집에 돌아오라는 게 아니야.
사실 나도 네가 집에 돌아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막막하다.
그런데 있잖아,
걱정하는 엄마 생각해서, 폐인 되어가는 아빠 생각해서,
그리고 나 생각해서, 엄마 아빠 부담스러우면 나한테라도 연락 좀 주라.
엄마는 지금도 네 방에서 기도중이다.
아빠는 지금도 마루 소파에서 폐인처럼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진짜 믿는다.
네가 뭘 해도 할 거라는 것도 알고,
네가 뜻이 있다는 것도 알고,
너도 너무 힘들었다는 것도 알아.
이제야 알겠어.
이때까지 몰라줘서 미안해.
이제부터는 우리, 공유하자.
내가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는데, 그 짐 같이 지면 좀 더 낫지 않겠냐.
저번에 할머니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바래다 드릴 때 차에서 투애니원 노래 들으면서
우리 생쇼하던 거 기억나냐?
오늘 차타고 집에 오는데 그 노래들 듣는데 나랑 엄마랑 아빠랑 아무 말도 안했다.
이만 줄일게.
동생아.
보고싶다.
사랑하고.
사무치게 그립다.
p.s. 앞에 가족사 라던지 그런 거 설명해 놓은 건, 이걸 읽고 네가 너라는 걸 알았으면 해서야.
그리고 혹시라도 내 동생 친구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제발 동생한테 알려줬으면 좋겠어.
p.p.s. 몽이 보고싶지 않냐.
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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