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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이 한 달은 제 기억에 오래 남는 달이 될 것 같습니다.
5월 첫 금요일 아침, 가족모임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실 예정이던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옆구리 통증이 있다고 하셔서 근무 중인 병원에 들르시도록 했습니다.
그 날 저녁 늦게 도착하신 아버지를 맞아 안부를 묻고 진찰을 해보니 우측 옆구리 통증이 있어 요로결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X-ray 를 확인하고 통증 조절을 위해 수액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잠시 후 확인된 소변검사에서는 예상했던 혈뇨 외에 염증소견이 확인되었습니다.
복부 X-ray를 보니 통증이 있던 우측이 아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좌측 신장 부위에 3cm 가량의 큼지막한 신장결석이 보이는 겁니다. 비뇨기과 전공인 동기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수술이 필요하다며 입원치료를 권했습니다.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해 평소 잘 조절하지 못했던 당뇨와 혈압을 조절하면서 수술준비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후 수술준비의 일환으로 심혈관 질환 확인을 위해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고 트레드밀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심혈관 조영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직접 트레드밀 검사 결과지를 열어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의미 있는 소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오랜 혈압과 당뇨로 자각증상 없이 서서히 심혈관이 망가져 있었던 겁니다. 결국 심혈관 조영술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행히 큰 분지는 심하게 막히지 않아 스텐트 삽입은 하지 않았지만 작은 분지 몇 개는 거의 막힌 부분도 있어 앞으로 수술 뒤에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등 부위를 열어 신장을 직접 통과해 들어가 큰 결석을 레이저로 부숴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병실로 올라온 아버지는 통증이 심해 많이 괴로워 하셨지만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곧 퇴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지방으로 향하는 기차에 타신 모습을 보고, 이제 한 주간의 고생이 끝났구나 싶어 맘이 편해졌습니다.
헌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2일 뒤 오전, 아버지께서 왼쪽 하복통이 발생해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수술한 병원이 아닌 지방의 대학병원에선 복부 CT 촬영 결과 결석이 보이긴 하지만 통증의 원인이 아닌 것 같다며 관장을 다시 해본다고 했다가, 반응이 없으니 수술했던 병원으로 다시 가야한다 했다가 하며 혼란을 겪고 있었고, 저는 옆에서 직접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하루 종일 심한 통증과 혼잡한 응급실에 이리저리 치이며 검사를 받고 겨우 통증이 조절되어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이번에는 새까맣게 검은 변을 봤다는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몇날 며칠에 걸쳐 이어진 심한 통증으로 스트레스성 궤양에 의한 위장관 출혈 가능성이 있어 다시 근무하던 병원으로 올라오시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보호자로서 긴 일정이 이제야 끝나나 했는데 자꾸 다른 문제가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입원 중인 아버지를 찾아뵙고 내시경 결과를 듣기 위해 주치의 선생님과 만나보니, 내시경 결과가 좋지 않다는 얘기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병변의 불규칙한 가장자리의 모습이 위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 두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운동도 하셨고 비교적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께 여러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발생했습니다. 큰 결석과 염증이 발견되어 수술을 준비하던 중, 협심증을 진단받게 되어 치료를 시작, 갑자기 내려온 남아있던 결석에 의한 통증에 스트레스성 궤양 출혈을 겪었고, 이어서 위암이 의심된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산처럼 커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에, 응급실에서 자주 보던 기운 없는 노인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 했습니다.
응급실에서 복통이나 다른 문제로 내원했다가 검사 도중 우연히 암을 진단하게 되어 보호자께 설명을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노인이 되신 분들이 특별한 검사 없이 지내다 다른 문제로 흉부 사진이나 뇌, 또는 복부 CT를 확인하고, 상당히 진행된 암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 전 당황스러워 하는 보호자께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그동안 암 있는 줄 모르고 지내셨으니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환자분 같이 고령인 경우는 적극적인 치료가 꼭 상책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가족들이 잘 상의해보셔야 합니다
헌데 직접 보호자가 되어보니 그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이제 느끼기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아버지가 암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아니 꼭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노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내일 아침 전 어떤 표정으로 조직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있게 될까요? 이제까지 저는 좋지 않은 소식을 처음 접한 보호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했던 것일까요?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암세포 소견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소재 활용을 허락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csj3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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