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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2월 대한협회 무안지회 회원을 역임했으며 1910년 11월 전라북도 무장군 사립동명(東明)학교를 졸업했다. 1913년 3월 고창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을 역임했고 같은 해 12월 24일 현금과 미곡을 기부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 1개를 받았다.
1914년 9월 22일 고창소방조 설비비를 기부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 1개를 받았으며 1915년 4월 21일 도로개수비, 1915년 6월 17일 도로부지용 토지를 각각 기부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 1개를 받았다. 1915년 6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 독행자(篤行者) 표창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10일 일본 정부로부터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16년 7월 5일부터 1917년 7월 10일까지 전라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역임했으며 1918년 6월 25일부터 1920년 9월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참사로 근무했다. 1920년 1월 14일 동아일보사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23년 4월 동아일보 고창지국 고문, 1923년 7월 사립 고창고등보통학교 이사, 1924년 9월 시대일보 고창분국 고문을 역임했다.
1924년 4월 1일과 1927년 4월 1일 전라북도 민선 도평의회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29년 5월 1일 조선박람회 평의원으로 위촉되었다. 1924년부터 홍해농장(洪海農場)을 경영하는 한편 같은 해에 고창연해어업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장에 취임했다. 1927년 11월부터 고창산업조합 감사를 역임했고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28년 11월 22일 교육 보급과 산업 발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총독부로부터 특례은배를 받았으며 1930년 4월 1일 전라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임명되었다.
1930년 6월 3일부터 1933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3년 2월 고창고등보통학교 전무를 역임했다. 1933년 5월 11일과 1937년 5월 11일 전라북도 관선 도회의원으로 임명되었고 1935년 7월 전라북도회의원 만주시찰단의 일원으로 만주를 방문했다. 1934년 9월 광주세무감독국 정읍세무서 소득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35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표창과 은배 1조를 받았다.
1939년 11월 고창요업주식회사 사장과 고창흥산주식회사 이사를 역임했으며 1940년 2월 대흥광업주식회사 이사와 대흥상사주식회사 이사, 1940년 12월 전라산업주식회사 이사를 역임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 6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8월 31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출처 위키 홍종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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