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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twaslove.tistory.com/m/post/view/id/14
달콤한 연애글을 쓰려고 만든 나의 블로그에
오늘은 조금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때 내 별명 중 하나는 ‘못난이’ , ‘간난이’ 같은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난, 예쁜 외모로 태어나지 못했다.
타고난 이목구비가 엄마를 많이 닮아 늘 예쁘다는 말을 듣는 네 살 위의 언니와 비교되게,
아빠를 많이 닮아 조금은 남자같은 외모로 태어난 탓일까 외모에 자신감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다만 그저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거나 할 때, ‘너 왜 이렇게 시무룩하니? 화났어?’라는 말을 듣는 일이
조금 귀찮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고,
다만 아빠의 체형을 닮아 나름 팔다리가 곧고 길쭉길쭉하게 자라났으니
넌 아빠에게 감사해야 한다…라고 엄마가 이따금씩 이야기해주신 기억도 난다.
공부만 하다 정신없이 스무 살을 맞았고 원하던 대학에 가서 또 열심히 공부를 했고,
2002년 웅진닷컴 잡지본부 시험에 합격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코스모폴리탄에 이직한지 3년째 되던 2007년 서른 살의 여름.
처음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 때문에 운동과 다이어트의 즐거움을 알게 됐고,
그렇게 이목구비를 가리고 있던 얼굴의 살이 조금 사라지니 얼굴의 단점이 드러나 보였다.
안그래도 늘 시무룩해 보이던 입매가 더 튀어나와 보이고, 더 시무룩해 보이니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처음으로, ‘지금보다 예뻐지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 동갑내기 에디터에게 추천을 받아
한 성형외과에 가게 되었고, ‘단 한 곳을 고친다면 그것은 코’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번 고치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성형수술이라는 것.
하지만 적절히 잘만 한다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성형수술이라는 것.
나의 외모 중 일부를 수술로 바꾼다는 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두어 달 정도 고민한 끝에 생애 최초의 성형수술을 받았다.
코 하나 고친다고 세상이 대단히 달라지지도 않겠지만,
외모가 조금 바뀐다면, 조금 다른 느낌의 내가 될 것 같았다.
수술 후 한달이 지나 약간은 조마조마한 맘으로 부모님을 찾아갔을 때
(당시 부모님에겐 수술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놀라시거나 반대하실까봐…)
엄마아빠는 ‘응 왔어? 손씻고 밥먹어라’라고 말씀하셨고
헤어질 때까지도 끝끝내 수술사실을 눈치채지 못하시는 바람에
‘나는 분명히 수술을 받았거늘 아예 티가 나지 않는 이 상황은 뭔가’ 싶어서
쓴 돈을 잠시동안 아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눈썰미 좋은 지인들은
아주 미세하게 인상이 여성스럽게 바뀌었다고 정말 기뻐해주기도 했지만.
그리고 나서 2008년 1월, 나는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결혼을 했고
2008년 12월, 이혼절차를 밟았으며
2009년 1월, <연애하듯 일하고 카리스마있게 사랑하라>(공저)를 발표했고
2009년 10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책 관련 인터뷰나 행사를 통해 일간지 등 매체에 노출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번의 사진촬영과, 방송 녹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자신있게 웃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하게 됐다.
평상시 내 모습을 영상으로 볼 기회가 없었기에 몰랐지만,
화면 속의 나는 분명 제대로 웃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불편했다.
가장 친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도,
내가 나온 방송을 보더니 치아교정을 하면 정말 좋아질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30살이 넘은 나이까지 남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아빠를 닮아 남들보다 조금 튀어나온 입매 때문이었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어도 누군가에게 꼭 ‘화났어?’란 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
치아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치과에서 상담을 받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됐다.
2010년 6월, 2년의 기간을 예상하고 돌출입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
1년은 안쪽 교정장치를, 1년은 바깥으로 하는 교정장치를 붙여야 했고
매달 철사를 조여가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조금씩 입매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참 기뻤다.
그리고 2012년 4월, 1년 10개월만에 힘든 교정을 끝내고
난 비로소 밝고 환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게 됐다.
처음엔 갑자기 교정을 하겠다는 딸을 많이 걱정하셨던 엄마도
이젠 누구보다도 내 변화에 기뻐해주셨다.
내가 느끼는 기쁨이 100일 때, 100만큼 웃을 수 있다는 일…
그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가만히 있는데 ‘화났어?’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됐다.
이것이 내가 예쁘게 타고 태어나지 못한 얼굴을 위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결심한 의학적 치료의 전부다.
새로나온 시술을 에디터들이 한 개씩 골라 뷰티 지면에 체험기사로 쓸만큼
보톡스니 레이저니 녹는 실이니 필러니, 최신시술을 경험할 기회가 많은 업계에서 일했지만,
얼굴에 뭔가를 더 하고싶다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코스모폴리탄 피쳐 디렉터로, 디지털 디렉터로,
최근 몇 년은 휴가 한 번 제대로 못갈만큼 바삐 살았다.
작년 가을, <마녀사냥>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한 그 무렵
2009년 1월에 포커스 신문에 인터뷰했던 당시의 내 사진이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랐고,
그 후, ‘성괴’니 ‘얼굴을 갈아엎었’느니, ‘오크년’이니 ‘눈 코 턱 광대 보톡스 필러, 다했네요’라느니,
‘죽빵을 때리고 싶다’느니 ‘못생겨서 젖통을 찌르고 싶다’느니 하며
일베를 비롯한 게시판들, 각종 성형 커뮤니티와 각종 포털 사이트 신문기사 댓글을 통해 조롱당하고,
(오죽 그 말들의 수위가 심했으면 일베의 화면을 캡쳐해 누군가 나의 상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댓글의 수위가 어마어마하니 고소하라고…참고 있지 말라고…)
‘저 얼굴로 연애를 했을리 만무한데 성형하고나서 자신감 쩔어서 연애 칼럼쓴다고 다닌다’거나
‘성형한 것 숨기면서 원래 예뻤던 척 한다’며 어떤 사람들에게 뒷담화를 당하고
심지어 오늘 ‘스포츠 조선’같은 멋진 매체에서는 정식 기자도 아닌 대학생 알바가 대놓고 기사로 거론하기 시작한 내 얼굴 사진.
나의 과거 사진이라고 불리는 그 사진들은
2009년, 2010년 초반에 촬영된 사진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수년째 열심히 하고,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맡은 일을 다하고
그 와중에 매체의 기자로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책을 내면서
사진촬영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내가 원해서 찍힌 사진들이다.
또한 동시에, 곽정은 이라는 한 명의 여자가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때의 사진들이다.
마음의 문제가 너무 무거워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잘못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라 고통스러웠으며
부모님께 크나큰 상처를 안겨드렸다는 자책감에 밤에 잠도 못자던 그런 시기의 사진들이기도 하다.
당해보지 않고, 누가 어떻게 알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사진이 웃음거리가 될 때의 기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지만 지난 가을부터, 가슴이 내내 아팠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남자의 시선에 몸을 맞추지 말라’고 말하는 내가
자기혐오끝에 성형중독에 빠진 사람 취급을 받는 이런 일을
그 외모, 그 육신을 주신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옳지 않은 일, 부당한 일에는 맞서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 나의 많은 스승들은
내가 이런 상황을 그냥 꾹꾹 참고 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지금의 외모가 아니었을 때에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사람은
지금의 이런 일들을 얼마나 안타깝고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예쁘지 않고 뚱뚱했던 시절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어떤 면에서 별로였겠지만
그 때도 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직장인이었고, 사랑받는 딸이었으며,
한 남자와 뜨겁게 사랑하고 또한 뜨겁게 사랑받는 여자였다.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고, 노력을 통해 자신감을 찾게 된 여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난도질 당한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왜 이렇게까지 조롱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마녀사냥>에 나오기 위해서, 나는 1978년에 애초에 예쁘게 태어났어야 했다는 거야?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문득문득 너무 슬프고 아파요, 라고 가까운. 지인에게 토로해도
‘유명한 사람의 통과의례 같은거야. 그냥 초딩들이니 잊어버려’라는 말뿐이었고
그래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이 화제가 될때마다,
내 외모로 인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이젠 대놓고 매체라는 곳에서 단지 트래픽을 위해 내 얼굴을 주제로 기사를 올리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과거 모습까지도 아끼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악의적인 댓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더불어, 오프라인에서의 강연에 대해 악의적으로 사실과 달리 날조된 글을 올려
내 명예훼손을 의도한 사람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조롱하고 날조할 자유는 있을지라도 그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며
나를 지킬 사람은 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법의 도움을 받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인은
좀 댓글로 공격당하고, 악플로 상처받아도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는 말은 틀렸다.
싫어하거나 비판할 자유와, 모멸감을 주기 위해 타인을 조롱할 자유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고
그래야 지금 나를 조롱하는 그 사람들조차
언젠가 타인에 의해 부당하게 조롱당하지 않는 세상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조롱하고 비난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정작 입도 뻥긋 못하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만한 사람만 조롱하는 자신의 모습이 썩 맘에 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 예전 사진에 대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글을 올린 사람들의 눈을 보고 묻고 싶다.
그리고 대놓고 그 사진들을 모아놓고 ‘성형의혹’ 운운하며 기사를 쓴 스포츠 조선의 28세 알바 J모씨에게는
다음주 월요일 오후에 그녀의 손을 붙잡고 물어볼 것이다.
내가 그리 예쁘게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어째서 당신에게 조롱당할 이유가 되나요?
내가 가장 불행했던 시간의 사진이 당신에게 대체 어떤 쾌감을 주나요?
설사 내가 온몸을 성형했다고 한들,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피해를 줬나요?
나를 직접 마주하고도 그런 말을 나에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믿고 있다.
그들이 멋대로 배설한 그 말이, 언젠가 그들의 얼굴을 덮으리라는 것을.
[알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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