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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상태는 인간에게 별로 유쾌한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편에서는 중력의 부재가 인간에게 미치는 생물학적인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물리학적인 영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중력이 사라졌습니다.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상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파업일 수도 있고, 왜곡과 뒤틀림으로 점철된 우주가 그 역사상 처음으로 평준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중력 상태에서의 각종 현상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교실에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수업을 듣던중,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군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지우개나 연필 따위가 둥실 떠오르더니, 눈 앞을 슬쩍 지나갑니다.
아,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겠군요. 왜, 가만히 놓여있던 물체가 떠오르는 것일까요.
우선 중력이 작용할 때를 생각해봅시다. 책상 위에 놓인 연필은 중력을 받아 아래쪽으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연필은 책상에게서 중력과 같은 크기의 반발력을 받습니다. 중력과 같은 크기란 것이 중요합니다.
중력이 작아질수록 반발력도 작아집니다. 중력이 0이 되는 순간 반발력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탄성은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고체라도, 힘을 가하면 아주 약간이나마 수축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이를 탄성퍼텐셜에너지(탄성에너지)라고 합니다.
중력이 작용하고 그 반발력이 작용하는 와중에 물체는 모습이 변형되거나 (형상탄성) 부피가 줄어듭니다.(체적탄성) 고체의 경우 둘 다 일어날 수 있으나 액체의 경우 부피변화만 생깁니다.
책상에 놓인 연필을 생각해봅시다. 중력이 작용하면서 책상에 닿는 부분이 변형되고 부피도 미세하게나마 줄어듭니다. 이 변화 때문에 연필에 탄성에너지가 축적됩니다. 탄성에너지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변화하는데, 중력이 크면 탄성에너지도 많이 축적되고 (부피-모양 변화가 크고) 중력이 작으면 탄성에너지도 적게 축적됩니다.(변화가 작습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탄성에너지가 방출됩니다. 이 게시글의 가정에서는 중력의 변화가 순간적이므로 탄성에너지 방출도 순간적일 것입니다. 연필의 경우, 수축한 부피가 팽창하면서 연필이 책상을 밀어내고, 탄성에너지 만큼의 운동에너지를 갖고 이동하게 됩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러분을 생각해봅시다. 탄성에너지는 탄성이 있는 물체에 국한됩니다. 의자에 닿아있는 신체기관을 생각해봅시다. 엉덩이와 등허리가 되겠군요. 살은 탄성이 있을까요? 미약하게나마 있을 것입니다. 딱딱한 의자도 탄성이 있습니다. 고로 중력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들은 모두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게 됩니다. 물론 탄성으로 인한 공중부양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입니다. 까놓고 말해 티도 안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테고, 그 결과는 박치기로 천장합판을 부수고 그 사이에 끼던가, 다시 튕겨서 책상과 부딪히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좋습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우리 모두 공중에 둥둥 뜨게 되는군요. 바람이라도 불지않는 이상 계속 이상태로 떠있을 것 같습니다. 아, 방금 4교시 종이 쳤습니다.
오호,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당장 급식실로 달려가야 겠는데, 계속 공중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한다면 참 유감이겠군요? 밥을 먹기 위해서 무중력 상태의 이동법을 배워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좋았던 시절처럼 땅에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없습니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밀려나갑니다. 작용과 반작용 법칙이 우리를 방해하는군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책에서 무중력 상태에서의 이동을 위해 '입으로 바람을 내뿜어 추진'이라는 꽤 설득력 있어보이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보통 인간의 폐에는 5~6L의 공기가 들어갑니다. 넉넉하게 6L로 잡고 이중 5.6L의 공기를 내보냈다고 칩시다.
폐 안의 기압은 대체로 대기압과 같을 것입니다. 1기압에 5.6L. 1/4몰 이군요.
공기의 분자량은 29입니다. 즉, 인간이 내뿜은 공기의 질량은 7.25g입니다. 이 질량을 내뿜은 사람이 55kg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입김을 불어서 사람이 걷는 정도의 속도인 시속 5km/h의 속도로 움직여봅시다.
운동량보존의 법칙에 의해 간단한 방정식이 성립됩니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kg을 g단위로 환산합니다.)
7.25 g*x km/h=55,000 g*y km/h
(x=입김의 속도, 속력이 일정할 때. y= 사람의 속력, 목표:5km/h)
방금 윈도우 계산기로 계산해보니, 37,931km/h 라는 값이 나왔습니다. 음속이 1,224km/h이니 마하 30의 속력으로 공기를 내뿜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더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You must be Dovahkiin!
시속 1km/h 의 속력으로 움직이고 싶다고 해도 여전히 마하 6의 속력으로 공기를 내뿜어야 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이 계산은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더불어 압력, 기온이나 유체역학 따위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받아들일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여전히 배는 고프니 급식실로 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잠시 생각해봅시다. 바닥에 땅을 딛을 때는 작용 반작용 법칙이 우릴 방해했습니다. 동일한 법칙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적용해봅시다. 근처에 책상과 의자가 둥둥 떠다닐겁니다. 그걸 발로 찹시다. 책상과 의자의 질량이 꽤 되기에 충분히 세게 밀어낸다면 눈에 띄는 속도로 '추진' 할 수 있습니다. 날아가는 교과서를 집어던지더라도 공기를 내뿜는 것보다는 더 빠르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물체를 밀어낸 반대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방향만 잘 잡는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몇 번 연습한 후에 심호흡을 하며 복도로 나갑시다. 복도는 일자형이니, 좌우 벽을 번갈아가며 발로 차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제 설명이 없더라도 실전에서는 금방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 기회가 온다면, 그리고 멀미가 나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말이죠.
성공적으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면, 이제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중력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까딱이라도 잘못했다간 하늘 너머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까 말한 호흡 추진법을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마하 30의 속력으로 공기를 내뿜으라고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충분히 많이 해야 합니다. 힘들고 고된 일이겠지만, 외우주로 튕겨나가 윌터 무어와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갖은 애를 다 써서 급식실에 도착하셨습니까? 미리 축하합니다. 하지만, 오늘 급식은 없을 것입니다. 학교 급식에 뭐가 나오는지 생각해보세요. 밥, 김치, 국, 그리고 소소한 반찬. 일단 밥부터 살펴봅시다. 밥을 지으려면 쌀을 씻어야겠죠. 혹시 씻은 쌀을 준비하더라도 냄비 안에 물을 부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꼭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냄비 바닥을 치고 다시 튕겨나옵니다. 우리가 종종 너무 강하게 튼 수도꼭지에 손바닥을 댔을 때처럼 말이죠. 중력이 없기 때문에 튕겨져 나오는 것이 훨씬 많아 집니다. 튀어 나오다가 중력을 받아 다시 냄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죠. 이 엉망진창이 끝나면 냄비에 물이 남아있긴 하겠습니다. 물과 냄비 사이의 부착력으로 생긴 얇은 물층이죠. 하지만 이걸로는 밥을 짓기 어려울 것입니다.
쌀을 먼저 냄비에 넣고 물을 부으면 상황이 좀 나아집니다. 물로 쌀을 담는 것 자체가 많이 어렵습니다.조금이라도 부주의하면 쌀알이 사방으로 날아다닙니다!
어떻게든 쌀을 담고 (무중력 비행 능력을 마스터하고) 가스레인지로 갑니다. 그리고 불을 켜고 솥을 올려야죠. 하지만 가스불이 얼마 안 가 꺼지고 말 것입니다. 불이 타려면 1)탈 물질, 2)충분한 온도, 3)산소 가 필요합니다. 1),2)번은 어떻게든 마련됩니다. 중력이 있는 상태였다면 천연가스(메탄)이 불타고 남은 이산화탄소와 물(수증기)이 대류현상으로 상승하고, 빈 자리를 신선한 공기가 가득 채우면서 불꽃에 산소를 공급합니다. 중력이 없는 상태라면 불타고 남은 물질이 불꽃 부변에 여전히 남아있고, 산소가 고갈되면서 불꽃이 사라집니다. 불길이 가셨다고 주변 온도가 빨리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섣불리 손을 대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컨대, 대부분이 가스레인지를 다시 키려고 섣불리 손을 댈 것입니다.
국의 경우에 상황은 더 심각하게 됩니다. 일단 국을 냄비 안에 담는다고 해도, 이동과정에서 생기는 진동이 상상 그 이상의 국물을 밖으로 쏟아냅니다. 이런 국물들은 벽이나 바닥, 나쁘게는 옷, 최악의 경우에 얼굴이나 노출된 피부에 닿고, 국물과 물체의 부착력에 따라 달라붙습니다.
팔에 국물이 닿았다면 재빨리 세게 휘둘러서 털어내세요. 관성의 법칙이 아직 작용하기 때문에 국물이 떨어져 나갑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케이크나 과자, 건빵 같은 고형식품과 점도 높고 어딘가에 담겨있는, 요컨데 잼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도 지구 전체가 무중력권에 든 지금, 새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은 비축식량으로 때워야 할 것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이상적인 점심식사는 이겁니다. 야자시간에 먹으려고 사놓은 과자와 음료수 (팩에 든 것을 추천합니다.)를 가지고 창가로 갑시다. 세상 만물이 대기 중에서 유영하는 몽환적인 풍경을 보면서 소박한 간식을 즐깁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십쇼.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생각하면서.
정리해봅시다. 생리작용도 시원찮고, 멀미도 일어나고, 밥도 못먹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없을 것 같습니까?
우주가 멸망한다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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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bejh000/9017754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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