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이 다되어 가는 딸을 둔 아빠 입니다.
아이가 요즘들어(한달 전 즈음부터) 책 읽기에 빠쪄서(거의 미쳐서?) 너무 힘이 듭니다.(육체적으로)
보통 6시에서 7시 사이에 집으로 가는데 집 도착해서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저한테 기어옵니다.
(아직 걸음마를 못합니다. 앉는건 일찍 했는데 기는걸 늦게 기었으니 걸음마도 늦게 하겠지요)
제가 우리 이쁜이 아빠 좀 씼고 옷도 갈아입고 올게 하면 나라 잃은 사람처럼 웁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일단 안아주면 동화책들이 꼽혀 있는 거실 책장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거~ 이거~" 라고 계속 말을 합니다. (실제로 들리기에는 거의 '이그어~이그어~')
(지금 할수 있는 말은 엄마, 맘마, 까까, 까꿍, 이거, 그리고 아빠 입니다.
아빠라는 말은 제가 있을때는 거의 안하다가 저가 없을때 부인한테 제가 어디갔냐고 묻는듯이
아빠? 라는 억양으로 말한다 하더군요. 투명드레곤?)
일단 책장 쪽으로 가면 본인이 만족할만한 수량의 책을 제가 뽑을때까지 '이거 이거'를 반복합니다.
한 10권 정도의 책을 뽑아들면(개월수에 맞는 사운드 북과 그림책) 안방으로 손짓하며
마법의 단어 '이거 이거'를 또 외칩니다.
침대 위로 같이 올라가면 그때부터 힘든 시간이 펼쳐집니다.
사운드북: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뚱뚱!) 엄마 곰은 날씬해(날씬!) 애기곰은 너무..
못난아빠: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뚱뚱!) 엄마 곰은 날씬해(날씬!) 애기곰은 너무?
손벽치고 허리로 리듬을 타면서 갑자기, 노래를 다 안듣고 다른 버튼 누르기.
사운드북: 오리는 꽥꽥 오리는 꽥꽥 염소 매애 염소 매애 돼지는 꿀꿀 돼지는 꿀꿀 소는 ㅇ
못난아빠: !?.......꽥꽥 오리는 꽥꽥 염소 매애 염소 매애 돼지는 꿀꿀 돼지는 꿀꿀 소는 음머?
반짝반짝 손짓하다가도 갑자기, 다시 다른 버튼 누르기.
사운드북: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아 모여서 밤세도록 하여도 ㄷ
못난아빠:(나도 클라이막스까지 노래 부르고 싶다...).......다아 모여서 밤세도록 하여도 듣는?
으응! 으응! 추임새를 넣다가 갑자기, 이거!! 이거!!
못난아빠: 아아..숨박꼭질 책? 선생님과 친구들이 숨박꼭질을 하네요? 가위바위보! 철수가 이겼어요~ 숨자 숨자~ 찾았다 까꿍!! 자 다른친구들은?
이그어 이그어!!
(모든 친구들을 찾아주고 싶다....)
못난아빠: 아아..모래놀이 책? 영희가 모래놀이를 하고 싶네요, 무얼 입고 나갈까아~? 스웨터? 밖에 햇님이 쨍쨍한데? 수영복? 바다에서..
이그어 이그어!!
사운드북: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뚱뚱!) 엄마 곰은 날씬해(날씬!) 애기곰은 너무..
(아...마지막장은 영원히 못보는것인가..? 영희는 결국 밖으로 나갈수 있었을까??)
못난아빠: ..............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뚱뚱!) 엄마 곰은 날씬해(날씬!) 애기곰은 너무?
이렇게 3시간 4시간 정도 시달리고 나면 입에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머리도 멍하네요.
바로 자야겠네요. 뉴스룸도 봐야하고 다시보기로 보고싶은것도 봐야하는데...
딸이 리엑션을 하도 잘해줘서 리엑션해주는걸 보면 대충 해줄수도 없고..
(두달전 영상인데 지금은 리엑션이 더 발전했네요)
어떻해서든지 이 상황을 벗어나 볼려고(아빠가 미안해!!!!!!!)
걸음마 보조기? 걸음마 카트? 같이 생겨서 아이가 밀고 다니면서 걸음마 배우는거를 같이 가지고 놀아봅니다.
아이는 밀때마다 뾱뾱 소리가 나는 장난감이라 깔깔 거리면서 좋아하고
저는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엉금엉금 기고 있지만 꿈에도 악몽처럼 나오는 곰세마리 노래를 안불러서 좋네요.
그런데 아이가 장난감과 향하는 곳은 99% 거실 구석의 책장입니다.
거기서 멈춰서서 손가락으로 책들을 가리키며 이그어~ 이그어~ 라고 애처러운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안돼요 안돼~" 얼른 걸음마 해야지~ 라고 카트 방향을 반대로 하면 안가고 "으으응 으으응" 하면서 주저 앉아 웁니다.
자..........저는 다시 3시간의 징벌방에 끌려 들어갑니다. 이 방법은 실패 입니다.
두번째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얼마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올때 차에서 핑크퐁과 상어가족 노래를 들려주니 좋아하더군요.
한시간짜리 메들리영상을 두개정도 안쓰는 휴대폰에 넣었습니다.
주위에서도 그게 아이들한테는 직방이라는 소리를 하네요.
아빠에게 손앵커를 볼수있는 기회를 다오.
집에오니 또 "이그어 이그어"를 말하네요.
하지만 오늘은 아빠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단다. 핑크퐁의 늪에 빠져보거라.
침대 위에서 같이 앉아 상어가족 노래를 같이 보면서 불러주니 박수치고 좋아하네요.
자 아빠는 이제 잠깐 밖에... "이그어 이그어" 어...그래 옆에 있을께.
"길을 건너갈땐~♬ 주변을 살펴봐요!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외???"
이그어~ 이그어~
응? 왜? 다른 노래?
방문을 가리키면서 이그어 이그어를 하더군요. 제발..
핑크퐁의 약발은 길어봤자 20분이네요.
역시나 징벌방의 시작. 이 방법도 실패 입니다.
세번째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하루종일 힘을 빼버리면 일찍 자지 않을까??
부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아빠: 부인, 키즈카페를 가봐.
부인: 방금 돌 지났는데 너무 이르지 않을까?
아빠: 이제 우리 딸도 키카의 즐거움을 만끽할 때야..
부인: 그래도...큰 아이들한테 부대낄거 같은데.
아빠: 다 그러면서 크는거다. (살려줘...)
부인: 알았어. 그러면 나야 편하지. 오늘 갈께.
몇시간 뒤..
카톡!
"자기야, 다행히 너무 잘 논다. 대려오길 잘했네.
땀 막 흘리면서 재미있게 놀아서 옷이 다 젖었어
이따 점심 시간 지나고 옷 갈아입히고 집에서 가까운데 한군데 더 가볼께."
"그래 잘 노니 다행이네. 사진 보내줘."
나이스!! 히히힛. 오늘은 징벌방의 의식이 일찍 끝나겠군.
.
.
.
그날 저녁.
어제 보다 더 흥이 좋아진 이 느낌은 뭐지?
오전 오후 키카의 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건가?
엄마가 집에 와서 베터리를 풀로 다시 충전시켜 준건가?
아.....이것도 실패네..
제 생각에는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네요.
더 자극적인것(?)을 줘도 힘을 다 빼버려도 안통하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같이 책읽는 삶을 살아야 겠네요.
좋은 해결책이나 조언 있으신분들은 저를 살려주세요.
보너스 사진.
1. 엄마가 "이쁜짓~~"
2. 아빠가 이쁜짓~~~~~~
야!!!
너 인생 2회차지?
3. 아니에요 절대로.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