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나타났다. 부스스한 머리에 낡은 패딩점퍼와 빨간색 티셔츠 차림, 흡사 '동네형'을 만난 듯했다. 이 사람이 그토록 냉철하게 한국사회의 속살을 드러낸 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남들 시선은 별로 신경 안 쓰시나봐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 "네." 그의 말과는 달리 그는 어려운 경제 용어는 자제하고 쉬운 비유를 들려주려 애쓰는 게 역력했다. 잔뜩 찡그린 채 손을 가로 저으며 흐흐 웃는 모습이 마주 앉은 사람도 웃게 만든다.
◆한국 경제, 더 나빠질 것
-4권으로 이어진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를 냈습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가 뭡니까?
"한국 자본주의가 빠른 시간에 압축성장을 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특수한 상황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교육 문제나 지역균형문제는 경제학 일반론으로는 풀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걸 드러내고 싶었고, 그걸 풀어야 정상적인 형태의 자본주의가 된다고 봤죠."
-한국 사회와 경제가 참으로 암울합니다. 정말 희망이 없는 건가요?
"한국 경제는 '가가멜을 데리고 좋은 마을 만들기'를 하는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가가멜과 아즈라엘과 굉장히 비슷해요. 가가멜이 진정한 악인은 아니잖아요. 가가멜이 스머프를 잡아먹으려는 건 배가 고파서예요. 그런데 한번도 못 먹죠. 한국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가가멜 같아요. 부자나 토호들, 중산층도 그런 사람이 많고. 아즈라엘은 그 옆에서 '뭐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에요. 돈도 없으면서 괜히 부자들 옹호하는.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쁘다거나 처단할 대상은 아니거든요. 가가멜로 좋은 마을을 만들려면 경제적 합리성으로 움직이면 돼요. 스스로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라는 거죠. 가령 집도 땅도 없는 사람이 뉴타운을 지지한다거나 노동자가 부자들한테 투표를 하지는 말자는 거죠."
-한국 경제가 곧 바닥을 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아직 멀었어요. 이제 서막을 알린 정도죠. 당장 연말이 문제예요. 은행 부실이 생각보다 커요. 연말에 결제가 몰리는데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별로 없어요. 은행 자체가 위험하고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 돈을 구하기 힘들죠. 내년이면 가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갈 겁니다. 또 우리만 경제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굉장히 동요할 거예요. 그럼 정부에서는 경찰국가처럼 언론의 입을 막고, 물리력을 동원해서 막겠죠."
-내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갈 것이라는 근거는 뭡니까?
"현재도 마이너스예요. 실질GDP(해당 연도의 생산량에 기준 연도의 가격을 곱해 계산한 국내총생산)에 사용하는 GDP디플레이터(기준 연도에 비해 금년도 물가가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보여주는 물가지수)가 과거 수치다 보니까 올해 환율 상승분이 반영 안 된 거죠. 한국에 마이너스가 딱 두번 났어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숨졌을 때 0%이었고, IMF 외환위기 때 -4%까지 갔거든요. 두번 다 'V'자 형태로 급락하고 급등하는 양상이었는데, 지금은 6개월에 걸쳐 바닥을 다지면서 내려왔잖아요. 이미 많이 망가진 건데 장기 사이클상 반등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중남미형 경제인 역N자형으로 갈 겁니다. 조금 반등하고 더 추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죠."
◆사교육 금지, 국민투표로 정하자
-한국 교육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1970, 80년대는 '포디즘' 시대여서 획일적이고 비슷한 사람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탈포디즘 시대가 왔는데 우리만 못 바꾸고 있는 겁니다. 외국은 창의 교육으로 바꿨거든요. 사무라이 교육을 시키던 일본도 바꿨어요. 탈포디즘 시대를 주도한 것도 일본이에요. 반면 한국은 획일적 교육을 더 강화했어요. 학교 교육이 로봇 교육이라도 나머지 시간을 풀어주면 되는데 다 묶어 버렸으니까요."
-한국 경제의 대안 중 하나로 사교육 해체를 들었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사교육은 '늑대와 토끼' 모델 같아요. 토끼를 잡아먹고 늑대가 살아가는데 늑대가 너무 많아져서 토끼가 사라질 판이에요. 토끼가 없어지면 늑대도 죽잖아요. 중산층이 몰락하다 보니 기대어 사는 학원도 망하거든요. 토끼를 살리려면 늑대를 들어내야 돼요. 사교육을 금지시켜야죠. 2, 3년 후에 중산층이 다 죽고나면 공교육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살리는 게 피해가 적잖아요."
-사교육을 없애는 게 가능할까요?
"사교육이 폭발적으로 커진 게 2000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과외 금지 위헌 판결을 내린 탓이 큰데요. 그러면 헌법재판소에 재의를 올리든지, 헌법에 준하는 의사결정인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거죠. 사교육 시장에서 90%는 비정규직이니까 학원 강사 중 3분의 1은 교육대학원을 통해 공교육으로 흡수하면 교사당 학생 비율을 확 낮출 수 있어요. 정부는 정부지원을 OECD 평균 수준으로만 교육에 투자하고, 지자체에서 문화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센터를 만들어서 흡수해 나가면 가능할 것 같아요."
◆20대에겐 리더와 연대가 필요하다
-앞으로 20대의 불행이 극대화될 것이라 했는데 그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지금부터 3, 4년 혹은 다음 정권 출범할 때가 될 거예요. 20대의 90%가 '알바'를 하겠죠. 또 선진국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는 쪽방보다 더 세분화된 대규모 주거형태가 나타날 겁니다. 여하튼 사회적 악재가 생기면 그 피해가 20대에 집중될 거예요."
-절망에 빠진 20대에게 돌파구는 없을까요?
"사회적 대화가 절실합니다. 조금 더 약자들의 장점들을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죠. 20대들은 리더가 없어요. 구심점을 만들어야 해요. 20대 국회의원도 좋고, 조그만 커피숍을 해도 좋아요. 그 주위에 모여서 뭘 해볼 수 있잖아요. 또 386세대처럼 20대끼리 움직일 수 있는 고유한 진을 만들어야 해요. (세대 간 착취를 세대 간 연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윗 세대가 먼저 기득권을 내놔야 해요. 지역 토호들이 지역의 20대를 위한 기금을 내놓으라는 거죠. 그 요구를 20대가 하기보다는 윗세대가 먼저 내놓는 것이 빠르거든요. 우리 애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까."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세요?
"정부의 경제 정책은 '믿어라' '대신 모든 것은 너하기에 달렸다'는 식인데 그게 종교지 무슨 경제예요. 그 중에서도 가장 오판하는 게 감세예요. 경제학에서의 '균형'이라는 개념이 탑재가 안 됐어요. 감세를 지속하면 결론은 국가 부도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부실 기업 시기에 적자 경영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요. 그러다 안 되면 정부를 통해서 만회하고. 그런데 지금 자신이 정부인데 누가 주냔 말이에요. 정부에서 적자를 내면 답이 없는 거예요. 나중에 경제가 괜찮아지면 메울 수 있다는데 그건 불가능한 얘기예요."
-미네르바 열풍이 불었던 이유가 뭘까요?
"기가 막히게 맞혔잖아요. 또 기다리면 좋아진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사람이 부각된 거죠. 미네르바는 문체가 거칠어서 그렇지 일관되고 틀이 잘 잡혀 있어요. 거시경제와 국제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어요. 규모가 작은 증권사 중개 같은 일을 했을 것 같아요. 다만 국제 자원이나 국제 금융의 또다른 패턴들에 대해서는 약간 모르는 대신, 일본 금융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제2, 3의 미네르바는 안 나올 가능성이 커요. 그만큼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대구는 토건에서 벗어나야
-정부의 건설 경기 부양이 왜 문제라고 보십니까?
"지금은 모든 것이 건설에 맞춰져 있어요. 국민경제에서 건설 비중은 10% 정도가 적당해요. 그런데 우리는 19~20%나 되잖아요. 건설이 많기로 유명한 스위스도 건설 비중이 12%예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망한 미국도 10%가 안 돼요. 과잉된 10%를 줄여야 혁신 부분에 투자를 할 것 아니에요. 정부의 예산 배분 방식에도 문제가 있어요. SOC 계획을 세워놓고 '먼저 손 드는 사람에게 간다'는 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지역에서 먼저 받으려고 난리가 나는 거예요. 토건형 행정 장치들을 전환시키는 게 병행되어야 해요."
-지역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직접민주주의와 풀뿌리 자치공동체의 구현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스위스 같은 유럽국가는 경상도 크기에 인구가 750만 명인데 연방국이고, 26개의 칸톤과 수천여 개의 자치구가 있어요. 그런 식으로 중앙형 시스템에서 분산형 시스템으로 분화해 가는 게 선진국의 흐름이에요. 중앙화를 시키면 혁신이 안 돼요. 한 사람이 모범답안을 내는 거랑 수백 개의 모범답안 중에 고르는 거랑 어느 쪽이 낫겠어요? 한국은 말만 좋아 자치지 제도를 만들면 전국이 똑같이 서울 모방형이 돼요. 그런 획일성과 한나라당 독식, 민주당 독식 같은 지독할 정도의 유니폼화가 문제를 일으켜요."
-대구가 끝없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화대구나 예술대구로 가야죠. 대구에는 아직 지식인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SOC에 쓰는 몇십조 원의 100분의 1 혹은 200분의 1이라도 빼서 지역방송에서 드라마를 만들면 100개 이상의 고급 일자리가 나올 거 아니에요. 드라마센터도 생길 것이고. 드라마는 인건비 비중이 70~80%나 돼요. 일단 실패를 해도 누군가 돈을 받은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나온 인재들은 다 지역에 남을 것이고, 문화 콘텐츠로도 남아요."
-최근 3년간 8권의 책을 냈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전체는 12권짜리 시리즈입니다. 그 중에서 한국경제로 이름 붙인 4권이 끝난 거고요. 방향에 관한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4권, '국가의 기본'에 관한 논의로 문화경제학, 농업경제학, 기술경제학, 언론 경제학 등 응용에 관한 4권을 낼 생각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책을 다 내면 끝내고 쉬려고요. 계속 쉬었으면 좋겠는데 농사를 지을까 생각 중이에요. 뭐하러 이러고 살아요. 그냥 조그맣게 농사 지으면서 먹을거리나 해결하고 살까 해요."
장성현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장기훈 프리랜서 [email protected]
▨ 우석훈은?=1968년 서울 출생.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전공했다. 자신을 늘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는 그는 연세대 졸업 후 인생의 4분의 1을 프랑스, 영국, 독일, 스위스 등에서 보내며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6년 한국에 돌아와 현대환경연구원에서 일하던 중 IMF를 맞아 구조조정과 회사 통폐합 등의 실무를 맡으며 괴로워했다. 1999년 에너지관리공단으로 자리를 옮겨 기후변화협약 실무협상단으로 일을 했고, UN 기후변화협약 정책분과 의장과 기술이전분과 이사 등을 지냈다. 외국 컨설팅회사의 고액 연봉 제안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한 그는 성공회대 외래교수, 서부발전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음식국부론'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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