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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21007
    작성자 : murakumo
    추천 : 14
    조회수 : 3235
    IP : 112.151.***.39
    댓글 : 14개
    등록시간 : 2015/05/27 00:37:59
    http://todayhumor.com/?history_21007 모바일
    세대별로 보는 페미니즘의 역사
    자게에 썼다가 번지수 잘못 찾은것같아 역사쪽으로 왔습니다.

    여시사태에서 시작해서 김여사 논란에 이르기까지 현재 오유에 전례 없을 정도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페미니즘 자체가 한국에서 그리 인기있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말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많이 갈리더군요.
    20세기 초반 무렵의 낡디 낡은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상당히 극단적인 소수 의견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로 인해 분쟁도 많이 생깁디다.
    해서 이참에 간략하게나마 페미니즘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별 거 아니지만 알아두면 앞으로 편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핫;

    일단 페미니즘은 시기에 따라 3개의 '세대'로 나뉘어집니다. 따라서 각 세대별로 나누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세대

    1세대 페미니즘이라 하면 대체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를 지칭합니다. 이 시기의 담론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기본권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19세기면 서방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대체로 자리잡았을 시기인데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상당 부분 부정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참정권. 노동권. 교육받을 권리.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1세대의 목표였지요.

    이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화두는 참정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대로 된 민주 사회는 유권자들의 의지에 따라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당시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에 영향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여성을 위한 정책 따위는 기대할수조차 없었죠. 때문에 19세기 중후반에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 대대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women's suffrage)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걸 곱게 내려놓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전무한 수준이죠. 투쟁은 길고, 격렬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여성사회운동단체 WSPU가 건물 점거, 공공기물 파손, 단식 투쟁 등의 제법 과격한 수단을 동원했고, 영국 경찰은 이들을 무더기로 체포해 교도소에 넣었습니다. 이 때 교도소 안에서도 단식투쟁을 벌이던 여성들에게 당국이 콧줄을 통해 강제로 음식을 먹여 강제급여(...)가 여성운동의 상징이 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여성의 참정권은 조금씩 확대되어갔습니다. 1893년에 뉴질랜드가 최초로 여성의 투표를 인정했고, 이듬해인 1894년에는 남오스트레일리아가 여성의 투표권 및 피선거권을 보장했습니다. 이후 북구권에서 시작해서 유럽으로 점차 퍼져나갔고, 1920년에는 미국이 연방 헌법 차원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인정하면서 하나의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이 즈음에 적절하게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터져주면서 1세대가 마무리됩니다.

    2세대

    2세대 페미니즘은 전후인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기를 지칭합니다. 한국에 페미니즘이 처음 들어온 것이 이 시기인 관계로 국내의 활동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친 세대이며 페미니즘이 가장 이슈화되고, 또 가장 격렬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중요한 세대죠. 여기서부터 우리가 자주 듣는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직장에서의 평등, 차별 타파, 생식에 대한 권리 등이 2세대의 주요 쟁점들입니다.

    1940년대에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바르는 남성 위주로 편성된 사회에서 여성이 받게 되는 불이익을 제시하면서 여성이 제1의 성인 남성에 대비되는 '제2의 성', 2등 인류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소수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여 이후의 활동에 대한 사상적 기초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1950년대에는 여성이 능동적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는 경구 피임약이 상용화되면서 임신을 순리가 아닌 선택으로 만들어주었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여성들은 본격적인 사회 진출과 경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허나 노동 질서는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짜여있었고, 여성 노동자들은 법과 관습 양면에서 남성에 비해 열악한 위치에서 근무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반발한 여성계는 적극적인 법정 투쟁을 개시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투쟁은 성공적이었습니다. 1960년부터 70년 사이의 10년동안 미국에서는 남녀간의 차등 급여가 금지되고, 소수자 우대 정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피임 금지 법안(!)이 폐기되는 등 법적인 부분에 있어 많은 약진이 있었습니다.

    허나 한편으로는 담론의 축이 기본권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서 차별과 성이라는 추상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갈등이 심화됐던 것 또한 2세대의 특징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과격파' 페미니즘 이론들은 이 시기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 노동인구가 증가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물리적인 차이마저 부정하고 '남녀는 외형과 생식기능상으로만 다르고 그 외의 부분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 대두되었고, 남성을 성의 '착취차' 여성을 그 '희생자'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유행을 타기도 했지요. 2세대 페미니즘은 집단 대 집단, 남성 대 여성의 갈등과 투쟁이라는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으며 이는 결국 여성계를 두 쪽으로 나눈 '페미니스트 섹스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페미니스트 섹스 전쟁은 포르노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포르노에 반대하는 측은 포르노가 힘을 토대로 한 가부장적인 성관계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며 그로 인해 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때문에 포르노는 본질적으로 오직 남성만을 위한 것이며 여성에게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이나 금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쳤죠. 심지어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그 실천'이라는, 뭔가 굉장히 오늘날의 아청법을 연상시키는 골때리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편 포르노, 라기보다는 섹스 자체에 긍정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반포르노 운동을 도덕적 권위주의의 발로이자 언론탄압이며 국가에 의한 개인의 검열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여성의 성이 해방되어야 함을 주장했고 포르노 역시 성을 해방하는 하나의 긍정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죠.

    포르노에서 시작한 이 싸움은 빠르게 확대되어 성매매, 성적 취향, 나아가 성애의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그 내용은 실로 방대해서 여기에 옮겨적기 어려울 정도죠. 이 와중에 남성 vs 여성, 자유 vs 통제, 페미니즘 vs 페미니즘의 구도에 지친 사람들이 변화를 도모하면서 페미니즘은 3세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3세대

    3세대 페미니즘은 9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지칭합니다. 후기 2세대 페미니즘의 사상적 과열과 그로 인한 분쟁을 지켜보며 페미니스트들은 많은 고찰을 거치게 됩니다. 그 성찰과 반성의 결과가 바로 현재의 페미니즘이라 볼 수 있는 3세대 페미니즘 사상입니다.

    3세대의 특징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굳이 한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다원화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2세대의 성대결 구도에 한계를 느낀 활동가들은 집단적 레벨의 정체성과 대결을 버리고 보다 작은, 개인적인 층위에 포인트를 맞추었습니다. 섹스 전쟁의 화두였던 포르노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이 부여하는 정도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중론으로 어떤 '전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영향은 잘 논하지 않죠.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역시 이 시기입니다. 과거의 페미니즘이 여성성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다면, 3세대는 이원화된 여성성 자체가 허상이며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룹니다. 때문에 여성과 남성, 여성성과 남성성 중 어느쪽이 바람직하냐는 식의 'vs놀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편입니다. 같은 이치로 '여성'에게 이로운 것, 해로운 것 역시 잘 논하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는 총체가 있는 것이 아닌, 각자 다른 상황과 성향을 지닌 개인으로서의 여성들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동성애가 페미니즘의 주요 담론으로 떠오른 것 역시 이 세대에 들어 일어난 일입니다. 관점이 점차 작은 단위로 옮겨지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전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나 80년대부터 양지로 넘어오기 시작한 남성 동성애자(게이)와는 달리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있던 레즈비언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와 더불어 정신적 성과 생물학적 성이 다른 사람(트랜스젠더)을 비롯해 지금까지 인식되지 않던 '제 3의 성'들이 논의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성적 지향성(어떤 성에게 끌리는가), 성적 정체성(스스로를 어떤 성으로 인지하는가)의 개념이 정립되고 이러한 부분들이 생물학적 성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대두된 것은 3세대 페미니즘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처럼 논의가 총체로서의 '여성'에서 개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여성이 아닌 다양한 성들로 옮겨가면서 '페미니즘'이라는 명칭 역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평등주의(equalism) 등 페미니즘을 대체할 명칭들이 제시되기도 했죠. 이러한 부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상으로 페미니즘의 역사를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해봤습니다. 휴, 뭔가 스피드웨건이 된 느낌이네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사실 현대의 페미니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어 모든 성이 평등하게 각자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 할 수 있죠.
    해서 성별간 갈등에 페미니즘이니 여성운동이니 끌고오는 사람들 보면 솔직히 좀 많이 답답합니다. 혼자 1970년대를 사는 셈이니까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외에 다른 무엇이든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모두 존중받도록 하는 사상이 페미니즘입니다.
    물론 국내에선 여가부부터 시작해서 사이비도 많고 분탕도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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