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기 보다는 제가 꿨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꿈이였음에도 상당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던 꿈이였기에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꿈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어두운 디스토피아적인 사회.
꿈에서 저는 약간은 퇴폐적인 밤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눈을 어지럽히는 네온사인들을 사이를 걸어가던 저에게 한 명의 남자가 다가옵니다. 검은 양복 차림에 검은 썬글라스를 쓴 큰 덩치의 사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어쩐지 그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도 범상치 않고,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습니다. 그가 했던 얘기를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는 미래에서 저를 데리러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몇 개월 후, 지구에 크나큰 재앙이 닥칠 것이니, 그 재난을 피해서 자신과 함께 미래로 가는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합니다.
딱히 증거랄 것도 없었지만 저는 그 남자의 말을 믿게 됩니다. 그 남자가 풍기는 이질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꿈속에서의 저는 어째서인지 주변에 친한 지인도 없었으며, 가족조차 없었기에...더군다나 세상에 마음을 닫고 고독하게 살고 있었기에 이 세상에 미련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의 제안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어차피 망할 세상이라면 다른 세상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래 생각해볼것도 없이 흔쾌히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남자를 따라서 검은색 세단 승용차에 타게 됩니다. 아마도 그 자동차가 영화 '백투더 퓨처'에 나오는 차처럼 타임머신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봅니다. 그렇게 차에 탄 채 내가 미래의 세계로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나는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차가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중...
누군가가 자동차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차문을 열어보니 젊은 여성분 2명이 말을 걸어 옵니다.
자기들이 집에 가야 하는데 같은 방향이면 집까지 차로 태워주면 안되겠느냐는 겁니다. 검은 양복의 남자를 쳐다보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딱히 거절은 하지 못하고 모든 선택권은 저에게 있다는 듯이 저를 쳐다봅니다.
어차피 이 세상도 마지막인데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착한일이나 하자는 생각에 그 2명은 여성분을 차의 뒷자석에 태웠습니다. 뭐, 검은 양복의 남자도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긴 하지만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꽤나 과묵한 성격인거 같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거리의 광경들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쉬운 기분이 들더군요. 결코 이런 네온 사인이 어지러이 밤을 밝히는 거리를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죠. 그렇게 그 여성분들을 집까지 모셔주면서 얘기를 조금씩 하게 됩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소라면 마음을 닫은채 조용히 있었을 저지만 이제 마지막이고, 저 사람들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을 열고 이런저런 얘기를 진솔하게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제 마음도 어느정도 풀렸었나 봅니다.
그렇게 그 두분을 집에 내려 드리고 저는 곰곰히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그 남자에게 말을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냥 남겠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제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묻더군요.
"정말입니까? 후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의외더군요. 왠지 제가 남겠다고 하면 강제로라도 데려가려고 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포기하는걸 보니 말입니다. 뭐 이 곳에 남는다면 정말 남자 말대로 큰 재난이 온다면 저 역시 죽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세계의 일원으로써 저도 같이 사라지는게 옳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계의 일원이란 생각을 하질 않았었는데 잠깐의 사이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뭐 어지됐든 저는 남자에게 다시 물었죠.
"나중에 오게 될 그 재앙이란거 제가 막을수는 없는건가요?"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지 돼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우리가 뭔가를 강요할 수도, 강제로 데려갈 수도 없죠. 모든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꿈의 내용이 몇 달 뒤로 건너뛰더군요.
배경은 이미 그 뭔가의 재앙이 일어난 시점. 각 국가들간이 핵 전쟁에 돌입했고, 우리 나라 역시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곳은 어느 초등학교 건물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피난민들이 들어차 있었죠. 각 교실마다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죠.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은데다가 각종 의약품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 역시 부기지수였죠. 그리고 무엇보다고 무서운 추위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의 죽어가는 모습은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저는 그 때 검은 양복의 남자와 미래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고 웃을 수 있엇습니다. 그 동안 몇몇의 좋은 친구도 사귀었으니 말이죠. 그런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이 되어 주었던 것은 밤이 되면 예전에 보던것보다 더욱 밝고 아름답게 보이는 밤하늘의 달과 별들이었습니다.
폐허가 되어서 주변에 가로등이나 도시의 불빛들이 없으니 밤하늘의 달과 별이 더욱 밝게 보인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운 겨울의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언젠가는 지금의 고통들도 다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이 찾아오리라 생각한거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꿈속에서 꿈의 내용이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더군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우리 인근지역이 핵 공격의 타겟이 되었다는 경고방송이 들리기가 무섭게 근처에 핵 폭발이 일어나더군요. 그리고 영화속에서 보던 것처럼 폭발의 폭풍이 마치 해일처럼 저에게까지 다가오더군요. 우리가 지내던 초등학교 건물과 아직 살아있던 모든 사람들을 휩쓸어버리며 저까지 휩쓸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문득 검은 양복의 남자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가 기억나는 것입니다.
그 검은 양복의 남자는 왜 미래에서 굳이 저를 데리러 왔던 걸까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저를 데리러 왔던 이유가 뭘까요? 제가 그 이유를 검은 양복의 남자에게 물어봤던 겁니다.
거기에 대한 검은 양복 남자의 대답이 마지막 순간에서야 기억이 나더군요. 그 남자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대재앙을 일으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었던게 기억나더군요.
어떻게 알게 된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꿈이라서 가능했겠지만 그 순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때문에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나고 모든 재난의 시초가 저였음을 말이죠.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의 날개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말이죠.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사건들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면서 결국에는 어떤 큰 사건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말이죠. 저의 어떠한 행동 하나가 연쇄적으로 다른 일들에 영향을 미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만든 겁니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핵폭풍이 몰아치면서 죽는 순간 꿈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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