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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20405
    작성자 : aeio
    추천 : 111
    조회수 : 10282
    IP : 182.210.***.174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13/04/26 12:56:52
    http://todayhumor.com/?military_20405 모바일
    도둑들

     

    어렸을 적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꼭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였다.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이라도 가는 날엔 어머니는 한바탕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항상 패턴은 같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처음엔 어머니를 조르고 그래도 사주지 않으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도 안되면 최후의

    방법은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녹록치많은 않은 상대였다. 그런 나를 두고 어머니는 자기 갈길을

    가셨고 그대로 일어나기엔 어린나이에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나는 그렇게 응용포복으로 시장에서 집까지 기어가곤했다.

    어쩌면 이런 경험들이 훈련소에서 각개전투를 배우는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당시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는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난 아마 1회 출연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정직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들에게 가정교육을 받았지만 욕심이 그득그득한 욕망의 항아리 같았던

    어린 나는 그만 삐뚤어진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슈퍼에서 주인몰래 과자를 슬쩍슬쩍 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한장씩 슬쩍슬쩍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바늘도둑에서 소도둑으로 진화하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아버지의 지갑에서 몰래 만원짜리를 꺼내다 동생에게 발각된 후 입막음을 위해 동생에게 7대3의 딜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완달리 올바른 가정교육으로 투철한 시민정신을 가지고 있던 동생의 제보로 아버지에게 발각 된 후 미친놈은 몽둥이가 약이라는

    교훈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지갑을 뒤지다 뒤질뻔한 이후론 이른나이 8살에 깨끗이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한 후 어쩌면 나는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외로 군대엔 손버릇이 고약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나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남들 몰래 소각장에서  양말을 슬쩍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경험이 한 두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계기가 되었던 건 이등병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이등병

    시절 부대로 보급관님이 찾아와 내무검사라는 걸 처음 받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내무검사를 하던 중 내 양말이 한짝 모자란 것을 알게되었고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던 나는 내무검사 도중에 양말 한짝이 어디갔냐는 말에 나도 모르겠다는 개념충만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내 대답에

    감동했는지 내무검사 후 나는 내 아래위 고참들과 함께 아늑한 보일러실에서 장시간동안 진실게임과 서로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대 병장들도 교육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것은 고통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양말갯수,속옷갯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보급관님이 다시 부대를 찾았다.

    그날 이등병들은 떠올렸다. 양말이 하나 비는 공포를. 보일러실에 갇혀있던 굴욕을. 잊어버린 양말을 되찾을리 없었고 당연히 양말은 한짝이

    부족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건조대에서 양말을 훔쳤다. 그날 군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하지만 정도가 좀 심한 사람도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부대에서 근무를 나가면 돈이 없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군인월급이

    얼마나 한다고 그걸 슬쩍하는 파렴치한 놈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싶지 않았지만 분명 다른소대 소행은 아니었다. 몇 번 그런일이 발생한 후

    우리에겐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었다. 제대를 얼마 앞둔 병장이었는데 고참들 말에 의하면 이미 이등병 일병 시절부터 몇번

    돈을 훔치다 걸린적이 있다고 했다. 다들 심증은 갔지만 물증이 없었고 게다가 소대 내 최고참이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섣불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별다른 해결방법도 없이 이대로 지나가나 싶었는데 결국 그 고참은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제대하던 날이었다. 그냥 집에가긴 아쉬웠는지 마지막으로 한탕을 준비하던 그는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온갖 군용품을 더블백에 채워넣고 후임에게 위병소 밖으로 던지라고 시켰다가 그만 간부들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제대하는 날에 왠만하면

    봐줄수도 있었겠지만 정도가 좀 심했다. 더블백은 요술램프마냥 군용품들을 뿜어냈다. 판초우의부터 시작해 건빵, 맛스타,모포에 스키파카까지..

    하일라이트는 야삽과 지주대 지주핀 천막이었다. 도대체 야삽은 들고나가서 뭘 어쩌려는건지.. 살 집이 없어서 A형텐트를 짓고 거기서 살려는

    생각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었다. 그것보다 그 물건들을 도대체 어떻게 몰래 챙겼는지가 제일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결국은

    제대날 영창행이라는 부대 역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키고는 15일 후에서야 그는 쓸쓸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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