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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지점장을 하다가 퇴직한 전직 은행원입니다.
퇴사를 고민중인 분들께 한말씀 드리고 싶어 글을 적습니다.
최근에 인사발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승진이 되지 않은 동료가 연락이 와서 알았습니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승진자 명단에 아는 이름이 많아 반갑더군요. (나이가 있다보니 부점장 승진자들과 비슷하게 입행해서 그런가 봅니다)
동시에 승진에 누락되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발령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속을 끓이고 있을까 싶더군요.
저는 직장 생활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장 표창도 몇 차례 받고 했지만, 승진 운은 나빴습니다.
4급 과장 승진을 동기중에 꼴지로 했습니다.
6개월마다 돌아오는 인사시즌때마다 기대와 실망,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동기와 동료들 승진하는 소식만 보다보니 소위 말하는 C급 직원이 바로 나를 말하는거구나 싶더군요.
결혼하고 첫 아이아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딱히 다른 기술도 없고 나갈 수도 없고.... 그냥 다녔습니다. 존버한 거였죠.
그러다보니 막차를 타고 동기중에 꼴찌로 4급이 되었습니다.
쩝.
여차저차 일을 하며 차장을 달고, 3급 팀장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승진 대상이 되면 일을 (유난히) 열심히 합니다.
승진 직전의 고과가 중요하니까요.
윗분들도 알려줍니다. 티나는 거 해서 티내고 승진하라고.고참을 승진시키는 게 그분들에게도 좋고, 후배들에게도 길을 열어주는 것이니까요. 남들처럼 열심히 했습니다. 성과도 났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인사부에서 승진 안된다고 했다더군요.
허걱.
이런.
완전히
절망하게 되더군요. 아 난 진짜 인사부에 빨간줄 그어진 인간인가보구나.
그나마도 동기들 전부 3급됐고, 막차였는데, 인사부가 태클거니 끝이었죠.
이제 뭐 방법이 없으니 참 답답하더군요.
승진도 못하는 차장으로 남은 조직 생활을 해야한다는 게 끔찍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뭐 안될것도 없습니다.)
이젠 애도 둘이고,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하고, 외벌이라 답이 없었죠.
그냥 다시 존버해야겠다 생각하고 하루하루 다녔습니다.
인사발표 당일날도 기대가 전혀 없던지라, 담당 팀장님이 몇몇 직원들이랑 문서 뜨고 나면 좀 일찍 퇴근해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미리 얘기를 한 상황이었죠.
네 뭐 그런데 승진자에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당시 여러가지 카터라 통신이 있는데 신뢰할 수는 없지만, 신빙성은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또 막차로 승진을 하고 부지점장 생활을 하다가 ... 몇 년 전에 퇴직했습니다.
----쓸데없는 썰이 길었네요.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은행의 인사 정책에 불만 많으실겁니다.
저도 누구보다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도 마찬가집니다.
은행권은 거의 비슷하고요. 대기업도 그렇고, 소위 잘나가는 네카라쿠베나 글로벌 IT 기업들도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없습니다.
조직은 조직이 잘 성장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원은 그냥 부품일뿐입니다.
부품이 잘 성장해주고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좋긴 하겠지요. 그래서 승진도 시켜주고, 자기개발도 시켜주고 하는데....
사실 조직은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도 자신의 생존과 번영이 중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조직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따위의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은행을 나와도 그 어떤 조직도 그런 곳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네 회사로 오면 잘해주겠다. 임원 시켜주겠다. 창업공신으로 인정하겠다. 워라벨이 균형잡힌 회사다. 직원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다. " 따위의 말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분위기 좋을 때는 진짜 그런 것처럼 굴기도 하지만, 곧 표정 바뀝니다.
조직은 조직의 생존이 우선입니다.
조직이 위태롭다 싶으면 오너를 제외한 모두는 아웃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핵심기술이 있으니까...' '나를 대체할 사람은 없으니까...' 따위의 근자감은 의미가 없습니다.
제 얘기입니다.
제가 은행 퇴직을 결정했을 때 저는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임원으로 그 회사에 갔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을 뽑고 팀을 만들고 등등등 고생은 많았지만,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더군요.
결국 제가 오너가 아니었으니 ...
등에 칼꽂힌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되더군요.
그리고 실직이었습니다.
월급이 계속 안나오고 통장의 돈을 꺼내쓰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인지 해본 사람만 압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 가족들 생활비도 못갔다주는 지인 얘기 들으면 정말 앞이 깜깜해집니다.
퇴직을 고민중이라면,가장 먼저 체크해볼께 '돈'입니다.
지금 받는 월급도 부족하시잖아요?
나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만큼 대책없는 게 없습니다.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분이라면 100번 더 생각해봐야합니다.
은행나가면 뭐 할건지 정말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지만, 치킨집, 커피숍 ... 안됩니다.
몇 억으로 프랜차이즈 같은거 시작해보려고 하시겠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90%이상은 망합니다.
만약 퇴직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소 원하는 퇴직시점보다 5년전에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커피숍을 하고 싶으면, 주말에 알바라도 시작해야 됩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빠삭하게 알아야 됩니다.
프렌차이즈 본사에서 도와주니까 대충 어떻게 되겠지 싶겠지만, 그 본사는 가맹점주를 위해 있는게 아닙니다. 가맹점이야 없어졌다 생겼다 하는 것일뿐입니다.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실제로 그 일을 해보고, 직접 가게를 차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본인 명의로 안될거니 배우자든 누구든.... 은행을 관두기 전에 해봐야합니다.
그렇게해서 실제로 돈을 벌어봐야 합니다.
매출액이 아니라 당기순이익을 계산해봐야 합니다.
이것을 최소 3년 이상 해봐야 합니다.
마라탕, 탕후루 처럼 몇달 반짝하다가 망하는 아이템은 부지기수입니다.
무인카페도 잘되는 곳만 되고, 나머지는 월1~2백 남기기 어려운 곳도 많습니다.
편의점도 알바생이 아니라 점주가 직접 일하는 곳이 많습니다. 본인 월급 정도나 남으면 다행인 곳도 많고요.
아직 은행을 관두기 전이라면... 은행 수입이 얼마나 짭짤한 건지 비교가 됩니다.
은행은 심지어 짤리지도 않습니다.
승진을 못하면 너무 허무하고 자괴감든다고요?
퇴사하고 차린 가게가 망하고, 빚이 생기고, 집에 생활비를 못갔다주면 정말 지옥이 펼쳐집니다.
승진못한 자괴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승진탈락이나 격지점포 발령이나 타행보다 낮은 급여, 복지 , 정규/비정규 갈등, 일못하는 상사, 일안하는 동료/후배, 미친 지점장, 답안나오는 직원 등등 은행을 다니고 싶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은행에 입행할 때 사실 이런거때문에 들어온거 아니지 않나요?
월급 많이주고, 짤리지 않고, 복지도 좋아서 들어오지 않았나요?
(제가 그래서 남들도 그런줄 압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들어온 이유는 전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동기가 승진했고, 옆직원이 단축근무하고, 나만 격지로 발령내고, 상사가 지랄맞고 이런 것들은 내부에서의 '비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비교'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고.
그.래.서.
은행 밖에 있는 더 많은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가 더 많습니다. 그 친구들 연봉 들으면 정말 작다는 걸 알게 됩니다.
행복과 연봉이 직결되는 게 아닙니다.
은행을 나가고 싶다면, 나가서 할일을 먼저 정하고 미리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하는 친구를 사귀시고, 자주 만나세요.
그 쪽 세상 얘기를 많이 들어두시고요.
퇴근후에 주말에 은행원 만나는 건 사실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은 습관적 야근, 강제 회식, 강제 주말 산행 이런거 많이 없어지기도 했으니까요.
밖에 있는 사람 많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은행 동기 동문 고객 거래처 이런거 말고, 내가 은행원인걸 모르는 사람들을요.
퇴직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러해야 도움이 되실 겁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세줄요약
1. 실제 돈을 벌 수 있는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나가지 마세요.
2. 그래도 나가고 싶다면 최소 5년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는 나가지 마세요.
3.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수면, 휴식, 운동, 취미를 챙기고, 정신과도 다니세요. 저도 오래 다녔는데 분명히 도움됩니다. 일단은 나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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