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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freeboard_2005127
    작성자 : 염소네
    추천 : 14
    조회수 : 1473
    IP : 58.140.***.196
    댓글 : 20개
    등록시간 : 2023/04/01 03:51:00
    http://todayhumor.com/?freeboard_2005127 모바일
    그녀의 너무 화려한 등산복
    3년도 더 되었을거에요
    그녀와 내가 비슷한 시간대에서
    등산하고 하산하면서 마주친 지가,

    집에서 10시에 칼같이 등산을 시작하면
    딱 중턱에서 하산하는 그녀와 마주칩니다
    일행 없이 오고가는 그 짧은 순간
    3년도 더 되게 그렇게 마주쳤네요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말문을 텃네요
    비가 간간히 오는 가을이였는데
    생각보다 쌀쌀했지요
    나는 방수가 되는 재질의 옷과 모자, 
    나름 쌀쌀한 기온에도 대비를 하고 올랐는데
    가방에는 예비용 우산도 하나 더 있었구요
    딱 어느 위치에서 그녀와 마주쳤네요
    우산도 없이 좀 얇은 옷의 그녀
    그래서 얼른 배낭에서 예비용 우산과 목도리를 꺼냈고
    잠시만요 하고 그녀에게 건냈지요
    의외로 감사하게 받던 그녀
    다음에 마주치면 주세요 하고 
    각자 가던 길을 갔지요
    그리고 다음날, 산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녀
    웃으면서 
    오늘은 산아래  맛있는 카페에서 땡땡이 칠래요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 나
    나보다 여섯살이 많은 그녀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뇨 그냥 희숙씨라고 이름 불러요
    나도 그렇게 부를게요

    그렇게 62살 희숙씨와 
    나는  그 가을에 친구가 되었다

    그렇다고 산을 같이 다닌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 시간에, 
    또 그녀는 그렇게 자기 시간에
    전화번호를 교환했지만
    특별히 연락하는 일도 없었고
    산행 중간에서 마주치면
    응 왔어요
    조심해서 와요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주말에는  꼭 남편과 등산을 했고
    주말에도 그녀는 같은 시간에 혼자였다

    코로나로 가족모임을 하지 않던 설날에
    밤새 축구를 본 남편을 뒤로 하고
    혼자 산에 올랐는데,
    거기서 희숙씨를 만났다
    그녀는 또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땡땡이 어때요
    그거 좋은데요

    그렇게 같이 산을 내려와 산아래 문 연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나는 궁금한게 있었다
    그녀의 등산화, 등산복...
    희숙씨가 입기에는 너무 화려한  등산복
    절대로 본인이 골랐을 것 같은 화려한 
    색과 무늬가 참 궁금했다
    종류도 참 가지가지였다

    그녀의 대답
    응, 죽은 남편 선물

    가족력이 있는 희숙씨의 남편은
    형제가 마흔이 되면 거의 간경화가 오고 간암이 발병했단다
    시부가 그랬고 위로 형 둘과 누나가 그랬단다
    그래서 두 부부는 그 가족력이 무서워
    자녀를 낳지 않기로 했고
    희숙씨는 남편의 건강관리에 그렇게 공을 들였단다
    하지만 가족력은 무서웠다
    결국 다른 형제보다는 20년 늦게 찾아왔지만
    간경화에 간암 진행 속도가 빨라져
    발병 1년만에 남편은 이미 손쓸수가 없었단다

    남편이 가망 없음을 확인한 어느날
    남편이  백화점을 가자고 했단다
    그 날 그 백화점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6군데를 돌며
    가장 이쁘고 화려한 옷과 등산화를 모조리 샀단다

    나 가고 없어도 등산해
    이 이쁜 옷과 신발 신고  등산해
    그러면 내가 잘 알아볼거야
    한 눈에 다 알아볼거니까...

    남편이 떠난지 3년 남짓
    그녀는 그 화려하고 이쁜 옷을 입고
    늘 같은 시간에 산을 오른단다
    그 때 남편이 사 준 그 이쁜 옷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산을 누비며
    남편과 대화를 한단다

    너무 조용한 희숙씨는 그래서 늘 혼자였구나
    남편과 대화하느라 바빴구나

    이번주도 세번 그렇게 이쁜 옷차림의 희숙씨와 마주쳤다.
    우리는 여전히 손인사로
    마주쳐 지나간다

    나는 희숙씨의 그  즐거운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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