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차를 지나고 있다 우린 뭘 그렇게 용감하게 서툴게 결혼을 결심했고 뭘 그리 당돌하게 시댁에서 부모님 모시고 살 수 있다고 시댁에서 사니 살림 필요없다는 말에 뭘 또 그리 순진하게 맨몸으로 시댁에 들어가서 살다가, 시어머니의 술주정 몇마디에 또 아주 당돌하게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을 탈탈 털어서 지하 방 한칸을 구하고 결혼 전 자취 살림을 죄다 모아다 그렇게 결혼생활한지 어연 30년,
큰아들 낳고 두 달만에 면접 보러간 출판사에서는 면접에 곰 한마리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부탁하신 교수님의 성실하고 순진함 강조와 그 곰같은 이미지가 딱 들어맞아 지하철도 출발역과 종착역을 헛갈려하며 종각역 뒷골목을 굽이지나는 출판사로 하루도 지각 결근없이 출근했다
월급 65만원 돌도 안된 아들을 맡기는 비용이 35만원 또 맹랑했지 주변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 그래도 당당하게 출근했지 그 65만원으로 30만원 적금을 들었지 점심식사비가 3500 나왔는데 열심히 도시락 싸다니며 그 돈으로 출퇴근비용을 댔지
딱 하루, 큰아들이 수두에 걸려서 조퇴를 하고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에 동네슈퍼를 지나는데 딸기가, 너무 이쁜 딸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꽤 비싼 가격표를 떠억 붙이고...
도저히 살수 없는 가격이였다
돌아섰다 친정집은 과수원을 꽤 크게 했고 아버지 경찰 오래 하셔서 먹을게 넘치는 집이였는데 나이차이 나는 남편 친정에서 너무 먼 시집을 그렇게 반대한 아버지 덕분에 아주 굳세고 독한 마음으로 절대로 없는 티를 내지 말자 죽어도 아주 지가 좋아서 환장해서 한 결혼이니 아주 똑부러지게 사는 모습만 보이자 생각하고 몇년을 버텼는데 그 놈의 딸기가 그 이쁜 빨강의 윤기어린 딸기가 그 날 나를 그렇게 서럽게 만들더라
문득, 그 날 저녁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엉뚱한 걸로 시비도 붙고 며칠을 삐져서 말도 안했다 하도 이상한 짓을 하니 하루는 남편이 내 일기장을 훔쳐봤더라 그리고 그 원망에 사로잡힌 딸기 이야기를 읽었더라 그랬어도 우리 형편에 딸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딸기를 싫어하기로 했다 아주 딸기를 보면 알러지 있는 사람처럼 싫어하기로 했다
그러다 최근, 딸기농사 짓는 유투버를 후원했고 그 분이 딸기를 보내줬는데 내가 그걸 그렇게 맛있게 먹었단다 그 생각이 났난다 30년전 그 일기가 생각났단다
주말아침, 남편은 딸기를 사러간다 제일 좋은 놈으로다 골라온다 딸기는 가격을 보지도 않는단다 정성껏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 아침에 나는 세상에서 딸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달게 맛있게 먹어준다 그걸 예순 넘은 남자는 물도 안마른 손으로 연신 집어준다 깔깔대며, 딸기를 먹는 내모습에서 30년 그 맹랑했던 나를 찾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