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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메인스트림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고 나서, 아니 어쩌면 더 직접적으로 미국인들 손에 너도나도 삼성 갤럭시 폰이 쥐어지고 미국인들 가정마다 LG 티비, 삼성 냉장고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현대 기아차를 그냥 싸기만 한 차가 아니라 싼데 질도 좋은 차라고 여기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한인타운 한인 2세들이나 좋아했거나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만 소비되던 한국 문화가 이제 백인 주류 미국인들에 의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 문화가 바뀐 건 별로 없는데도,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부당하게 폄하해 온 한국 대중 문화가 가진 독특한 콘텐츠에 갑자기 마음을 열고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한국 콘텐츠를 통해 비추어진 남한이라는 분단 국가의 국민들의 부유함, 개성, 멋, 독특함 등등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마침 PC 인터넷 문화에서 스마트폰 문화로의 전이가 시작되던 때입니다. 훨씬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SNS라는 독특한 다자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전파하는 시대가 마침내 열렸습니다.
이 때 저는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보통의 일반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견해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동안 TV나 거대 프레스 등에서 백인 주류 엘리트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전달되던 한국에 대한 견해들에 균열이 일어나고 한국계 미국인들의 목소리, 한국을 궁금해하고 한국 대중 문화를 사랑하는 다양한 인종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견해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합쳐진 목소리가 현재 미국의 주류 미디어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꿈만 같은 일입니다.
이런 환상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 미국에서 한인은 없는 듯 있는 존재였습니다. 세탁소, 주류 상점, 수퍼마켓 등 열심히 일해서 돈 잘 벌고 애들 교육 잘 시키지만 대부분 언어의 한계로 늘 흑인이나 라티노 네이버후드 변두리에서 더불살이 하는 집단. 개개인은 똑똑하고 좋은데 집단으로는 별로 공헌하는 것도 없고 자기 자식, 자기 가족만 챙기는 호감이 안 가는 아시안 유대인.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랑 닮아 보이는데 어디가 다른지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들.
미국인들은 북한이 가장 괴상하고 잔혹한 왕국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이런 나라를 만드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외부 요인이 자기 나라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자신들이 민족 자주적인 나라를 세우고 싶어했던 남한인들의 노력을 어떻게 좌절시키고 한반도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한국 전쟁부터 이제까지 원조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못된 짓들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지금 하마스에 의한 민간인 테러에는 거품을 물고 단죄하면서 자신들 미군에 의해서 엄청난 수의 남북한 양민들이 학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모르쇠입니다. 인정하는 쪽도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만 합니다. 2000년대까지 미군 기지 근처에서 일어난 수많은 강력 범죄가 SOFA라는 협정에 의해 그냥 묻혀졌고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전, 미국에서는 아무리 누가 이런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진보적인 타임즈, 포스트라도 이런 건 기사거리가 안 되었습니다.
오래 전 제가 전에 대학원생으로 있던 학교에서 평화에 대한 포럼이 열려서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과 행동가들이 모여서 발표를 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을 연구하는 미국 어느 대학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일본인 교수도 발표를 했습니다. 그는 발표 말미에 미국 정부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질의 응답 시간에 저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 원자탄이 아니었다면 일본인들의 한국인들 중국인들 만주인들 필리핀인들에 대한 식민지 노예화를 어떻게 끝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원폭 사실과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을 왜 분리시켜 일본이 아시아에서 인류의 보편 가치에 반하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사실에는 침묵하는가. 당신이 말하는 평화는 강대국들 사이의 평화를 말하는 것인가.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는 발표자에게 대답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어떤 중년의 백인 여성 청중이 손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일제로 인한 강제 성노예과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발표자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발표자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손을 들었지만 사회자는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저의 눈길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소리질렀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우리의 질문을 정치적이라고 답변하지 않겠다면 당신의 연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본인 피해자들만 평화를 누려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연구는 정치 중립적인가. 발표자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이 다 들리도록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너네들이 한 소리들은 그냥 다 bullshit이군. 나머지 청중들이 웃었습니다. 저는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전례없이 높아진 이 때에도, 미국에서 한국은 여전히 약소국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이 상대하는 직접적인 외교 대상국으로 미국의 최애국인 일본과 미국에 대등한 중국이 있음을 감안할 때, 미국 주류 엘리트 사이에서 한국은 메리트가 적은 나라라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박근혜와 손잡고 위안부 협정을 강행한 것은 미국이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한국인들의 역사적 감수성이나 견해 입장 등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도 미국 정치계에서는 한국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바이든이 인플레이션 액트라는 괴상한 법으로 미국에 직접 투자한 현대자동차의 뒷통수를 후려 갈길 때에도 바이든에게 한국을 대신해서 의견을 전해준 미국 국회의원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놓아 한반도의 긴장을 높일 때에도 우려하는 미국 내 한인들의 목소리는 전혀 워싱턴에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이익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누가 대변해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운명이 미국인들 손에 좌우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요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보고 듣고 읽고 있으니, 예상대로 이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지나칠 정도로 균형을 잃고 이스라엘에 기울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레딧, X, 페이스북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장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왜 점점 더 미국 주요 도시 곳곳에 모여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하고 더 anti-semitic이 되어가는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마스의 잔혹한 테러는 이 참에 팔레스타인을 멸절하는 명분이 된 느낌입니다. 모든 상식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폐기한 이스라엘 군부의 방식은 오히려 적절한 혹은 어쩔 수 없는 대응이 되고, 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명 피해는 제대로 발표도 보고도 되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팔레스타인을 대변하는 주류 언론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손수 전단지를 만들어 거리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이스라엘 하마스 둘 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미국 주류 언론의 손쉬운 양비론에 익숙해진 일반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거절당해야 합니다. 결국 팔레스타인도 다 똑같은 놈들이지 하는 소리도 들어야 하구요.
나라가 힘이 약할 때 외교력이 없을 때 아무도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그 절박함과 절망감을 우리 선조들은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아시안 기생인으로 주류 사회에 더부살이하면서 그런 패배감을 조금은 맛보았습니다. 그 약간의 패배감도 너무나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따위의 진실은 개나 줘버려.
나중에 학교에서 그 여성을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그 학교 영문과에서 19세기 20세기 아이리쉬 문학을 전공하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교수였습니다. 어떻게 근현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서 잘 아냐고 물었더니 아일랜드와 한국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고 자기 딸이 한국에서 입양되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내 편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혹시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에 논쟁이 생기면 아일랜드 편을 한번 들어주라고 하더군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교수가 되어 수업 중에 수많은 약소국 출신 이민자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위구르 출신, 소말리아 출신, 이란 출신, 베네주엘라 출신,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멕시코 출신 등등. 모두 미국 주류 미디어에 한결 같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악마화되는 나라입니다. 한편으로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포용하면서도 그들의 실질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는 미국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은 팔레스타인의 경우에서처럼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씨앗을 키우는 중입니다.
학생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우리 시대에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여러분이 미국 주류 엘리트 사회에 편안하게 편입되어 여러분 공동체 혹은 여러분의 이웃에게 가하는 불의와 부정에 침묵하면 당장 여러분에게는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자녀 혹은 후손들이 그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유태인 학생들에게 이 말을 더 강하게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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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actable
저도 미국에 막상 와보니... 겉으로는 다양성을 내세우고 DEIJ를 외치지만 이 모든게 다 위선에 불과한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현실이 냉혹하게 느껴질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제가 하는 공부는 편견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걸 강조하는 분야인데도 말이죠...
수박만한사과
전쟁 소식을 특히 미국 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SNS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접하게 되는것을 보면서 프로파간다 수단으로서 이보다 더 막강한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세계여론이 좌지우지 되는것을 보면 좀 무섭습니다.
TLDR
개인적으로 주류층의 DEIJ는 “패션” 일 뿐이라고 봅니다. 한국 문화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소비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 뿐이지 그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일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면의빛
하마스가 야만적인 방식을 버리고 국제법에 맞는 투쟁방식을 취한다면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는 이 참에 하마스를 더 손쉽게 없애버리겠지요. 약자에게 평화로운 방식을 요구하는 강자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진실이 승자에 의해 독점되는지 패자의 기억이 귀환하기도 하는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관점과 기억은 단순히 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는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기운 서구 미디어의 프로파간다 때문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이 사태의 더 깊은 맥락에 이스라엘의 추악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너무 단기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더이상의 답변은 달지 않습니다.
내가그렇지뭐
제가 비록 세계뉴스를 제대로 찾아본지 몇년 된건 아니지만,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서도 국제외교는 무조건 "힘의 논리"더라구요. 앞에 그럴싸한 명분을 붙일수 있느냐, 아니면 억지 명분이냐 차이 정도 밖에 없고, 무조건 힘의 논리, 자국 우선주의가 이 세계 절대 명제더라구요. 이게 이 세상의 룰인데, 룰을 깰 힘은 없으니, 우리도 무조건 국력을 계속 키우는게 장땡인거 같습니다.
박스엔
외치신 후 교수님께 찾아와서 조용히 동조하는 분들도 없으시던가요?
내면의빛
제가 씩씩 거리면서 일찍 퇴장했기 때문에 저에게 동조하시던 분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질문했을 때 그 강당에 있단 수많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경멸 섞인 눈빛 (어디서 감히~)은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날 일이 저에게는 전혀 속시원한 무용담이 아니라 뼈아픈 패배감 짙은 기억입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일제 시기 한국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별 관심도 없고 설사 안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훨씬 더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체험한 거라 마음이 안좋았거든요.
메카니컬데미지
웃기는 일이더라고요. 강한 자가 약자를 험하게 다룰 때는 이젠 지나간 일로 치자고 하고 약자가 좀 쎄게 꿈틀하면 강자와 페어플레이 안한다고 욕하더군요.
여기에서도 정말 많은 다수가 악에 받친 약자에게 페어플레이를 요구해요.
Barakah
2018년 초에 인도에서 열리는 전기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APAC 국가들만 모였었는데, 주최측인 인도인이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고 저녁에 초대를 하더라고요. 바에서 술을 마시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인도인이 "Korea is a part of Japan." 이라고 하면서 웃더라고요. 기분이 나빠서 슬며시 나와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기분 안 좋았던 기억이었습니다.
출처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355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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