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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위처럼 세종대왕을 세종장헌대왕(世宗莊憲大王)으로 기록했듯이
조선은 임금을 태조(太祖) 세종(世宗) 등 '조종(祖宗) 존칭'함.
그런데
'조종(祖宗) 존칭'은 오직 황제국(천자국) 임금에게만 쓰는 존칭이며
조선의 임금들이 '조종(祖宗) 존칭'을 썼다는 것은 스스로 황제국이라 표방한 것.
즉 조선은 한편으로는 중국에 사대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세상의 중심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위처럼
대동천고개몽룡(大東千古開曚曨)이라는 귀절이 나옴.
대동천고개몽룡(大東千古開曚曨) 풀이.
대동(大東)은 동쪽의 나라인 한국을 뜻하는데
동국(東國)이라 안하고 대동(大東)이라 한 것은
대(大)자를 넣은 것은
한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황제국이라는 것을 표방한 것.
동아시아에서 나라이름에 대(大)자를 넣는 것은 오직 황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명나라는 스스로 대명(大明)이라 하고
청나라는 스스로 대청(大淸)이라 부름.
그러므로
대동(大東)이라 쓴 것은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다"라 표방한 것.
천고(千古)
오랜옛날 인류문명이 처음 생길 즈음을 뜻함.
개몽룡(開曚曨)
몽(曚)과 룡(曨)은 둘 다
날이 밝아오는 시작을 뜻함.
새벽에 태양이 어슴프레 떠오르는 일출을 뜻하고
여기서는 인류문명의 시작을 뜻함.
그러므로 개몽룡(開曚曨)은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작을 열었다(開)'는 뜻.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려 하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데
그 중심세력은 사대주의 하던 사람들.
한자만 쓰면 되지 왜 다른 글자(한글)도 쓰려하느냐는 것.
세종대왕이 그러한 세력의 방해를 극복하고 한글을 반포한 것은
근본적으로 세종대왕이 조선(한국)의 역사적 원천적인 독립성과 뿌리를 믿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동천고개몽룡(大東千古開曚曨)이라는 귀절을 [훈민정음 해례본]에 쓴 이유는
"조선(한국)은 오랜옛날 문명의 시작을 스스로 연 나라인므로
지금 스스로 한글을 반포하는 것 역시 못할 이유가 없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세종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 신하를 보내 천제(天祭)를 지내게 함.
세종실록지리지 [강화도호부]편에 나오는 강화도 참성단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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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호부의) 진산(鎭山)은 고려 마리산(摩利山)이다.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4각형) 아래는 둥글며(원형)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예로부터 매년 봄·가을에 대언(代言 : 벼슬이름 = 승지)을 보내어 초제(醮祭 - 천제(天祭))를 지낸다.
금상(今上) 12년에 비로소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재궁 벽 위에 ‘동(東)’자 운(韻)의 시(詩)가 있으니, 태종(太宗)이 잠룡(潛龍) 때에, 일찍이 대언(代言)이 되어서 이곳에서 이 시를 지은 것인데...
(원문)
鎭山, 高麗 摩利山、在府南, 山頂有塹星壇, 壘石築之, 壇高十尺, 上方下圓。 壇上四面, 各六尺六寸, 下廣各十五尺。
世傳朝鮮檀君祭天石壇, 山麓有齋宮。 舊例, 每春秋遣代言設醮, 今上十二年庚戌, 始遣二品以上。
齋宮壁上, 有東字韻詩。 太宗潛龍, 嘗爲代言, 齋宿于此, 次韻, 今刻于板上, 以金塡之。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id/kda_40004005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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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신하를 보내 참성단(塹星壇)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 것은 고려시대에도 했던 일이며
조선 태종은 임금에 오르기 전 벼슬할 때 직접 가서 천제를 지냈으며
세종은 그 일을 하는 신하의 등급을 2품 이상으로 더 높인 것.
조선(朝鮮)이 개국할 때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지은 것은
고조선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고
그러므로 조선에서도 고조선 단군왕검 추모행사는 당연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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