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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까지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호랑이가 가장 많은 곳이었고, 그런 만큼 호랑이에 관련된 전설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로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사람의 영혼이 호랑이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만드는 창귀(倀鬼)라는 귀신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이 창귀에 관련된 이야기 한 편이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야담집인 파수록에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용사(勇士)가 있었습니다. 그는 힘이 매우 세고 용감해서, 한 번 나타나면 모두들 겁을 먹고 도망치는 무서운 호랑이를 상대로 화살이나 조총 같은 무기가 없이 오직 맨몸으로 싸워서 죽였습니다. 용사는 호랑이를 잡으러 산과 숲을 바람처럼 누비고 다녔으며, 그가 맨손으로 때리고 찢어 죽인 호랑이가 어찌나 많았던지 거의 수천 마리나 된다는 소문도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 용사를 불러들여 “사나운 맹수인 호랑이를 죽여 백성들을 지킨 공이 크다.”라고 칭찬을 하면서, 군관(軍官)의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용사는 정식으로 국가에 소속되고 월급을 받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군관이 된 이후, 용사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 일행에 합류했는데, 북경으로 떠나는 도중에 폐사군 지역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폐사군이란 조선 초기에 국토 개척을 하면서 여진족들의 잦은 침략과 추위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백성들을 철수 시킨 지금의 평안북도 지역인 우예(虞芮), 여연(閭延), 자성(慈城), 무창(茂昌)을 가리킵니다.
폐사군 지역은 오랫동안 사람의 자취가 끊긴 곳이라 그런지 하늘을 가릴 만큼 나무가 우거지고 주위에 아무도 살지 않는데다가 온갖 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어서, 사신 일행들은 마치 귀신들이 사는 저승으로 들어온 것처럼 음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땅히 머무를 숙소가 없던 터라 사신 일행은 길에서 노숙을 했는데, 겨울철이어서 차가운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 한층 으스스했습니다. 그렇게 사신 일행이 힘들게 잠을 자는 상태에서 조금씩 눈이 내렸는데, 사신 일행을 이끄는 상사(上使)는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하얀 깃발을 가지고 눈 위를 걸어오더니, 누워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잠든 용사의 머리카락에 꽂고는 웃으면서 달아났습니다. 여자가 사라지자 누워있던 상사는 하얀 깃발을 빼버리고는 도로 자리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두 눈을 번뜩이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사신 일행을 찾아와서는 일행들을 두리번거리며 한참 훑어보다가 떠나버렸습니다. 자는 척하고 누워있던 상사는 그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호랑이가 떠난 뒤에 조금 전의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서는 또 하얀 깃발을 잠든 용사의 머리카락에 꽂고서 달아났고, 상사는 그것을 또 빼내 버렸습니다. 그러기를 5번이나 했는데, 마침내 그 커다란 호랑이가 와서는 무척 화가 난 것처럼 울부짖고는 떠나버렸습니다.
한편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에 사신 일행들은 잠기운이 달아나 버렸고, 그들을 향해 상사는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용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 위에 난 호랑이의 발자국을 쫓아서 말을 타고 달려간 끝에 수백 마리의 호랑이들이 있는 북쪽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용사는 방금 전에 사신 일행을 찾아와서 울부짖은 큰 호랑이를 발견하고는 왼팔로 목을 쥐고 오른팔로 호랑이의 콧구멍에 밧줄을 꿰어서 말의 꼬리에 매달고 돌아왔습니다. 용사의 힘에 놀란 사신 일행은 그때부터 용사를 가리켜 ‘호랑이를 잡은 장군(虎將)’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이 기이한 이야기에서 용사의 머리카락에 하얀 깃발을 꽂으러 나타난 여인은 바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호랑이의 앞잡이가 된 창귀를 뜻합니다. 창귀 여인은 자기 주인인 호랑이를 위해서 그 호랑이가 잡아먹으려는 인간을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하얀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 그리고 창귀 여인이 사라진 뒤에 나타난 호랑이는 아마 용사에게 자기 동족을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왔겠죠. 만약 상사가 잠에서 깨어서 그 창귀 여인이 꽂은 하얀 깃발을 빼주지 않았다면, 잠들어 있던 용사는 꼼짝없이 호랑이한테 잡아먹혔을 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320~32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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