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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디즈니는 라푼젤을 기점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그동안 드림웍스와 픽사에게 밀려 구겨졌던 종가의 자존심을 당당히 회복하게 되었다.
겨울왕국에서 눈에 띄는 점이라면 단연 마법 같은 영상과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지금 겨울왕국의 인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영상과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는 많이 나왔지만 그것만으로 역대 기록을 모두 갱신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왕국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아도 갸우뚱거려지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겨울왕국의 스토리는 멘탈 약한 가출 언니의 귀환 이야기 정도로 요약해도 될 정도로 큰 굴곡은 없다. 세세한 디테일을 살펴보아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나,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설정이 많다. 분명 냉철한 관객의 눈에는 태클을 걸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겨울왕국이 전체 작품으로 보았을 때는 이토록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이 애니메이션이 우리의 보편적인 내면의 심리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들이 '원형(Archetype)'이라고 부르는 무언가이다.
19세기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것의 원인이 되는 근원적인 심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 원인을 개인의 유아적인 경험 속에서 찾았고, 그의 제자이자 라이벌인 칼 융은 인류 전체에 어떤 본능적이고 계통 발생적인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어찌됐건, 인간에게는 표층적인 심리 외에 좀 더 근본적인 심리 구조가 있고, 또 비슷한 사회, 혹은 사회화의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 비슷한 심리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융의 용어에 따르면 '원형'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흥행해온 영화들은 모두가 이러한 원형을 효과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속에서 성장해 가면서 작게는 가족, 크게는 사회를 위해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을 억누르면서 산다. 때문에 사회화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억눌린 욕망에 대한 불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한 억눌린 욕망을 효과적으로 배출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면 그 영화는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배출의 방법적인 부분이 관건이 된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사람의 근원적인 욕망을 건드리는 것은 오히려 관객의 거부감을 유발한다. 통상적으로 사람의 욕망은 그 사람에게 있어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본능적인 욕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배출하게 만드는 포르노를 배척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그런 욕망을 적절한 판타지로 아름답게 포장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 및 모든 대중 작품들의 선결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디즈니는 무척 영리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겨울왕국의 풍경, 음악,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느끼게될 근원적인 카타르시스를 은폐하는 데에 성공했다.
따라서 관객들은 아름다운 화면 속에 숨겨진 욕망의 원형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고 그 욕망을 해소함으로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겨울왕국에서 건드리는 근원적인 원형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타자와의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뜬금 없이 웬 타자와의 관계 맺기? 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엘사라는 인물이 타자에 대해 공포를 극복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주제인 영화이다. 거의 모든 영화적 장치가 이 주제 하나를 위해 배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영화적 장치들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여러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작품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안나가 아니라 엘사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엘사라는 인물이 타자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기 때문에 안나가 주인공인 엘사의 가장 중요한 타자, 대변자, 분신까지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지금, 시간 상으로는 안나보다 훨씬 짧게 출연한 엘사가 모든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봐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은 결국 안나가 아닌 엘사인 것이다.
영화는 엘사가 부모님, 특히 아버지로부터 강한 금지 명령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금지 명령은 바로 엘사가 가진 '마법적 능력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이는 극 속 상황에서는 당연한 요구이다. 엘사의 능력 자체가 위험하고 그 능력으로 인해 동생인 안나가 죽을뻔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엘사의 마법적 능력은 엘사의 감정에 따라 발현되기 때문에 마법적 능력을 제어하라는 것은 곧 그녀의 감정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금지 명령은 엘사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라는 명령이 되어 버린다.
특히 곧이어 겪게 되는 부모님의 죽음은 아버지의 금지 명령을 하나의 저주처럼 엘사에게 각인시켜 버린다. 때문에 엘사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고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얽매여 사람을 피해다니는 강박증적인 성격이 되어 버리게 된다.
이러한 엘사의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강박증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근원적인 감정이다.
여기서 강박증자란 특이한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어릴 때 부모님에게 금지 명령을 받아보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또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즉, 사회화된 모든 사람은 이런 강박증적인 성격을 조금이나마 다 갖고 있다.
프로이트계 정신분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유아기 때의 아이는 원하는대로 마음껏 욕구를 분출하는 단계에서 처음으로 부모님(보통은 아버지)의 금지 명령을 받게 된다. 엘사같은 마법적인 능력이 없는 우리는 당연히 마법을 제어하라는 명령을 받진 않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울지 말 것, 화내지 말 것,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서나 싸지 말 것, 어머니와의 육체적 접촉을 끊을 것 등의 사회적인 절제를 강요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만, 한편으로는 타자=나의 욕구를 억압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아이에게 있어 최초의 타자는 바로 부모님이다. 물론 아이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의 명령에 순응하고 부모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은 분명히 나의 자연스러운 욕구 분출에 대한 억제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한 금지 명령을 받고 자란 강박증자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두려워하고 배척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바로 엘사처럼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마법 때문에 안나를 다치게할 까봐 문을 닫고 꼭꼭 숨는 엘사의 모습은 하나의 핑계이자 영화적 판타지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그녀는 타자가 두렵고 타자 앞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엘사의 마음들은 영화 속의 노래 가사에도 나타난다.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그들을 들여보내지 마, 그들에게 보이지 마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착한 소녀가 되렴, 늘 언제나 그래야 한단다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숨기고, 느끼지 말고, 그들이 알게 하지 마
여기서 가사의 주어는 '마법'이지만, 이것을 '욕망'으로 바꿔도 모든 가사가 들어 맞는다. 심지어 이 가사의 소녀가 되렴'이란 구절이나 쪽의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라는 가사는 엘사가 남들에게 좋은 모습,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함이야말로 강박증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큰 이상이자 강박이다.
이외에도 타자=두려움의 존재라는 요소는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가령, 안나의 동반자인 크리스토프 역시 사회성이 결여돼 있고, 사람보다는 사슴이나 트롤과 지내기를 좋아하는 괴짜로 나온다. 인간의 사회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엘사를 배척하는 악당들은 엘사의 고향땅 아렌델 출신이 아닌 옆왕국의 주요 인사들이다. 영화의 메인 악당으로 서로 애정도 위하는 마음도 없는 순수한 타자들이 나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타자들을 피해 엘사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설산으로 혼자 도망친다.
여기서 관객들이 1차적으로 카라트시스를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Let it go' 노래를 부르면서 왕관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얼음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사실 영화 자체만으로 보면 엘사가 왕국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동기는 무척 약하다. 실제로 안나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왕국 사람들이 수긍하지 못할 어떤 사고를 친 것도 아니다. (물론 실제론 쳤지만 안나가 올 때까지는 본인도 몰랐으니...) 그럼에도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엘사가 여왕으로써의 직위, 중압감, 사람들과 대할 때의 불안함을 모두 버리고 그동안 억제해왔던 얼음 마법을 팡팡 터뜨리며 리비도를 방출하는 장면은 그만큼 큰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강박증자는 바로 사회적 규율과 관념의 중압감을 강하게 받는 사람이다. 그들은 타자 역시 그 관념의 틀 안에서 보기 때문에 강박증자에게 있어 타자는 늘 피곤하고 두려운 대상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런 관념이나 타자와의 관계를 다 집어 던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욕망을 늘 느끼게 된다.
"The cold never bothers me anyway"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억압은 설산의 추위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이다.
영화 속 엘사는 한편의 노래와 퍼포먼스로 관객의 욕망에 대한 대리만족을 훌륭하게 이루어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이대로 엘사가 설산의 여왕이 되어 혼자 지내는 것으로 끝났으면 관객들은 도리어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강박증자가 아무리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회의 중압감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해도, 그런 부담 자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 즉 타자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설산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당장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질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엘사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존재, 안나가 필요한 것이다.
안나는 엘사에게 있어 타자지만 가장 감정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존재, 즉 가족이다.
또한 극중에서 유일하게 엘사의 능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엘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지 역시 엘사에게는 부담스럽다. 강박증자인 엘사에게 있어, 자신의 능력, 감정, 욕구는 모두 혐오스럽고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맹목적인 지지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런 엘사의 감정은 안나가 얼음성까지 엘사를 찾아왔을 때 나타난다. 엘사는 안나에게 "No escape from the storm inside of me (내 안의 폭풍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없어.)"라고 말한다. 왜 구체적으로 외부에 구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내 안의'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로 엘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구현화된 마법이 아니라 바로 내부의 충동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엘사는 안나를 필요로 한다. 관객의 관점에서 역시 엘사를 지지하고 엘사를 위해 헌신하는 안나의 모습은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러한 긍정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올라프'라는 캐릭터이다. 이 영화에서 엘사가 만들어내는 생물체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바로 올라프와, 안나를 쫓을 때 소환했던 거대 눈괴물이다. 이 두 존재는 바로 엘사의 상반되는 감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타자를 긍정하고 함께하고 싶은 감정과 타자로부터 도망치고 배척하고 싶은 감정을 두 캐릭터가 대변하는 것이다.
엘사에 의해 만들어진 눈사람인 올라프가 여름을 갈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웃기기만 위한 장치는 아니다. 그만큼 올라프의 창조자인 엘사 본인이 차가운 고독으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Hi, i'm Olaf. And I like warm hugs!"
때문에 올라프는 안나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애정을 보이며 심지어 별 연고도 없는 안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관객은 올라프의 상징성, 즉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엘사의 감정을 무의식 중에 느끼기 때문에 이런 올라프의 '비이성적인' 행동들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비치는 것이다.
결국 엘사는 안나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마침내 마음을 열고 마침내 타자와 함께할 용기를 얻게 된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헌신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디즈니다운 결말로 이야기를 매듭 짓는 것이다.
겨울왕국은 이처럼 사람의 근원적인 욕망을 포장하여 한편의 아르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하지만 욕망을 포장했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가식적이라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가진 근원적인 숙원을 가슴 속 깊이부터 끄집어 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명작의 기본 요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물며, 그 근원적인 숙원이 모든 사람이 바라 마지 않는 '사랑받는다'라는 감정이라면야!
이번 겨울왕국의 또 하나의 큰 시사점은 바로 디즈니의 오랜 전통과 뚝심이 빛을 발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식상한 주제로 또다시 한편의 아름다운 명작을 만들어낸 디즈니!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다시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처: 내 블로그
겨울왕국 포스팅 -> http://blog.naver.com/x_hunter/1501843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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