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가 정말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는것과....
여자는 도대체 왜 저 남자는 날 이렇게 빡치게 하는말을 골라 하는지...
저는 공감가는 내용이 많아 퍼왔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신지...
+ 마지막 내용까지 통합했습니다.
세계관에 대한 이해의 두 번째로, 동·서양의 세계관보다 훨씬 더 강력한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을 소개한다.
동·서양의 특성이 나눠진 건 1만년 정도의 시간 밖에 되지 않고, 그 사이 형성된 세계관의 힘도 약한 축에 속한다.
이걸 역으로 생각해보자.
1만년 정도 된 세계관이 그 정도 힘을 발휘한다면,
300만년 이상 된 세계관은 어느 정도 힘을 가질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출현을 약 300만년전으로 추정)
동양과 서양은 대화 도중 오해가 생겨도, 설명을 하면 쉽게 풀린다.
서로의 의도나 인식이 다르다는 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아무리 대화를 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이유를 몰라,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를 흔히 겪는다.
이는 오랜 기간 형성된 세계관에 의해 표현 양식이 다르고,
또 그걸 해석하는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참고로, 동양과 서양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지역이라 이해가 되지만,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아왔는데 왜 다르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살아도, 역할분담이 다른 원시생활을 오랬동안 해오면 세계관도 달라진다.
그럼 뭐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자.
■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
남자는 '대상중심적 사고를 하는 독립형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관계형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자기중심'은 ‘이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닌, ‘사고의 기준’이 자신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자.)
남자의 독립형 세계관은 커다란 세상이 있고, 그 세상과 분리된 세상을 바라보는 '나'가 존재한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세상과 분리된 존재들이다.
여자의 관계형 세계관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이런 나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이 연결되어 있다.
내가 관계하는(인지하는) 사람들까지가 ‘나의 세상’이고, 그 바깥쪽은 ‘나와는 다른 세상’이다.
남자가 인식하는 세상을 사회전체나 국가, 혹은 인류 전체의 범위라고 한다면,
여자가 인식하는 세상은 나와 내 주변까지다.
그 외는 모두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물론 여자도 ‘학습’을 통해 사회나 국가라는 개념을 알고 있지만, 사고의 밑바탕에 작용하는 세계관적 의미는 아니다.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인데, 이때 작용하는 '세상'이라는 개념자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각각의 세계관에는 동·서양의 세계관처럼 방향성이 존재한다.
남자는 무언가를 ‘주는’, ‘나아가는’, ‘관심을 주는’ 쪽의 '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여자는 무언가를 ‘받는’, ‘받아들이는’, ‘관심을 받는’ 쪽의 '받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방향성이 생긴 이유를 요약하면,
- 남자는 사냥을 위해 세상에 나가야 했다. (나가는 이미지)
- 사냥을 한 후 여자에게 가져다준다. (주는 이미지)
- 종족보전을 위해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유전자를 전해줘야 한다. (남자는 주고 – 여자는 받는 이미지)
오랫동안 이 패턴에 익숙해져, 남자는 주는 쪽, 여자는 받는 쪽의 이미지가 만들어 졌고,
단순히 유전자나 사냥감을 주고받는 문제를 넘어 인식의 방향으로 고착된 것이다.
‘사고의 기준(세상 vs 나)’과 ‘에너지의 흐름(주고 vs 받는)’ 의 차이로
대상을 이해(해석)하는 방식과 표현방식이 달라진다.
인식체계(인지구조)가 다르게 발달한 것이다.
남자는 사고의 기준을 대상에 두고, 그 대상에게 관심을 주거나 다가가는 쪽으로 작용하고,
여자는 사고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대상으로부터 관심이나 영향을 받는 쪽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모임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저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떠올리고,
여자는 '어떻게 하면, 저 남자가 나를 바라보게 할까?'를 떠올린다.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 자동으로
'주는 이미지'와 '받는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동기화된 추론'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서로 간 의견충돌이 발생했을 때, 서로 궁금해 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남자는 대상을 중심으로, 대상 자체가 왜 그러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당신 대체 왜 그래?” 라고 한다. (주는 이미지의 작용)
여자는 나를 중심으로, 대상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래서 "나한테 대체 왜 이래?" 라고 묻는다. (받는 이미지 작용)
대상 중심적 사고와 자기 중심적 사고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충 감이 잡히는가?
이걸 좀 더 응용해 보자.
남자와 여자가 차를 타고 달리던 중,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여자: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남자: 아니 난 괜찮은데?
여자: 흥!
남자: .....?????? (아니 왜 저러지?)
흔히 겪는 상황이지만, 서로 왜 저렇게 반응 하는지 모르고 있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삐쳐 있고, (왜 몰라주는지 이해 못하고)
남자는 여자가 왜 삐쳤는지 이해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자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알아야 한다.
자기 중심적 사고는 자신의 욕구 표현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자신의 욕구를 피력하는 게 당연한 일이므로, 그 당연함(욕구)은 생략하고 묻는다.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굳이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는 '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당신은?'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질문의 목적은 '내가 마시고 싶은 상황인데, 당신은?'이라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내게 동의해 달라고 물었는데 '난 괜찮아'라고 거절했으니,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삐치게 된다.
(굳이 답을 한다면, ‘커피 마시고 싶은가 보구나?’ 라고 해주면 된다.)
대상 중심적 사고를 하는 남자는,
화자에게 있어 대상인 '상대’(= 자신)의 의견을 묻는다고 인식(해석)한다.
그러므로 남자가 의향을 물을 때는,
'내가 그렇다.'는 개념이 빠진, 순수하게 상대의 ‘의향’만 묻는 질문을 한다.
순수하게 상대의 의견만 물은 것이니, 거절하더라도 묻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진 않는다.
이런 인식을 가진 남자가 볼 때, 여자의 삐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리하면
- 여자의 질문은, 내 의견에 대한 동의요구 (자기 중심적 사고)
- 남자의 질문은, 상대의 의향을 묻는 것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
이렇게 같은 질문인데도 의도가 다른 것은,
세계관의 영향으로 인해 ‘표현양식과 해석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동양과 서양의 인식차이는 이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죽을 때까지 이걸 인식 못할 정도로 간극이 크다.
물론 경험으로 '그렇구나....' 라고 짐작할 순 있겠지만, 정확히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그만큼 세계관의 작용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가 옷을 고를 때도, '이게 좋아? 저게 좋아?' 라고 묻는 건,
골라달라는 의미가 아닌 자신에게 동의해 달라는 의미다.
그러니 대응은 '당신은 어느 게 좋아?'라고 도로 물어보고, 그 선택에 동의해 주면 된다.
‘어? 난 안 그런데?’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욕구를 생략한 질문은 기본적으로 '함께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함께 있으면서, 여자가 "춥지?", "배고프지?", "힘들지?"라고 묻는 건, 대부분 자신이 그렇다는 뜻이다.
- 밖에서 만났을 때 : '춥지?' → ‘난 추운데 당신은?’ = 자신이 춥다는 뜻
- 식사시간에 : '배고프지?' → ‘난 배고픈데 당신은?’ = 자신이 배고프다는 뜻
- 같이 운동을 한 후 : '힘들지?' → 자신이 힘들다는 뜻
겨울철, 옷을 얇게 입고 나온 여자가 ‘춥지?’라고 물을 때,
두꺼운 파커를 입고 있던 남자가 ‘어 춥네~’라고 하고 말면,
여자의 눈에는 독이 오르고, ‘뭐 이딴 남자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대화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함께 있으면서 순수하게 상대의 의향만 묻는 경우는, 반드시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 ‘밖에’ 덥지?
- ‘당신’ 배고프지?
- ‘시험’ 힘들었지?
등 주어나 목적어가 붙을 경우에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다.
즉, 주체가 '나'가 아닐 경우는 인지적 ‘당연함’을 벗어나기 때문에 대상을 정의하는 것이다.
함께 있으면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끼니?’ 라는 전제가 깔리므로,
동의를 구하는 쪽의 질문을 한다. 공감해주길(공감 받길) 바라는 것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를 하는 남자는
상대의 의향만 묻는 질문을 하므로, 기본적으로 내 의향이 빠져 있다.
그러니 필요할 때만 ‘나’를 추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커피 한잔 할 건데, 너도 할래?' 라는 식이다.
- '커피 마시고 싶지 않아? 난 한잔 하고 싶은데..."
- 으아 추워(내 의향), 야 안 춥냐?(상대 의향)",
- 안 덥냐?(상대 의향) 더럽게 덥네(내 의향).
의 패턴으로 나타난다.
즉, 주체가 '대상'일 때는 생략하고, '나'일 때 정의하는 것이다. 여자와는 반대 패턴이다.
이 모두가 세계관의 작용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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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인식체계란?
우리는 밖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식체계대로 인식한다.
인식은 대상과 인식체계가 상호 작용하여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식체계란 대상과 상호 작용하여 인식을 일으키는 내면적 요소의 전체를 가리킨다.
내면적 요소란 자신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태조부터 이 순간까지의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내용을 일컫는다.
이것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대상도 없으면 발현되지 않다가 대상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상호 작용하여 무한한 인식을 만들어낸다.
출처: 언어로 이루어는 자기완성 – 배광호. IBG. p97
즉, 대상과 인식체계가 만나야 그 대상을 인식하는데, 일종의 해석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 대상 + 인식체계 = 대상 인식
고로 인식체계가 다르면, 같은 상황이나 말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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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의 분리 인식 vs 통합 인식
이번엔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복잡한 사례를 살펴보자.
'자기 중심적 사고'와 '받는 이미지'가 함께 작용하면, 남자는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하나로 통합되는 현상이다.
‘세상과 나’가 분리된 세계관을 가진 남자는, 대상과 나를 분리해서 인식한다.
즉, 대상은 대상이고, 나는 나다. 고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러나 ‘내가 세상의 중심’인 세계관을 가진 여자는, 대상을 나(중심)로 귀결시켜(받는 이미지) 인식한다.
대상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는가?’ vs ‘나로 귀결시켜 보는가?'의 인식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쇼 윈도우에 전시된 물건을 보고 '이거 예쁘지?'라고 한다면,
남자는 그 자체가 예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끝낸다.
‘그냥 그게 예쁜가 보구나.’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자는 '내가 가지고 싶을 만큼 예쁘다.'라는 의미로 쓴다.
‘예쁘다.’는 말에 ‘가지고 싶다.’가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가 한참 들여다보고 칭찬해대는 물건은,
'가지고 싶다.' → '그러니 사 달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주로 한국형)
같은 맥락으로
- '그 영화 재미있대' → 나도 보고 싶다는 의미다.
- '그 음식 맛있대' → 나도 먹고 싶다는 의미다.
- '그곳 정말 멋있대' → 나도 가보고 싶다는 의미가 된다.
즉, ‘재미있대’라는 평에, ‘나도 보고 싶다.’는 의미가 통합되어 있고,
‘맛있대’라는 평에, ‘나도 먹고 싶다.’가 통합되어 있다.
해당 의미를 나로 귀결시켜 인식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이런 식의 인식은 당연한 것이다.
기념일을 앞둔 여자가, 평소 봐둔 가방을 '예쁘다'며 한참 밑밥을 던져 놨다.
그런데 남자는 전혀 엉뚱한 선물을 하거나 그냥 지나친다.
그럼 여자는 삐치고,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 없다고 인식한다.
자기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자가 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말에 둔하다 = 내게 관심 없다.)
그러나 대상(세상)과 나를 분리해서 인식하고, 주는 이미지를 가진 남자는
'예쁘다'에 '가지고 싶다'는 의미가 통합되지 않는다.
아무리 예쁘다며 감탄을 해도, 그냥 그 자체가 예뻐서 그런가보다 하고 끝낸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내가 보고 싶은 것과는 별개 문제고,
아무리 맛집이라 소문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인식한다.
무언가를 자랑할 때도,
남자는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기 때문에, 대상 사진만 찍는다.
그러나 여자는 대상을 나로 귀결시켜(받는 이미지) 보기에, 나와 함께 찍는다.
최종적으로 나로 귀결되므로 ‘난 이런 것도 가진 존재야.’ 라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남자가 '의미의 통합 인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자는 '의미의 분리 인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의 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인식한다.
자신은 의미를 통합해서 인식하는 게 당연하기에, 남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서 이해한다.
남자에겐 없던(의도가 아닌)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빙하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예를 들어,
데이트 중에 멋진 여성이 지나간다.
이때 여자가 '저 여자 멋있지 않아?' 라고 물었다.
여기에 순진하게 '오~ 멋진데?' 라고 하면 여자는 삐친다.
의미를 나로 귀결시키는 여자는 '예쁘다', '멋지다'라는 남자의 대답에서
'나도 (너 말고) 저런 여자와 사귀고 싶어'라는 의미를 읽어낸다.
머리는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그렇게 반응해 버린다.
마음이 먼저 반응해 버리니, 이유도 모른 채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동기화된 추론)
(한단계 더 들어가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기분이 나쁠 때는,
‘나’에게 영향을 준 ‘대상’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 역시 받는 이미지의 작용이다.
덕분에 무조건 상대(남자)를 탓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성 특유의 떠넘기기인데.
‘나는 받기만 했으니, 나한테 문제를 준 건 당신이잖아.’는 인식의 작용이다.)
남자 입장에선 단순히 질문에 답한 것뿐인데,
여자가 이상한 의미를 붙여 혼자 삐친 셈이니, 얼마나 답답할까!
이런게 그 유명한 "오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의 상황이다.
남자는 모를 수밖에 없고, 모르는 게 정상이다. (의미 인식체계가 다르니)
아는 사람이 특별한 것이다. (감각이 좋거나, 경험치가 풍부한)
(이미지:뭉크의 '절규')
■ 왜 이상한 운전을 하는 여자가 많을까?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패턴을 보면,
남자는 난폭한 운전과 대형사고가 많고, 여자 이상한 운전과 황당한 사고가 많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려면, ‘기준’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럼 기준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야외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했다. 이때 여자에게 위치를 물어 보면,
- 내 앞에 극장이 보이고,
- 오른쪽엔 분수대가 있고.
- 왼쪽엔 편의점이 있어.. 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자신을 중심으로(기준을 나로 잡고),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자기 중심적 사고)
같은 질문을 남자에게 하면,
- 극장 남쪽, 분수대와 편의점 사이.. 라고 대답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대상을 기준으로 잡고, 내 위치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대상 중심적 사고)
남자는 대상을 기준으로 내 위치를 인식하므로,
지도를 볼 때도 동서남북을 먼저 세팅하고 그 위에서 내 위치를 찾아낸다.
위치를 옮길 경우, 지도 위에서 ‘내가 움직였다.’고 이해한다.
기준을 지도(대상)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나’를 기준으로 놓고, 대상(지도)의 움직임을 인식한다.
지도를 주면, 내가 가는 방향 혹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앞쪽(혹은 위쪽)이라 인식하고,
방향을 찾으라면 지도를 빙빙 돌리며, 어느 쪽을 앞으로 놔야 할지 몰라 헤맨다.
남자처럼 지도를 기준으로 놓고 내 위치를 찾는 게 아닌,
나를 기준으로 놓고 지도를 맞추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독도법을 배운 경우는 다를수 있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로 위를 달릴 때,
남자는 도로가(대상=기준) 있고, 그 위에서 내가 달려간다고 인식한다. (내가 움직인다고 인식)
여자는 내가 움직이면(내가 기준), 도로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고 인식한다. (공간이 움직인다고 인식)
네비게이션 화면을 볼 때도,
남자는 내가 달려가고 있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여자는 도로 및 건물들이 나를 지나간다고 인식한다.
이미지 출처: 팅크웨어 아이나비 내비게이션 K11 AIR 광고
이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면 열차를 타고 출발할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안, 내가 앞으로 가는 게 아닌,
바깥의 풍경들이 움직인다고 느낀 적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여자가 인식하는 공간의 움직임이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공간을 인식했으므로, 그게 당연하다고 알고 있다.
공간 지각력이 남자보다 떨어진다는 것도, 이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행 주차를 힘들어 하고, 후진은 더 못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차에 타고 핸들을 왼쪽으로 꺽어 움직일 때,
차가 왼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앞의 풍경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까?
측면과 수평을 맞추려면 앞의 풍경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좁은 공간에 주차할 경우, 남자는 내가 그 공간에 쏙 들어간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여자는 공간이 나를 감싸고 들어온다고 인식한다. 이러니 주차가 쉬울 리 없다.
후진은 더 심하다.
3차원 입체화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주된 요인이지만, (이것도 자기 중심적 사고가 기반이다.)
전진할 때는 앞쪽 풍경만 움직였는데, 후진하면 뒤쪽 풍경을 봐야하고,
뒤쪽 풍경은 다시 앞쪽과 반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백미러를 안볼때가 많다. 어지러우니)
그러다 보니 내가 제대로 움직이는지 상황파악이 안 된다.
남자처럼 풍경이 고정이고, 내가 움직인다는 인식이 아니므로,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아예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나를 기준’으로 공간을 해석하기 때문에, 내가 가는 방향이 곧 나의 길이 된다.
그럼 도로의 흐름이나, 교통법규를 무시한 움직임이 종종 생긴다.
신호등을 건너가듯 운전하는 여성운전자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나'를 기준으로 인식하는 인지체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른다는데 있다.
자기가 이상하게 움직였어도, 도로가 이상하게 움직인 것만 인식한다.
그러니 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느낀다.
이상한 운전 때문에 남자들이 빵빵 거리거나 욕하면,
자신이 여자라서 만만하게 보고 위협한다고 인식한다.
여성운전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대부분 남자에게 피해를 봤다는 주장만 나온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인식은 없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기에, 피해를 줬다는 인식자체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후진해서 뒤차를 박아도,
공간의 흐름은 뒤쪽이 앞으로 밀려왔다고 인식하기에, 뒤차가 잘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운전에 대해 뭐라고 하면, “저 사람 대체 왜 저래?” 라는 표정을 짓는다.
사고가 날 뻔해서 화를 내면, ‘사고도 안 났는데, 왜 화 내냐?’면서 도로 황당해하고 피해의식을 가진다.
(이런 걸 더 쓰면 여성혐오라고 욕먹을지도 모르겠다.ㅎㅎ , 오해 없기를....인식체계에 의한 차이를 설명할 뿐이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
‘마트 같은데서 여자들은 왜 자꾸 어깨를 부딪치나요?’ 라는 질문이 나돈 적 있다.
이것도 공간을 나를 기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내가 기준이고, 다른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기에, 당연히 나를 피해 갈 거라고 인식한다.
양쪽 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 상대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고 인식한다.
자 이쯤이면,
‘나는 안 그렇다.’, ‘내가 아는 여자는 안 그렇다.’, ‘내 여친(아내)은 운전을 잘한다.’
‘내 여친은 잘 안 삐친다.’, ‘같이 다른 여자의 몸매를 감상한다.’, ‘일반화의 오류다.’ 등의 반론이 있을 것이다.
실제 뇌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이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욕먹기 딱 좋은 내용이다.
예외가 왜 나오는지는 다음글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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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1 일 추가:
위 글은 제가 연구한 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의 일부입니다.
이 시리즈(진보와 보수)를 설명하기 위해 일부만 공개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차후 findhappy.net 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글을 퍼가서 마치 자신의 것인양 하진 마세요.
참고로 저작권 등록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출처를 분명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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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본질 1부 – 5장. 보이지 않는 힘: 세계관 2
타고난(생물학적) 세계관은 생물학적 영역에서 영향을 받는다.
앞서 세계관이 다르면 인식체계가 달라진다는 걸 설명했는데,
인식체계가 다르다고 해서, 양극단의 두 가지 형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중간쯤도 존재한다.
그래서 남자 같은 여자와 여자 같은 남자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개념은 좌파와 우파의 중간쯤인 중도에게도 해당된다.
앞서 설명한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서도, 유럽은 그 중간쯤의 성향을 보인다.
모든 지표가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닌, 이쪽저쪽 뒤섞여 있다는 의미다.)
■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고,
대화나 학습 등 여러 가지 활동에서 반응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남성의 뇌를 ‘체계화의 뇌’, 여성의 뇌를 ‘공감의 뇌’라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특징에 맞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두 뇌가 반응하는 양식이 다른데, 양쪽 뇌의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람도 있다.
비율은 각각 17% 정도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이렇게 뇌의 특성과 성별은, 임신 8~14주경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에 따라 결정된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면 더 남성적이 뇌를 가지고, 적게 분비되면 더 여성적인 뇌를 가진다.
물론 이에 따라 세계관의 강도도 달라진다.
화면캡쳐: EBS다큐 [아이의 사생활] 1부 – 남과 여
즉,
더 남성적인 뇌를 가질수록, 대상 중심적 사고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더 여성적인 뇌를 가질수록, 자기 중심적 사고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남성형 뇌를 함께 가진 여성은 운전도 잘하고, 쉽게 삐치지도 않으며, 남자와 대화가 잘 통한다.
여성형 뇌를 함께 가진 남성은, 감성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좋으며, 여자와의 대화도 잘 통한다.
일반적으로
남성형 뇌가 강할수록 더 논리적, 이성적이며, 개발자, 수학자, 공학자 등의 직업군이 많고,
여자의 감성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여성형 뇌가 강할수록 더 감성적, 여성적이며, 공간 지각력도 떨어져 운전을 힘들어 한다.
이런 특성은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가 아닌, 각자의 역할과 필요에 맞게 진화한 결과다.
특이한 점은 뇌성향이 가까울수록 대화가 잘 통하는데 비해,
이성적 매력이나 끌림은 약하게 나타난다.(거리가 먼 쪽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나에겐 없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여성적인 남자라 해도 여자가 될 수 없고,
아무리 남성적인 여자라 해도 남자가 될 순 없다.
양쪽 뇌 성향을 모두 가졌다 해도, 본연의 세계관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 강도만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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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세계관이론은 독자적인 것으로 같은 류의 책은 없다.
같은 맥락의 참고할만한 책은 뇌과학과 진화에 관련된 것들이다.
[브레인 섹스] - 앤 무어, 데이비드 제슬, 북스넛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 - 사이먼 배런코언, 바다출판사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 앨런 피즈, 바바라 피즈, 김영사
[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사이언스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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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틀
세계관이 다르면 인식체계도 달라진다.
세계관의 충돌은 ‘당연함’과 ‘당연함’의 충돌이고, 이는 곧 서로 다른 인식체계의 충돌이다.
각자의 당연함이 자신에게는 [바른 길]이라고 느껴지는데,
상대가 안 그러면 ‘이게 당연한데, 저 사람은 왜 안 그러지?’라는 느낌을 만든다.
더 강한 세계관일수록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른 채, ‘당연하다.’는 인식만 더 강해진다.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의 강도로 보면
‘남자와 여자 >>>> 진보와 보수 >>>>>>>>>>>>> 동양과 서양’ 순이다.
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세계관일수록, 더 강하게 작용한다.
본능과 세계관의 차이를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텐데,
본능은 주로 생존과 종족보전을 위해 유전자에 기록된 단순한 행동패턴이다.
배가 고프면 식욕이 돋고, 멋진 이성을 보면 성욕이 자극된다.
절벽위에 서면 현기증이 나고, 뱀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이처럼 육체적 문제에 직접 관련된, 한 번에 한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게 본능이다.
이런 본능을 기반으로 ‘사고(생각)의 기초’를 마련한 게 세계관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삶의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패턴이 본능으로 안착되었다면,
그 패턴을 바탕으로, 다시 세상을 해석하는 틀로 자리 잡은 것이 세계관이다. (마음속 깊이 깔려 있는 심상(心象: Image))
그러니 더 오래된 패턴일수록, 더 강한 세계관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본능과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다시 성장과정에서 학습하는 것들이 무의식에 쌓여 새로운 틀이 만들어진다.
반복되어 누적되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여 새로운 패턴으로 안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진 틀을 바탕으로 직관, 습성, 느낌(feel), 감정 등의 무의식적 자동반응이 일어난다.
이런 반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렇지만 대부분 자신의 의지라고 인식한다.
강렬한 자극(놀람, 충격, 고통, 깨달음)도 외상장애(trauma) 같은 새로운 틀을 만든다.
이런 반응기제들이 먼저 작동하고, 그에 따르는 ‘동기화된 추론’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지는 생각(의식)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두 언어지능(선천적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태어나 자란 곳(후천적 개념, 학습)의 언어를 익힌다.
그럼 생각을 하거나, 꿈을 꿀 때도 해당 언어를 사용한다. (자동 반응)
1차적으로 생물학적 능력을 바탕에 깔고,
2차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언어라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과 홍콩에서는, 남자의 ‘주는 이미지’와 여자의 ‘받는 이미지’가 더 강화되어 있다.
이는 환경(후천적 학습)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또, 조너선 하이트가 언급한 6가지 도덕성이나,
진보와 보수의 다른 인식들도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환경의 영향이 보태어진 결과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학습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중도다.)
이처럼 성장과정에서 환경이나 학습 등 외부자극을 통해서무의식에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데,
그 바탕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성장하는 동안 무의식에 많은 틀들이 형성되면, 이후부터 들어오는 자극이나 정보는,
연관성 있는 틀과 만나 자동으로 반응하고 의식에서는 동기화된 추론을 만들어 낸다.
이제 대충 원리는 이해했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무의식도 다양한 종류와 여러 층으로 나눠져 있고,
새로운 틀이 형성 및 소멸되거나 변화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렇게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한 건 아니니, 이정도만 알고 넘어가자.
마지막으로, 세계관이 다르면 사고의 틀이 달라지는데,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이 힘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단지 그로 인한 영향만 ‘당연하다.’고 느낄 뿐이다.
이 당연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내가 가진 당연함’이 ‘타인의 당연함’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다.
‘같은 세계관 + 같은 환경’이면 비슷한 당연함을 가지지만,
‘다른 세계관 + 다른 환경’이면 전혀 다른 당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같은 사회에 살지만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충돌이다.
이러한 충돌을 완화시키기는커녕, 더 조장하는 세력들(기득권)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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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무의식의 작용
무의식적인 인지과정들은 그 수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규정한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이를 닦으며, 자동적으로 눈을 돌리고,
습관적으로 자동차 기어를 바꾸며, 대화중에 거의 자동적으로 생각을 문장이나
우리의 언어기관으로 옮긴다.
따라서 패서디나의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의 인지생물학자인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의식 – 신경생물학적인 수수께끼]에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대부분 좀비다”라고 썼다.
(한국번역서명은 [의식의 탐구-신경생물학적 접근])
우리는 살아 있는 정신이 없이, 기계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좀비처럼 행동한다.
계산에 따르면 신경 사건들의 95%가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며,
단지 뇌 활동의 5%만이 우리에게 의식된다.
더 극단적인 숫자로 표현하자면, 바이트 단위로 따져서 우리는 1초에 기껏
10~50 바이트를 처리 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을 읽을 때 1초에 스물다섯개의 철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50바이트를 처리한 것이다.)
이에 반해 무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1초에 최소한
10,000,000~100,000,000 바이트를 처리한다.
출처: [의식의 재발견]-마르틴 후베르트. 프로네이스 출판.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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