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7월 영국에서 온 베델이라는 청년은 대한 매일 신보를 창간합니다.
영국인의 이름으로 발행되었기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였어요.
대한 매일 신보를 한글판, 영문판 등을 통해 일본의 실상을 기사로 폭로하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운영하며 일본이 강제적으로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한 국채보상운동도 지원하였습니다.
이를 기회삼아 일본 정부는 베델이 국채보상운동 모금(의연금)을 횡령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립니다.
이로인한 스트레스로 심장팽창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지연이 쓴 베델의 비문을 깎아버리는 일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1964년에 대한민국전언론인 단체에서 다시 비석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어니스트 베델을 기리기 위해 포스터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베델의 업적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하나하나 디자인 했습니다.
하나씩 설명해드리자면...
전체적으로 영국의 국기에서 디자인을 따왔습니다.
영국의 상징인 장미꽃과 대한 매일 신보의 영문명인 Korea Daily News로 아래 부분을 장식하였습니다.
초상화는 연필로 슥슥 그렸습니다.
베델의 기사 덕분에 일본인이 탈취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훈장을 다시 재해석 하여 그렸습니다.
베델의 후손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전달 받았습니다.
대한 매일 신보는 국민들을 대변하였습니다.
확성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서 확성기를 넣었습니다.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는
"나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매우 크다"
라는 말을 하면서 대한 매일 신보를 경계하였답니다.
대한 매일 신보를 인쇄하기 위한 활자와 대한 매일 신보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을 기념하기 위해
활자를 디자인 하여 넣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이 최초로 실린 신문은 황성신문이고, 국문판과 이를 영문으로 번역한 영문판을 대한 매일 신보가 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델의 유언과 함께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I might die but let The Daehan Maeil Sinbo remain to save Koreans"
(포스터의 맨 위에 적은 베델의 유언입니다.)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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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직업은 편집디자이너지만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하는 디자이너랍니다. ^^
이번에는 독립을 위해 애쓴 외국인들을 기리고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에요.
상업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의도로 마음껏 퍼가시고 베델의 업적을 떠올려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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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은 창작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