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찾으면서 안 사실은, 사람들은 지독히도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자기가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만이 정말 아쉬워하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가며 나를 위로했지만, 아닌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도 꺼내기 전에 나를 쫓아냈다.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인데, 남들에게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게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전부인 고양이인데.
그러고 보니 작년에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유난히 애교를 떨고 귀염떠는 고양이를 보면서, 얘는 나가서도 잘 살겠다. 라고 생각했다. 출근을 했는데도 그날따라 유난히 고양이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출장길에 유난히도 너가 보고싶어서, 내가 왜 출장간다고 자진했을까....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하며 가면 많이 놀아줘야지. 컴퓨터에 얼굴 박고 있는 것보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줘야지. 다짐을 하고 고양이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지금 돌아보면 고양이가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경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양이가 없어지기 이틀전에 동영상 찍어놓은 걸 보면서 생각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말이 많고 나가야된다고 야옹거리는 너가 귀엽다고 동영상을 찍는것보다,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좀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내가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었을까?
어제 밤에 고양이 이름을 부르면서 밤길을 걸었다. 어둑어둑해서 너무 무서웠지만 고양이는 얼마나 배고플까 싶어 참고 걸었다. 결국 없었지만. 이미 고양이는 이동네를 떠나고 없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 이 짓도 그만두기로 했다. 인터넷에선 나이트비전 카메라를 써라, 열감지 센서 카메라를 써라, 드론을 써서 봐라.. 비싼 조언들이 많았다.
내가 고양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말 많고, 밥은 아침저녁 꼬박꼬박 먹어야 돼고, 주면 아무거나 먹고, 애교많고 사람들에게 배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네가 밖에 나갔다면 어디로 갔을까? 길가다가 다른 고양이랑 싸운 게 아닐까? 들짐승한테 습격을 당했을까? 우리 집 뒤로 큰 숲이 있긴 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았지만 숲으로 가는 길목에 도랑이 있었다. 물을 싫어하는 녀석이 여길 건너지는 않았겠지 싶었다. 걸어가는 것도 싫어서 안아서 옮겨달라고 하는 게으름벵이가 이 근처 아니면 어디 있을까? 분명 살아있다면, 이 근처에 있다면 누군가는 보았을 게 뻔했다. 적어도 한번이라도 보여줬어야 했고 누군가가 야옹거리는 고양이를 보았어야 했다. 숲 반대편으로 옥수수밭이 있는데.. 풀이 머리 위로 자라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남의 땅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죽었거나, 누가 데려갔거나. 그런데 다섯살짜리에 좋은 품종도 아닌 뚱뚱이를 누가 데려갈까?
내가 고양이를 주운 사람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문앞에서 징징거리는 고양이가 귀엽게 생겨서 집안에 들여보냈다고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갈곳이 어디일까? 동물병원이다. 아니, 안갈수도 있다. 동물병원은 비싸니까. 근처 동물보호소에 연락을 해보았을까? 그냥.. 집에서 데리고 우리 고양이다 라고 생각하며 데리고 살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한데, 남의 우편함에 함부로 뭔가를 넣을 수도 없고.
우편으로 광고지를 보내준다는 사이트에 들어가 견적을 받았다.
약 삼백만원.
나는 한달에 백오십만원을 겨우 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누군가에게 얘기하자 비난을 들었다. 그건 아니지, 그건 비약이지. 고양이는 동물이고. 라며 나에게 타박했다. 아이를 낳기 싫어졌다.
아. 죽었다면 내가 원망스러워서라도 꿈에 나와서 한마디 해주고 가지. 꿈에라도 한번 나와주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원망 자책 분노 ...하지만 절대로 수용으로 넘어갈 수 없다. 내 고양이가 죽었을 리가 없어. 어디서 잘 살고 있더라도 내가 알아야 해. 남이 데려가 키운다면 반드시 데려와야 해.
하루하루가 꾸역꾸역 지나간다.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