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페미니즘
1-1.캡틴마블 개인
캡틴마블(이하 캡마)은 코믹북에서부터 이미 페미니즘 색채가 강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녀의 변천사를 간단히 도식화해보면 한눈에 드러나죠. '남성 히어로의 히로인->사이드킥->남성히어로 사망후 단독히어로'.
그래서 굳이 브리라슨이 아니어도, 캡마를 그려내는데 있어 페미니즘을 떼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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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으로서의 과거 기억을 잃고 자신의 힘을 통제받는 상태에서 고귀한 크리족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강제당하다시피 가지는 히어로가 기억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여성이기때문에 제약받고 차별받았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목시킨 점은 괜찮았습니다. 외려 캡마의 힘이 돼준 마벨의 캐릭터(남성 멘토)를 차용했으나 실은 그 캐릭터가 가장 강력히 자신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존재라는 점은, 일종의 온고지신으로 볼 수도 있었죠. 이건 마블스튜디오가 히어로를 MCU로 편입십기는 과정에서 종종 드러내는 그들의 영화문법인데, 이건 좀 더 뒤에서 설명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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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족으로 편입되기 이전부터 그녀는 당차고 도전적이어서, 뭇 남성들의 질타를 받았죠. 그러나 그녀는 단 한번의 좌절도 없이 다시 일어섰고, 묵묵히 자기자신을 갈고닦았습니다. 지구인으로서의 기억이 희미하고 크리족의 전사로서 세뇌당하다시피 교육받으며 몸에 흐르는 피까지 파래졌어도, 그녀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각성시킵니다. 단순히 말하면 그냥 '주인공버프'가 될 수 있지만, 영화는 그 주인공버프를 페미니즘의 메시지로 나름 설득력있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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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vers를 '비어스'로 부르는 것이 마치 'be us', 너 개인이 아닌 우리의 일부가 되어라는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온전한 이름인 carol danvers를 찾으며, 끝없이 자신을 증명하라는 남성멘토를 한방에 날리며 '나는 네게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죠. 크리종족의 일원으로서 계속 쓰일 수 있는 가치증명을 요구받으나,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불가한 그녀에게 억압받는 여성을 투사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1-2.영화전체
그러나 캡마의 개인을 넘어 영화전체로 페미니즘을 덧대는 과정에서, 다소 의아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메시지의 과격성을 넘어서, 그것이 영화의 개연성을 망가뜨리는 부분들도 사실 제법있었지요. 제 생각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주드 로가 맡은 '욘 로그'의 캐릭터 붕괴입니다. 전형적인 흑막형 캐릭터고, 그걸 굳이 숨기지도 않는데요. 초중반까지 힘과 지혜를 고루갖춘 리더로서 나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복심을 교묘하게 가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최후의 대결에서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파이트자세를 취하며, 그럴싸한 말이 아니라 찌질하기 그지없는 대사를 내뱉는걸 보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건 뭇 남성을 '허세쩔지만 실제론 무능력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레디컬 페미니즘의 시선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메인빌런의 카리스마가 이토록 떨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결투씬의 탓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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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무능력한 남성상'은 닉퓨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고양이를 (여성보다 더 좋아하는)남성'이라는 캐릭터를 붙인 것은 괜찮았지만, 후반부 크리족이 고양이 구스와 닉퓨리를 스캔하며 그에게 '인간 수컷, 위험도 낮거나 없음'이라는 문구를 띄운 것은 나름의 유머코드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똑같은 '인간' 여성인 램보가 총을 들고 탈출로를 확보하는동안,고양이나 들고서 쫓아다니는 닉퓨리를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요? 물론 탈출시 남녀의 역할이라는 클리셰를 비튼 시도 같았지만, 영화외적으로 거대한 페미니즘 영화니 뭐니하는 이야기가 나오니, 블랙팬서때와 다르게 곱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닉퓨리가 눈을 잃게 되는 이유가 구스에게 긁혀서라니요? 캡아 윈터솔져에서 이 관련 언급하는 닉퓨리와 비교해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브루너박사(헐크)의 캐릭터성이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망가진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이 영화에서 닉퓨리는 많이 망가집니다. 거의 동명이인수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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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벨의 배역이 여성으로 바뀐 점은 괜찮았습니다. 블팬에서 페이크 보스로 전락한 율리시스 클로처럼, MCU는 캡틴마블을 이렇게 그릴 것이라는 당찬 포부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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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럴족의 반전은 페미니즘보단 정치적 올바름과 다문화에 가까운 메시지였는데, 인간형이냐 비인간형이냐에 따른 우리의 외모편견을 잘 꼬집은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실은 이 부분도 크리와 스크럴을 너무 이분법으로 말하는 캡마의 대사에서 떡밥이 흐르긴 했지만요.
2.MCU의 히어로 재해석
MCU가 어벤저스 시리즈를 구상할 당시 초창기 판권회수받은 히어로들은 배경이 지나치게 오래됐었습니다. 세계대전 당시의 캡아와 블위, 월남전 당시의 철남이...그리고 최근 영화화된 블랙팬서(이하 블팬)도 60년대 창조된 캐릭터라, '흑인을 수탈하는 백인 보물사냥꾼'율리시스 클로가 메인빌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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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MCU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냉동인간, 월남전->아프간분쟁, 수탈하는백인VS저항하는 흑인영웅->강력한 아프리카왕국의 정치 스릴러 등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여태까지 매우 자연스러워서, 캐릭터성과 스토리의 개연성 모두 다 잡아냈지요. 아...블팬은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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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팬과 캡마는, MCU의 재해석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스토리의 진부함을 벗어내고 주인공 캐릭터들도 정형성을 파괴한데 성공하였지만 정작 주인공 본인은 좀 진부하고 개성이 사그라진 것이 블팬이었다면, 캡마는 캡마 개인의 이야기는 잘 풀었지만 그게 전체스토리로 갔을땐 다소 주변 캐릭터가 망가진다거나 캐롤의 지구인 각성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거나하는 구멍들이 있는 영화죠. 개인적으로 블팬의 단독영화에서 가장 난해했던 능력은 에너지 방출이었습니다. 피격받은 에너지를 모아뒀다가 노바처럼 퍼트리는 기능인데요, 감독이 말하길 억압받을수록 더욱 밖으로 뻗어나가는 흑인들의 저력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뜻은 좋은데, 시빌워에서 보여준 블팬 고유의 액션은 제대로 못 보여줘놓고 그거랑 상관이 없는 ‘와칸다의 발전된 과학기술’에 바탕한 기능들을 저렇게 넣어놓은 게 전 개인적으로 많이 별로였습니다. 단독영화의 제목이 혹시 ‘와칸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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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캡마에서는, 그런 점에서 그녀가 가진 힘들과 페미니즘 메시지가 적절히 어우러졌다 생각합니다. 초반부 스크럴에게 납치되어 양손이 봉인되어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부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만큼 포톤 블래스트를 다루는 실력이 능숙해지는 점은 메시지과 캐릭터성을 둘 다 잘 잡은 케이스라고 봅니다. 정말 블팬과는 극단적인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3.그 외
마땅히 무슨 소제목을 붙여야 할지 몰라, 저 카테고리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산발적으로 풀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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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캡틴마블 프렌차이즈의 첫 영화인만큼, 캡마의 기원, 캡마의 각성, 그녀의 과거와 쉴드의 연관성, 스크럴과 크리족의 대립 의미 등등을 다루어야 하는 만큼, 2시간 동안 플롯구성을 치밀하게 잘 해야 했습니다. 보통 MCU첫편이 큰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되겠지요. 캡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독립된 영화로서의 인상은 심어줄 수 있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친구였던 사람의 몇마디 말에 지구인으로서 각성을 한다거나 자신이 따르던 박사가 외계인임을 알고서도 너무 태연한 점 등은 아쉬웠습니다. 러닝타임이 좀 더 길었다면 세밀한 감정선과 심리변화를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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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캡마의 액션신에 대해서도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강한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액션신 하이라이트는 예고편에 나온 것이 다 였습니다. 4DX나 3D IMAX로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2D를 선택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각합니다. 우주함대급 대규모전투와 압도적인 대인전 능력의 맛을 예고편으로 잘 보여줬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맛보기가 전부여서 좀 김이 샜습니다. 이것도 러닝타임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액션을 잘 버무리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 새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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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난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엑스트라 수준으로 나와서는 ‘미사일 누가 어떻게 막음?’하고 벙쪄있다가, 캡마가 눈앞에 나타나자 자기 부하와 눈짓을 주고 받으며 그냥 튀자고 말하는 게 끝이에요. 정말 악독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 같았지만, 너무나 아쉬운 등장과 너무나 어이없는 퇴장이었습니다. 캡마는 도대체 왜 로난을 그냥 보내줬을까요? 지구를 파괴하려고 미사일을 수십개 발사한 장본인을 눈 앞에 두고 말이죠. 영화는 이런 류의 세세한 디테일이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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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라슨. 저는 사실 그녀의 이전 작품을 단 하나도 챙겨보지 못 했습니다. 연기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온대서 기대를 했는데, 연출문제인 것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표정으로 당찬 연기와 능청스러움을 잘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다만, 정말로 죄송하지만 사각사각한 턱 때문에 크리식 헬멧쓰고 있을 때 자꾸 배트맨이 겹쳤고 테서렉트에 노출되는 씬에서 얼굴 클로즈업하는 부분에서 몰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뛰어다닐때도 재빠르게 질주한다기보다는 공원에서 조깅하는 느낌이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그녀의 캐스팅은 미스캐스팅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마크 러팔로의 헐크처럼 원작 이미지와 다르면서도 인기를 얻은 케이스도 있지만, 그는 외적인 스타일 부조화를 내면 묘사를 통해 잘 극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캡마는 브리라슨의 이미지 부조화를 메꿀만한 또다른 매력을 찾기가...저로선 좀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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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벤저스 : 엔드게임과의 연관성만 확인하기 위해 징검다리로 영화를 보실 분이라면, 제 생각에 이 영화는 거르고 첫 번째 쿠키영상만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MCU사상 처음으로 러브라인이 등장하지 않았고, 여성 단독주연영화로서 나름 괜찮은 스타트를 끊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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