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간 근무자다. 사람들이 왜 밤에 일하냐 묻거든 대기업은 퇴근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고 하고 싶지만, 그 대기업이 CU라는게 들키면 부끄러울 것을 알기에 그냥 히죽 웃고 만다.
낮에 동생이 시켜먹다 남은 탕수육과 군만두를 데워 허기를 채우니, 끊은지 15시간된 담배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엔 꼭 끊겠다는 다짐은 어디 가고, 니코틴 수용체가 내 뇌를 자극하며 생기는 몽롱한 기분을 참을 수가 없어진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담배를 끊겠다 하였는지, 길게 아무리 오래 살아봐야 행복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흡연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하게 짧게 살더라도 그 끝은 불행할 것을 알기에 들었던 담배를 내려놓는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의 손님은 1.5배 많다. 편의점을 마트인줄 착각하는 멍청한 머저리 새끼들은 이곳저곳 아이쇼핑을 하며 10분, 20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2+1이 정말 소비자들의 구매 가격을 합리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지 하나를 사려던 사람은 기어코 두개를 사서 2+1을 채운다.
한 손님이 와서 날계란이 어딨냐 묻는다. 날계란은 없고 삶은 계란은 있다고 하니 그냥 나가버린다.
한 손님이 작은 물품 서너개를 가져와 결제를 한다. 결제를 하고 나서 담아달라고 묻는다. 봉투값 20원 추가된다고 하니 썩은 표정을 지으며 그럼 그냥 가져가겠다며 띠꺼운 표정을 짓는다.
한 손님이 담배를 찾는다. 메비우스. LSS. 1미리. 두 갑.
굳이 하나씩 꺼낼 때마다 한마디씩 추가한다. 그새끼 하나 때문에 벌써 네번이나 고개를 돌려 담배를 꺼냈다. 손님은 메비우스 LSS 1미리짜리 담배 두 개를 들고 담배 곽을 유심히 보더니 말한다.
다른 그림 없나?
귀찮은 표정을 하며 그럼 이걸 다꺼내서 확인하냐는 제스쳐를 보이지만, 손님은 아무런 내색도 없다. 후우. 그래 나 때문에 여기 단골 손님이 하나 빠지면 괜히 착한 사장님만 피해를 보게 되니 참는다.
담배를 모두 지가 원하는 가족 그림으로 바꿔주고나야 그 손님은 떠나갔다. 거기서 현금영수증을 물었다면 담배보다 주먹을 먼저 맛보지 않았을까 싶다.
편의점에서 처음 근무할 때는 손님과 많이 싸웠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때문에 CCTV가 없는 건물에서 멱살 잡고 500원 안내놓으면 집에 찾아간다고 으름장을 내놓은 적도 있고, 봉투값 20원을 꽁짜로 달라고 애원하는 손님한테 "손님은 법 위에 사냐"고 비꼬고 나서 한바탕 말싸움을 한적도 있다.
읽는 이들도 공감하겠지만 가끔 편의점에 가면 야간근무자가 어서오라는 말과는 다르게 띠꺼운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그들의 인성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은 면전 앞에다 한마디씩 쏘아댈줄 모르는 착한 녀석들이다.
밤 손님들이 어느정도 빠지기 시작한 때에 나는 숨을 돌린다. 의자에 앉아서 좀 쉬고 격양되어 있던 표정을 추스른다. 그 때 진상처럼 보이는 계집년 세 명이 줄줄이 들어온다.
알지 모르겠는데 진상 손님은 와꾸에서부터 티가 난다. 여자 진상들의 경우 대체로 좆같이 생긴 경우가 많고 뭔가 똥씹은 표정을 계속 짓고 있다. 남자 진상들의 경우 술에 취한 경우가 많으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남자 진상들은 서로 말귀를 못 알아 쳐먹어서 생기는 오해 때문에 문제를 빚는 것일 뿐이다.
녹색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쓸데없이 담소를 나누며 물건을 고르는 손님들에게 있어서는 불같은 토요일 밤이리라. 최대한 그들의 기분을 지켜주고자 웃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한참을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 나서 매대에 가져온다.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는 와중에도 그들에게 느껴지는 주말의 여유와 행복이 느껴진다.
물건들 중 맥주가 포함되어 있어 손님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좀 앳돼보였다. 신분증을 보여달라 하니 뭔가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며 "아 저요?"라 한다. 그리고는 일행 중 한명에게 가서 신분증이 있냐 묻는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며 자기 신분증 사진이 있다고 보여준다고 한다.
나는 신분증 사진은 조작할 수 있으니 안된다고 했다. 차에다 지갑을 놓고와서 신분증이 없으니 한번만 봐달라하지만 그럼 차키를 보여달라는 내 말에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일행 중 다른 한명이 그제서야 눈치를 챈 듯 차키도 차에 꽂혀있다고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없이는 맥주를 구매하실 수 없다고 완강히 말해보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는듯 나를 설득하려 한다.
솔직히 여성 손님들이 가장 귀찮고 짜증난다. 그들이 성인인지 군대 퀴즈로 확인할수도 없거니와 안되는 것들이 안되는 줄 모르고 계속 떼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키웠던 부모의 교육 방식이 어떠한지 눈에 보인다. "자식바보"라는 말은 참 예뻐보이지만, 자식을 사회에서 암덩이로 만드는 교육 방식 중 하나다. 지금 초등생의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의 대부분 "딸바보" 가정에서 자라 과거 "악성팬", 현재 "맘충" 소리를 들으며 사회적인 문제를 빚고 있다.
손님들에게 "음주류 잘못 판매하면 책임은 여러분들이 아니라 제가 지니까 판매 못한다"고 했더니, "그럼 경찰에 전화해서 저보고 지라고 할까요?"라는 개념없는 한 계집의 말에 "그렇게 해보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다시한번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나서 그녀의 일행은 드디어 편의점 문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