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게시판 두 번째 글까지 베오베로 보내주신 많은 오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께 말씀드리니, 다들 그렇게 해먹고 사는 거 아니냐고 하시고...
아빠는 그게 뭐가 대수라고 투덜거리시면서도 뭔가 뿌듯해 하시는 듯한 반응이십니다.
여자만 집안일 하는 우리집에서...
아빠가 엄마 안 계실 때마다(1년에 1~2번) 하시는 김치와 건새우를 넣고 끓이는 된장찌개가 있는데,
그 요리 소개가 빠져있어서 삐지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ㅋㅋㅋ
두 번째 글이 베오베에 가고 나서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는 엄마의 요리 사진들을 쭈욱 살펴보았습니다.
일정한 시기에 비슷하게 등장한 익숙한 사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바로바로 다이어트 도시락이라 부르는 후식들... 매년 여름이면 몇 달씩 노력"만" 하는 다이어트 도시락.
일본회사에 몸담고 있는 탓에 점심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도시락을 싸오거나, 사먹거나 합니다.
(모든 일본 회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선 개인이 싸온 도시락을 자리에서 혼자 먹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엄마는 재료만 사와라, 내가 준비해줄테니... 하시며 열심히 도와주십니다.
끝까지 도와주시면 좋으련만, 참을성 부족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려는 듯 저녁은 또 엄마의 흔한 집밥 메뉴들로 차려집니다.
다른 식구들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점심만이라도 적게 먹겠다는 1년에 1-2번의 다짐으로 점심 도시락을 계획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요. 엄마가 준비해주셨던 점심 다이어트 도시락을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안 그래도 한 덩치하는 막내딸이, 당신 눈에는 안쓰러우신 모양입니다. 그 마음이 담긴 점심 다이어트 도시락.
1. 과일 도시락. 이 과일 도시락에서 중요한 건 까맣게 보이는 블루베리입니다.
막둥이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데, 엄마가 몰래 싸주신 겁니다. 집에서는 차례가 안 오기에, 이렇게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점심을 먹지만, 집에 가면 엄마의 흔한 집밥이 있으니... 참으로 어렵습니다.
2. 채소 도시락. 파프리카와 브로콜리. 많이 좋아하는 채소는 아니었지만, 엄마의 정성으로 차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제가 준비한다고 해도, "니가 하면 성한것도 다 버려서 안된다." 는 엄마의 만류로 인해, 서른 중반의 딸내미는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지 못하고,
엄마 손을 빌리게 됩니다. "이거 먹고 어찌 버티냐" 며 배 고픈 게 제일 속상하다는 엄마. 그런 엄마 덕분에 비만의 딸내미는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사랑하는 달걀 흰자. 노른자를 싫어하는 걸 아시기에, 이렇게 흰자만 따로 준비해주십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양계장을 할 때는 날달걀도 후루룩 잘 먹었는데, 지금은 왜 싫어하느냐 하시는데... 어릴 때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손수 노른자를 골라내고 흰자만 싸주시는 엄마. 막둥이 조카의 이유식통으로 쓰였던 그릇에는 수박이 한가득입니다.
4. 옥수수는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하지만... 여름 옥수수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1개는 괜찮다고 하시며, 아침마다 삶아주시곤 하셨습니다.
엄마의 옥수수는 밖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이 있기에... 어떻게 간을 맞추냐고 여쭈어보면 "자박자박" 이라는 흔한 표현이 나옵니다.
엄마만의 비법이겠지요. 참, 엄마는 저를 위해 옥수수도 2가지 방법(?)으로 삶으십니다. 그래도 다이어트 한다고 하는 막내딸을 위해
제가 먹을 건 간을 조금 적게 하시고, 식구들이 먹을 건 정상적인 간으로 하십니다.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랑할 건 못 되지만,
여전히 비만입니다 ㅜㅜ 노력은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5. 저녁에 못 먹은 건 점심에 먹어라, 하시며 싸 주신 치킨. 대표적인 방해공작단 오빠의 주1회 저녁 만찬인 치킨.
참 좋아하는 치킨이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한다고 마음 먹었을 땐 주말 낮을 제외하고는 멀리하는 메뉴입니다. 그런 딸내미가 안타까운 엄마는
식구들이 남긴 몇 조각을 점심 도시락에 싸주십니다. 엄마의 정성 때문에 비록 차갑기는 하나, 그 맛은 기가 막힙니다.
도시락통에 보이는 비닐장갑이 그 정성을 더 해줍니다^^
6. 그 무슨 콩이 다이어트에 좋단다.. 라고 하시며 사오신 렌틸콩. 엄마께는 콩 이름이 어려워 직접 보고 나서야 렌틸콩이라는 건 알았지만...
엄마의 노력에도 나아지지 않는 무심한 딸이지만, 다이어트 한다고 하면 귀동냥을 하시어 많이 도와주십니다.
그렇게 사오신 렌틸콩으로 한 끼 분량씩 밥을 얼려 싸주십니다. 오른쪽 반찬통에는 간을 낮춘 깻잎짱아찌와 멸치볶음 입니다.
엄마의 이런 정성으로 여름에는 그나마 체중 감량에는 성공하지만, 유지를 못하는 여전히 비만인 딸입니다. 올 여름엔 꼭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7. 이번 부록은... 엄마와의 교감, 손글씨 입니다.
작년 가을 2년간의 육아 휴직을 끝내고 언니가 복직하면서, 엄마는 새벽 6시40분이면 언니네 집으로 출근(ㅜㅜ)을 하십니다.
언니와 형부가 준비하고 출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들 아침 준비, 막둥이 조카가 깨면 돌보미를 하러 가십니다.
그 전에는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주셨는데, 언니네로 출근하시면서 준비해놓으신 아침을 제가 차려먹고 있습니다.
엄마의 손글씨 메세지에도 사랑이 느껴집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싹싹 비우고 출근을 하지요.
엄마의 정성에 보답하는 길은 맛있게 먹는 것과 건강하게 옆에 계셔드리는 것, 그리고 효도를 위한 결혼일텐데요.
마지막 효도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신 엄마의 손관절을 위해 마사지를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조카들의 고사리손으로 하는 마사지 그리고 저는 약품을 공급하는 역할 ㅋㅋ
엄마의 집밥 글로 인해 저희 집을 정이 넘치는 가정으로 봐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빠의 엄한 분위기 때문인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무언(無言)가족이었는데,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많이 바뀐 집이거든요.
어릴 적 화목한 분위기의 친구네 집이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우리 집도 좋습니다^^
몇 달 뒤면 7학년 되시는 아빠의 칠순을 기념해 부부동반 여행 가신 엄마가 오늘 오십니다.
환갑 넘어 해외여행 처음 시작한 두 분, 3년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어린아이 마냥 들떠서 출발하신 게 3일 전인데...
세 달 된 것마냥 보고 싶은 막내딸입니다.
오시면 편히 쉬시라고 청소,빨래,설거지 해놓고 출근하긴 했지만, 엄마는 또 저희들 저녁밥 걱정에 손이 또 바빠지시겠지요.
야근없는 회사지만, 오늘만큼은 더더욱 빨리 퇴근하고 싶은 지금은 16시 20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