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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노비 제도와 관련하여 한국의 인터넷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떠돌아 다닌다.
“인류 역사상 같은 동족을 노예, 즉 노비로 부린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오직 조선 뿐이었다. 조선의 노비 제도가 얼마나 잔혹했느냐 하면, 같은 시대 중국에서도 노비는 오직 본인 1대로만 끝났지 결코 세습되지 않았는데, 조선은 한 번 노비가 되면 영원히 그 자손들까지 전부 노비의 신분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노비는 신분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선은 멸망하기 전까지 전체 인구의 무려 90%가 노비였다.
아울러 노비들은 엄연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물건처럼 시장에서 사고 팔렸는데, 이 또한 조선에서만 있었던 비극적인 일이었다.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노비들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나라는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악독한 노예 제도를 가진 나라 조선은 멸망당해야 마땅한 사악한 나라였다. 또한 그 조선의 후예인 우리 한국인들은 이러한 원죄를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지문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100% 거짓말이다.
우선 저 위에서 언급한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조선 시대 노비들에 관련된 지문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보겠다. 첫 번째로 “인류 역사상 같은 동족을 노예, 즉 노비로 부린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오직 조선 뿐이었다.”라는 주장 자체부터가 벌써 틀렸다. “인류 역사상 같은 동족을 노예, 즉 노비로 부린 나라는 전 세계에서” 수두룩 했으니까. 아래에 그 사례들을 거론한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인들은 동족인 메세니아인들을 노예인 헤일로타이로 만들어 가혹하게 착취했으며, 로마인들도 빚을 진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거나 아니면 부모가 버린 고아 같은 동족들을 거두어 노예로 부려먹었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러시아인들은 같은 동족들을 노예나 다름없는 농노로 삼아서 부렸으며, 중국에서도 방호(旁户)라고 하여 사천과 섬서 지역의 소작농들은 대를 이어 세습하면서 지역의 부호들을 위해 노비처럼 일을 해줘야 했다. 또한 청나라 시대의 중국에서는 납치되어 오거나 가난해서 스스로를 노비로 판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두 번째로 “같은 시대 중국에서도 노비는 오직 본인 1대로만 끝났지 결코 세습되지 않았는데.”라는 구절도 잘못되었다. 조선과 같은 시대인 중국 청나라에서도 집안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같은 여자 노비인 하녀와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은 가생자(家生子)라고 하여, 부모의 신분을 그대로 물려받아 세습 노비가 되었다. 가생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청나라의 노비들도 주인과의 종속 관계가 자손 대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를 두고 청나라의 옹정 황제는 동화록(東華錄)에서 노비 관계를 “하인(노비)들은 자손 대대로 영원히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며, 하인의 신분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라는 옹호했다. 아울러 청나라의 노비들은 주인이 하녀를 첩으로 삼거나 다른 사람한테 첩으로 넘겨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민과 결혼할 수조차 없었다.
세 번째인 “조선은 한 번 노비가 되면 영원히 그 자손들까지 전부 노비의 신분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노비는 신분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라는 말도 틀렸다.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거나, 나라에 곡식을 바치거나, 중요한 건물에 일어난 화재를 제압하거나, 도적을 잡거나, 적국에 들어가 염탐을 해오거나 하는 경우에는 노비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양민으로 올려주는 면천(免賤)의 조치가 있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 면천의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아예 1746년 만들어진 법전인 속대전(續大典)에서는 13석의 곡식을 나라에 바친 노비들은 모두 노비 신분에서 풀려나 양민이 되게끔 하였다.
네 번째인 “그래서 조선은 멸망하기 전까지 전체 인구의 무려 90%가 노비였다.”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의 노비들은 꾸준히 면천의 혜택을 받아 후기로 갈수록 노비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18세기 말이 되면 전체 인구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대로 급속히 떨어졌다.
다섯 번째인 “아울러 노비들은 엄연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물건처럼 시장에서 사고 팔렸는데, 이 또한 조선에서만 있었던 비극적인 일이었다.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노비들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나라는 없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되었다. 중국 청나라의 호북성에서는 노비들이 시장에서 물건처럼 사고팔렸고, 흉년이 들거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가난한 집안에서는 아들과 딸들을 노비로 팔았다. 그래서 매 번 장날이면 사방 멀리에서 팔려는 노비들이 몰려오곤 했다. 청나라와 같은 시기의 러시아에서도 농노들은 노비와 같은 취급을 받아서 역시 시장에서 물건처럼 팔렸다.
이밖에도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는 악호(樂戶), 타민(惰民), 세부(世仆), 반당(伴當), 단민(蛋民) 같은 세습 천민 집단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이들은 나팔을 부는 취고수가 되어 연극을 공연하거나, 혹은 인형을 만들거나 개구리와 자라를 잡아 약방에 팔거나, 떡을 만들어 팔거나 심부름꾼 및 가마를 메는 가마꾼 같은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직업에 종사하며 먹고 살아갔다.
아울러 이들 천민들은 옷차림과 가옥 등에서 모두 엄격한 규제를 받았고, 규모가 작은 수공업에 종사하거나 노동에만 종사할 수 있을 뿐, 농민이나 장사꾼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도 없었으며, 그들과 다른 신분의 사람들과 결혼하지도 못했다. 청나라가 망하고 나서 들어선 중화민국 시대(1911~1949년)에 가서야 중국의 천민 집단들은 비로소 없어졌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게 조선의 노비 제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인터넷상의 주장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이는 조선의 실학자인 유형원(柳馨遠 1622~1673년)이 쓴 책인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언급된 “조선의 노비 제도는 한 번 노비가 되면 대대로 세습이 되니 세계에서 가장 나쁘다. 중국에도 노비가 있지만 결코 세습이 안 된다. 그리고 조선은 수레를 쓸 줄 모르고 쓰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라는 주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계수록의 이런 주장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점점 살이 붙어서 저 위의 지문이 탄생하였다고 추정된다.
물론 위에서 반박한 대로 반계수록에서 언급된 중국 노비 제도에 대한 말은 역사적 사실들과 맞지 않는다. 조선과 같은 시대인 중국 청나라에도 가생자(家生子)와 방호(旁户)라고 하여 엄연히 세습 노비가 존재했으니까.
그렇다면 유형원은 청나라의 가생자와 방호에 대해 몰라서 “세상에서 세습 노예를 거느린 나라는 조선 하나 뿐이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했을까? 물론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으나, 그가 쓴 책인 반계수록에서 다룬 수레 내용처럼 알고서도 일부러 왜곡된 주장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계수록을 쓸 당시 조선에서 수레가 흔하게 쓰였지만, 그는 반계수록에 “조선은 수레를 쓸 줄 모른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버젓이 적어 놓기도 했으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반계수록에는 노비에 관한 잘못된 내용이 실렸던 것일까? 유형원을 비롯한 실학자들이 가진 ‘자국 혐오’와 ‘선진국 콤플렉스’, 즉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때문일 것이다.
흔한 인식과는 달리 조선의 실학자들은 결코 중국에 대해 자주적이지 않았다. 유형원처럼 중국에는 세습 노비가 없다는 잘못된 주장을 책에 써 놓거나 심지어 박제가처럼 아예 조선말을 금지하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과격한 주장을 했던 실학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중국을 동경하던 실학자들이 과연 그 청나라에 가생자와 방호라는 세습 노비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까? 아닐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본다면 조선의 실학자들은 흔히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달리 위대한 선각자가 아니라, 그저 자국 혐오에 찌든 불평분자에 불과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요약: 세습 노비가 조선에만 있었다는 주장은
인종 차별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는 주장과
똑같은 수준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참고 자료들: 한 권으로 읽는 청나라 역사 (하)/ 따이이 저/ 전영매, 김선화 공역/ 김승일 감수/ 경지
중국을 말한다 14/ 멍펑싱 저/ 김순림 역/ 신원문화사
민, 란 - 중국 민중의 항쟁 기록/ 최종명 (지은이)/ 썰물과밀물
출처 | http://blog.daum.net/timur122556/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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