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개신교 단체들 “처용은 외설, 이름바꿔라"
울산 지역축제 '처용문화제' 놓고 주최측과 기독교단체간 대립격화
이석주
울산의 대표적 지역축제인 '처용문화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울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신라향가 '처용가'를 바탕으로한 문화제의 명칭이 외설적 시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범시민적 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
명칭 변경을 강하게 촉구해온 이들 기독교 단체들은 "처용가의 주요 내용이 아내가 외간 남자(역신·疫神)와 간통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제의 컨텐츠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올바른 지역 문화제로 이어질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문화제 주최 측인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는 "신라향가 '처용가'는 단순히 외설적 차원을 넘어 관용의 정신을 담고 있다"며 "행사 내용이 아닌, 이름의 기원만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 측이 "개명 촉구 단체들은 대부분 기독교 단체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지역내에서 종교문화적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밝혀, 문화제 이름을 놓고 벌이는 찬반 양론이 울산 지역의 '주도권 쟁탈' 논쟁으로 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범시민적 서명운동 진행할 것"
올해로 41회째를 맞는 '처용문화제'는 울산시의 대표적인 향토축제로 지난 1967년 4월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축제가 그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울산공업축제를 1991년부터는 처용문화제로 이름을 바꿨고 매년 10월에 열린다.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 측에 따르면, 올해의 경우 오는 10월4일 부터 7일 까지 나흘 간 울산 문화공원과 문화예술 회관 등 울산시 일대에서 거리퍼레이드 및 각종 뮤직페스티벌, 먹거리 체험관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 매년 10월 울산시 일대에서 진행되는 처용문화제. 특히 올해에는 뮤직페스티벌과 유명 연주가의 공연 등으로 주요내용이 채워질 예정이다. ©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
그러나 울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등 기독교 단체와 울산문화연대 측은 '처용가'라는 문화제 명칭을 놓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 즉 문화제 이름에 담긴 '처용'이라는 이미지가 외설적 의미를 담고 있어 지역 축제의 '심볼'로는 합당치 않다는 주장이다.
울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이창희 실행본부장은 13일 <이슈아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교과서를 통해 알 수 있듯, 처용가 자체가 담고있는 의미는 비윤리적이다. 전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 대표 축제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실행본부장은 "주최측은 처용가 자체를 무속적 관점으로만 보고 관용의 정신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처용가는 신라 말기 음란한 성 풍속도의 단면을 보여준 것 밖에 지나지 않는다"며 "시민의 정체성을 혼란시키고 축제의 가치 지향과도 부합하지 않아 명칭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울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와 울산문화연대, 울산YMCA, YWCA, 밝은미래복지재단 등 울산지역 시민단체는 이날 '처용문화제 명칭폐지 범시민운동본부'를 새롭게 꾸리고 문화제 명칭 변경을 위해 시민들의 힘을 결집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실행본부장은 "'처용'이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울산시 정서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문화제 이름을 고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지역 시민단체와 결집, 향후 범시민적 서명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솔직히 시민들 관심도 없는데…세 확장시키려는 것 아니냐"
하지만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 측은 이러한 개명론자들 주장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아가 명칭을 변경하겠다는 이들의 행동에 대해 '지역의 문화 종교적 주도권을 잡기위한 행동'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날 본보와 통화한 박종해 추진위원장은 "처용가가 담고있는 주요 내용은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관용의 정신으로 용서한 점에 있다"며 "이는 단순한 '외설'이 아니라 화해와 관용의 정신 등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소중한 전통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정헌 추진위 사무처장은 "개명론자들은 명분상 '외설'논란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들 모두 기독교 주요 인사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의 주장 뒤에는 종교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지역에서 문화적, 종교적 주도권을 쥐기 위해 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근거로 이 사무처장은 이들이 추진 중인 범시민운동 차원의 서명운동을 꼽았다. 즉 시민들의 문화제 참여가 저조한 상황을 대입해 본다면, '범시민적 서명을 받겠다'는 이들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결국 이를 이용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주장이라는 것.
실제로 이 사무처장은 처용문화제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를 묻는 질문에 "과거부터 지역의 대표적 문화축제로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다지 많은 호응을 받고 있지는 않다"며 "이런 이유로 반대론자들이 범시민운동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 현재 울산시 문화제 개명논란은 지역내 기독교 단체들의 종교.문화적 주도권 쟁탈 논쟁으로 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울산시
아울러 이 사무처장은 "그간 이들 단체에게 '예정된 축제를 마친 후 간담회 등을 통해 개명 논의를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완강히 축제 이 전에 추진할 것을 고집했다"며 "결국 이는 축제가 열리기 전 시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자신들의 세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잘라 말했다.
"무슨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이유 말해 보라"
하지만 이같은 주최 측 주장에 울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이창희 실행본부장은 "이미 개명운동을 종교적 문제로 몰고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범시민운동은 종교적 차원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미 3년 전에 공식적으로 제기된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 실행본부장에 따르면, 지난2004년 당시 박맹우 울산시장이 참석한 시민단체 간담회 자리에서 "처용문화제가 지역의 대표 문화제로 적합하지 않다"라는 주장이 최초로 제기됐고, 이후 각종 심포지엄을 통해 박종해 위원장 역시 "민망한 요소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라는 것.
이에 이 실행본부장은 이른바 '주도권 논란'에 대해 "추진위원회 측이 무슨 근거를 갖고 그런 모함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기독교 단체가 주축이 돼있기 때문에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건지는 몰라도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가 문화제 개명을 추진하는 이유는 단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며 "이미 언급했듯, 처용가 자체가 윤리적 정신에 문제가 있다라는 점과 울산의 대표적 가족 축제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다라는 점이다"라고 못박았다.
■ '울산문화연대'가 문화연대 소속?
한편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측에 따르면, 이번 개명운동을 추진중인 울산문화연대는 울산지역의 종교.학계 인사 5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의 이름만을 놓고 본다면, 진보성향의 문화연대를 떠올릴 수도 있을 법한 상황. 하지만 본보 확인 결과 울산문화연대는 문화연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문화연대 이원재 공동사무처장은 <이슈아이>와의 전화통화에서 "광주, 부산 등 지역네트웍과 연계하는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울산문화연대'는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단체"라며 "각 지역에 '문화'라는 이름이 들어간 단체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처용문화제 개명 논란과 관련, "오랜기간 축적돼온 지역 문화 축제를 선정성의 이유만으로 이름을 바꾸려 한다면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며 "종교적 집단성까지 느껴진다. 그들도 다양한 관점으로 현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심지어 권력적 선호도에 따른 인위적 조정과 유사하다는 느낌까지 든다"며 "표현의 자유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개명 주장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