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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1740349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4
    조회수 : 2219
    IP : 118.33.***.88
    댓글 : 35개
    등록시간 : 2018/02/21 12:54:28
    http://todayhumor.com/?humordata_1740349 모바일
    새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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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0937_058376_m.jpg




    그게 스물두 번째 크리스마스였던가?


    식구들은 모두 여행가고 혼자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 테레비를 응시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크리스마스에 혼자 뭐해 븅신아. 술 사갈께 문열어놔”

    반가운 친구 녀석의 전화였다. 
    그런데 3분도 안 지나서 문이 벌컥 열리는 게 아닌가?

    현관에는 눈을 잔뜩 맞은 남녀가 성탄절 모텔 경쟁에서 탈락한 후, 우리 집 앞에서 급히 전화했음에 분명한 모습으로 샴페인이 삐죽 나온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샴페인.... 먹자고?”

    “그래 임마! 왠지 네 녀석 혼자 궁상떨고 있을 것 같더라구”

    “고마워”

    “근데 술이 좀 모자랄 것 같다. 돈 줄께 좀 사올래?”

    “응”

    “그리고 편한 옷 좀 줘봐. 눈 땜에 척척해 죽겠네”

    그렇게 친구가 준 오천 원을 흔들며 눈 오는 크리스마스 거리를 뛰어 소주 세 병과 후랑크 소시지를 사오는 발걸음은, 알콜에 대한 기대감과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지 않게 되었다는 신남에 한껏 들떠있었다.

    “사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맞은편 꺼져있는 TV 화면에 화들짝 떨어지는 두 사람이 비쳤다. 
    나도 모르게 죄지은 느낌으로 “안주 만들어올게” 하며 부엌으로 도망치듯 향하는데, 얼핏 본 친구 녀석의 입가가 침과 립스틱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후랑크 소시지는 껍질을 벗겨 칼집을 내고 달궈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살짝 익혀내고 머스터드소스로 줄을 그어 맛깔스럽게, 오징어는 물에 살짝 불렸다가 버터 두른 후라이팬에 살짝 굽고 마요네즈와 고추장으로 장식하여 안 그래도 출출하던 배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오르게 했다. 그 고소한 내음들을 작은 소반에 차려 잔 세 개와 함께 거실로 들고 나갔다.

    “자! 먹자!”

    한참을 게걸스럽게 소시지와 오징어를 우걱대며 소주를 다섯 잔 정도 따라 마셨을까? 그들은 소주와 안주에는 전혀 입을 대지 않았고, 샴페인만 한 모금씩 홀짝대더니 여자아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어설프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한 연기를 시작한다.

    “준준준아 어쩌지? 오늘 하루 종일 시내 돌아다녔더니 피곤한가보다 얘, 방에 재우고 올게”

    “아냐, 너도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어”

    “그래도 되겠냐? 야 그래도 너 혼자 놔두고 어떻게 자냐.”

    “아냐 나 오늘 늦게 일어나서 어차피 오락하고 밤새울라 그랬어.”

    “그럼... 뭐 먼저 잘께 잘 자라”

    “응”

    문고리를 한껏 돌려 잡았다 닫고 천천히 놓는 폼이 소리 안 나게 잠그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게임기의 전원을 넣는다.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가 서른 네 번 째 용암에 빠져 죽어가던 때쯤, 핸드폰에 띵동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친구야 진짜 미안한데 편의점 가서 콘돔 좀, 지갑은 쇼파 코트 안주머니에 있다.’

    다시 슬리퍼를 끌고 눈이 내리는 거리로 나선다.
    혼자 소주 두 병을 퍼마신 탓인지 전혀 춥다는 생각은 안 들고 가로등에 비치는 눈송이들이 한없이 하얗다는 생각뿐

    편의점에 들러 콘돔 한 갑을 사고 괜스레 한 바퀴 돌아보고 있으려니 팥빙수에 쓰이는 팥 깡통이 하나 덩그러니 진열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슨데 너는 왜 여기 있냐? 덥던 여름에 다 팔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버려져 있는 꼬라지가 마치 크리스마스에 어디에도 필요 없는 나 같은 녀석 같구나. 

    난 왠지 모를 동질감에 녀석을 덥석 품에 안고, 한 손에 콘돔을 쥔 채 다시 눈 내리는 거리를 돌아간다. 

    ‘똑똑’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빼꼼 열리고, 불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 방에서는 비릿시큼한 오징어 냄새 같은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얼버무리며 급하게 방문을 닫아제끼는 친구를 보며 녀석도 참 바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구나 싶었고, 한손에 든 팥빙수 깡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난 너라도 먹어야겠다.'라고 중얼거리며 깡통따개를 찾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 가장 높은 찬장에 처박혀있던 빙수기계를 꺼내고 여름에 얼려두었음이 분명한 한껏 쪼그라든 얼음들을 갈아 팥을 올리고 우유를 붓는다.

    ‘곰돌이 젤리라도 사올걸 그랬나....’

    그러고 몇 수저 떠먹다가 배가 불렀는지 맛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남은 소주 한 병을 비웠던 것 같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 녀석은 가끔 술자리에서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걔 바래다줄라고 나오는데 준준준 이 새끼가 쇼파에 널브러져서 자는 거야.
    근데 입가에 거무죽죽 피 같은 게 흘러있어서 이 새끼 뒤진 줄 알고 막 흔들어 깨웠는데  잘 보니까 팥빙수 처먹다가 흘린 거야. 시발 크크크큭. 크리스마스에 혼자 푸하하하!”


    언제나 그렇듯 난 그냥 멋쩍게 웃으며 술잔을 비웠고, 친구들은 그런 나의 병신 같은 과거를 이것저것 들추며 술자리의 분위기를 업 시킨다. 
    정신이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새벽 깜깜한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쌀쌀함을 느끼며 또 다시 크리스마스가 돌아오고 있고, 올해는 혼자 보내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이 몇 년째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번 크리스마스도 작년들과 다를 바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갑자기 생각난 내 생일의 숫자 네 자리를 기억해 본다.





    십 이 월  이 십  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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