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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에 대한 철학은 변화에 대한 거부 혹은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여 세상을 배타적으로 보고 적과 동지의 구분을 짓는 부정적인것이라는 글을 밑에 썼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철학을 갖는 것이 일자에 대한 철학보다 더 나은, 더 발전적인, 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들뢰즈는 일자에 대한 철학을 나무 이미지로 생각을 했다고 밑에 썼습니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더 발전된 철학의 이미지는 리솜입니다. 각각을 뿌리를 땅에 박고 나뭇가지는 연결이 되어 있는 리솜이 들뢰즈가 추구하는 철학의 이미지 입니다. 각각의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연대! 마주침입니다.
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는 타자의 타자성으로 말미암아 타자를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가 타자를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있습니다. 기계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죠. 액셀을 밟으면 차는 빨라질 것이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느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타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선의를 갖고 다가가도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고, 더 큰 선의로 돌아올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나를 해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타자는 지옥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 타자가 지옥인 것은 바로 나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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