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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학에 취미가 생긴지 얼마 안되는 이과계통 전공자라서 밑에 글을 올리신 분들 처럼 cogito를 가지고 나의 철학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한참 모자랍니다. 그래서 재밌게 읽었던 칸트 철학 중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부분을 요약해서 올려 봅니다. 저는 아직 철학적 소양이 부족한 관계로 이 내용이 옳고 그른지 혹은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어느 부분이 비판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논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딴에는 재미를 붙이고 공부하는 내용도 정리해 볼겸, 지금 아름다움이나 행복에 관한 이슈가 올라오는 만큼 칸트의 생각을 대신해서 적어 봅니다.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꼭 지적해서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칸트의 인식론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맛보는 등 감각기관을 통해 접했을 때 그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을 직관이라고 표현합니다. 직관은 외부 사물을 보는 외적직관과 나 자신을 돌아보는 내적직관으로 나누어지죠. 사람은 모두 다른 개별인인데 같은 사물을 같게 인식할 수 있는 이유를 선험적 인식을 통해 보편적으로 사람이라면 같게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선험적 종합판단인데 인간의 뇌 속에 신의 출장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감각을 통한 인식과정에 대한 기본 소프트웨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 장치에 필요한 것을 직관의 형식이라고 합니다. 직관의 내용은 물론 사물이 될것이고 직관의 형식은 직관에 필요한 조건을 말하는데, 외적직관은 외부에 있는 것이므로 외부 사물과의 공간, 직관을 통한 시간이 그 형식입니다. 내적직관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므로 공간은 필요치 않으나 내가 돌아보는 나는 현재의 나가 아닌 과거의 나이므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직관의 형식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과거의 것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이죠
직관한 대상을 어떤 사물로 인식하는 과정을 사유라고 합니다. 감각된 사물을 특정 사물로 인식하는 과정이죠. 우리가 자동차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같은 외관이 아닌 처음보는 포드 컨셉카를 보더라도 그것을 자동차로 인식합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똑같은 외관을 본적이 없는데도 이러한 인식이 가능한 것이 사유를 통해서죠. 사유는 보편적 오성을 이용하여 사물의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사유의 형식은 범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가치는 사물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있을 겁니다.
우리의 행동은 인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동 혹은 실천은 의지가 필요하며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본능, 욕구나 개인의 도덕적 준칙이 영향을 미치죠. 본능적 욕구 혹은 타산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죠. 좋아하는 여자를 꼬신다거나, 먹고싶은 음식을 취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순간에도 본능적 욕구가 아닌 옳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가 설명이 어려운것인데 인간은 선험적 도덕법칙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한 행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개인개인의 도덕준칙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면 도덕법칙이 되는 것이죠. 준칙에도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덕적 행동의 내용으로는 보편적인 행동양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른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죠. 쓰러진 사람을 보고 직접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고 신고를 하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느 행동이 도덕법칙에 맞는 행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준칙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형식이라는 것은 바로 정언명령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어떤 행동을 하면 나는 기쁠거야, 혹은 어떤 행동을 하면 내세에 도움이 될거야, 어떤 행동을 하면 지옥에 가겠지? 라는 가언명령이 아닌 정언명령. 그러니까 인간이라면 이 상황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게 맞다. 라는 절대적인 정언명령에 따른 행위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 부분이 저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오늘의 유머와 일베가 다른 가치를 갖는다라는 명제가 참이려면, 단지 커뮤니티 내의 내용보다는 어떠한 의견이 발생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되는것이지 싶습니다. 동성애 혐오, 여성혐오라는 혐오가 주를 이루더라도 그 과정에서 팩트를 체크하고 선동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진 여론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말이 다른 곳을 샛는데 어쨌든 이러한 행동도 선험적 도덕 판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는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죠. 그러므로 미래의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악에 관한 가치를 갖습니다.
종합해보면 과거의 원인에 해당하는 인식과 미래의 욕구에 해당하는 의지 사이에 만나는 접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은 현재 상태에 대한 명제이죠. 저것은 의자이다(인식), 저것을 옮기자(의지)와는 다른 저 의자가 편하구나(느낌, 감관판단), 저 의자가 너무나 아름답구나(느낌, 취미판단)를 느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느낌이 오로지 주관적이라면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나 누구나 편한 상황은 존재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가치를 갖는다는것은 선험적 느낌 형식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느낌이라는 것도 결국 오성을 통한 사유작용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인식과 의지는 선험적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정이므로 대단히 보편적입니다. 이 과정을 쉽게 설명하는 말은 개별 판단은 눈앞의 특수를 일반원리인 보편 아래 포섭시키는 과정이다 라고 볼 수 있는데 느낌은 일반원리가 없이 특수를 통해 그 보편을 찾아나가는 반성적 판단력에 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철학의 한 분파일 수도 있는 미학이 존재 가능한 이유가 되겠죠.
요약해보면 대상의 인식-오성, 이론이성-과거의 원인-'진'/위 판단(순수이성비판), 행동-의지, 도덕법칙-미래의 욕구-'선'/악 판단(실천이성비판), 느낌-호감-현재의 감성-'미'/추 판단(판단력비판)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간 중간에 많은 논리와 증명을 제외하고 저의 생각이 달리는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출처 | 칸트 철학에의 초대-한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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