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집에서는 사적인 전화를 못했어요.
 
방에서 몰래 문 닫고 속삭이는 정도의 톤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화 톤의 통화는 거의
친척과의 통화나 음식 주문, 서비스 문의 등의 통화뿐이었어요.
친구와의 통화조차도 끝나고 나면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하니?"라는 못마땅한 물음으로 시작해서,
통화 상대방에 대한 모든 호구 조사를 하시거든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 친구나 연인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거절하고 "미안해 ㅠㅠ 무슨 일이야? 톡으로 가능해?"라고 보내곤 합니다...
매번 이러기도 참 미안하고 답답해요.

이보다 더 어렸을 적엔, 제 네이버 계정에 로그인해서
제 블로그며 지식인 질문 기록을 직접 보시기까지 하셨더라구요.
제가 남긴 글을 보시곤 저한테 그것 관련해서 이것저것 또 물어보시고 놀리시고....
딱히 큰일날 내용도 없었지만
그냥 저만의 비밀스러운 익명 공간이 들추어진 거 같아
어린 마음에도 상당히 불쾌했고
어느덧 십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아직도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네이버 계정을 처음 만들 당시에는 어려서 부모님 도움을 받아 회원 가입을 했기에
부모님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그 일 이후로 부모님이 아실 법한 비밀번호는 쓰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다보니 어릴적에 쓰던 비밀번호를 그대로 쓰게 된 계정 하나가 있는데,
바로 카카오톡 계정입니다..
그 비밀번호는 부모님도 아시는 거라서 언젠가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다가 그대로 둔 건데,
방금 전 거실 컴퓨터로 제 계정에 로그인했다는 알림이 왔네요.
부모님은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계시고.
소름이 돋아서 폰으로 당장 거실 컴퓨터 인증을 해제해버렸어요. 

초등학생 때야 뭐...
이 꼬마가 인터넷에서 뭘하고 다닐까 궁금하신 마음에 그러셨을 수 있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것도 제가 생각하기에 거의 사생활의 끝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메신저를 보셨다는 게 기분이 참 좋지 못해요..
제가 뭐 떳떳지 못한 일을 하고 다녀서가 아니에요.
부모님이 제 통화 내용이나 톡 내용, 인터넷 글 내용 등을 아시고도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시고 잊어버리시면 저도 정말 상관 없는데
저의 이런 행적(?)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시고 언급하시고 놀리시고
또 오간 대화 속 상대방을 멋대로 판단하시니까...
그게 신경 쓰이는 거거든요.

그냥 정면돌파 이외엔 답이 없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