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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economy_16845
    작성자 : 안생기고싶냐
    추천 : 13
    조회수 : 1239
    IP : 222.235.***.232
    댓글 : 59개
    등록시간 : 2016/01/19 01:39:10
    http://todayhumor.com/?economy_16845 모바일
    베오베 재래시장 글 읽고
    설거지를 하면서, 왜 재래시장은 우리에게 안좋은 추억을 남기는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 입니다.
    뭐, 지붕을 씌우고, 카트를 도입하고 그런 물리적인 변화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바로 "농경사회 및 고도성장 산업화 시절의 소상공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주거의 이동"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이 내가 살아가다 죽을 곳이었고, 내 이웃은 평생 함께 봐야 할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었고, '옆집 숟가락 숫자도 안다.'라는 말도 있었죠.
    산업화 고도성장기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거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한 번 큰 이동은 있을지언정
    직장을 구하면 그것은 "평생직장"이었고, 주거는 그 직장 근처 어딘가로 고정됩니다.
    농경사회처럼 모두가 품앗이를 하며 살지는 않더라도, 이웃은 여전히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함께 안면을 익히고 이웃끼리는 웬만하면 좋게좋게 지내던 그런 시절이었죠.

    이러한 사회에서 시장 상인의 스탠스는 명확합니다.
    "가까운 이웃들에게 특혜를 베풀고, 알 수 없는 외지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운다."
    나와 아침 저녁으로 얼굴 맞대고 사는 옆집 김씨, 아랫집 박씨가 과일을 사가는데 상처난 것, 오래된 것 팔 수 있을까요? 못합니다.
    그건 더 이상 그 골목에서 장사해먹지 않겠다는 소리죠.
    나와 매일 보는 사람에게는 좀 더 좋은 물건을, 말도 트고 지내는 사이라면 가격도 싸게줘야 그 동네에서 장사해먹고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외지인에게는 잘 팔리지 않을 물건을, 비싼 값에 팝니다.
    그래야 이웃들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생기는 손실을 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스탠스도 명확합니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들에게 눈도장 찍기입니다.
    떡을 돌리고, 인사를 하며 누구네 이사왔다고 신고를 합니다.
    자식들도 인사를 시키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다 오픈합니다. 
    숨기는 게 많을수록 지역사회의 일원으로는 자리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장 상인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많은 식재료를 사가며 매상을 올려주고 누구네 새로 이사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온 식재료로 집들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그 지역사회의 "특혜를 받는 동네 주민의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룹 외부인으로서 물건을 살 일이 있다면?
    시장 상인은 당연하다는 듯 바가지를 씌우고, 소비자 또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좀 심하다 싶어봐야 "에~ 그 동네 인심 한 번 사납네. 퉤!" 하고 맙니다.


    하지만 정보화사회가 되고, 동시에 IMF를 거치면서 생존방식이 달라집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직장을 다니는 젊은 사람들은 직장이 바뀜에 따라 4~5년마다 주거지를 바꾸는게 일상이 되어버렸고,
    직업이 다양한 만큼 생활 패턴도 다양해져 출퇴근길에라도 이웃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드물어집니다.
    공들여 이웃과 좋은 관계를 쌓아봤자 써먹을 일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으며, 이사 한 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매 번 그럴 수도 없습니다.
    또한, 정보화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름, 직업, 주소, 나이, 가족사항이 모두 중요한 개인정보가 되어 함부로 오픈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이웃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함부로 이웃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심좋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가,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언제 칼을 든 강도 혹은 그 이상으로 돌변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소비의 패턴 또한 달라집니다.
    동네 한 가게의 단골이 되어 물건을 사는 일은 사라집니다.
    대신 여러 마트, 홈쇼핑, 인터넷 쇼핑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구매하게 됩니다.
    좋은 물건 사려면 발품 팔아야 된다는 산업화시절 재래시장 이용방법은 귀찮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럴 시간에 클릭 몇 번이면 내 방에 앉아서 전국의 마트와 인터넷 장터의 물건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메일링 서비스를 가입하는 것 만으로도 매주 무슨 물건이 싸고 좋은지(신빙성 여부는 차치하고) 알아서 정보가 날아옵니다.
    그걸 보고 그 정보만으로 충분하다 싶은 사람은 인터넷 쇼핑을, 다종다양한 물건을 직접 보고 사야겠다 싶으면 마트를 가는겁니다.

    이러한 소비시장에서는 에누리, 덤 같은 건 기대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내가 언제 어디로 이사갈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가든 일정 수준 이상의 평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다.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 물건을 다른 가격에 사게 되는 재래시장의 가격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트가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트는 적어도 그런 식의 차별을 당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장 상인들은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분명 새로 보는 얼굴인데 새로 이사왔다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장 상인으로서는 이 사람이 외부인인지, 새로 나의 단골이 될 사람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면 덤도 에누리도 없이, 그냥 원래 가격에 원래 양만큼 물건을 팝니다.
    그런 일이 두 세번은 있어야, '아, 이 사람이 새로 이사 온 사람이구나.' 합니다.
    이렇게 끝나면 다행이죠.

    분명히 낯익은 얼굴인데, 몇 번 본 것 같은데 오며가며 인사도 하지 않고 소 닭 보듯 지나갑니다.(주로 젊은 사람이)
    그러면 "요 놈 봐라. 새로 왔으면 인사도 하고 붙임성있게 굴어야지. 어디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녀?"
    이런 생각에, 알아도 싸게 주기는커녕 오히려 바가지를 씌우거나 질 떨어지는 물건을 줍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냥 받아갑니다.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처럼 따지고 들지 않죠.
    그러면 속으로 "물건 볼 줄도 모르는게 어디서~" 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젊은 사람도 바보는 아닙니다. 
    시장 물건이 싸고 질 좋대서 편리한 마트 잠시 뒤로 하고 시장까지 다녀왔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물건이 영 아닙니다.
    그러면 속으로 다짐하게 되죠.
    "역시 마트가 낫다. 시장은 이래서 글러먹었다. 내 다시는 시장 안간다. 전통시장따위 망하든 말든."


    이건 시설을 개선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죠. 어느 한 쪽이 사고방식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겁니다.
    그러면 어느 쪽이 바뀌어야 할까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판매자가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는 꼭 그 판매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개 숙일 이유가 없죠.
    또한 시대의 변화 또한 판매자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지난 20년간 동네 이웃 단골장사로 먹고 살았다 한들 앞으로 20년 동안도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아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정" 따위로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단골손님들도 언젠가는 이 동네를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면 새로운 고객의 마인드에 맞춰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거죠.


    저는 에누리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은, 누군가는 그만큼 바가지를 쓴다는 소리입니다.
    사람은 기분 좋은 경험은 금방 잊고 기분 나쁜 것만 기억하죠.
    자신이 싸게 산 경험은 금방 잊지만, 반대로 비싸게 산 경우는 두고두고 기억하며 기분 나빠하는게 사람 심리입니다.
    그런 식으로 시장에 안좋은 기억이 자꾸 쌓이면 자연히 시장에 발길을 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시장 단위로 가격 정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시세에 따라 그램/킬로그램 당 배추는 얼마, 사과는 얼마 이런 식으로 시장 입구에 전광판 같은 것을 설치해서 언제든지 그 전광판을 통해 물건 가격을 확인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면 시장 전용 앱 같은 것도 개발되겠죠. 물건 값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그러면 그 시장 내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도 적어도 "바가지 썼다."는 생각은 덜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장 안에서 같은 품목 중 더 질 좋은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를 찾아내는 것은 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가 되겠죠. 
    카드 안받고 현금영수증 안해준다? 그러면 그 가게에서 안사면 됩니다. 다른 가게 가도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가격에 살 수 있는데 굳이 그런 곳에서 물건을 살 필요가 없죠.

    물론 시행하기 힘든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상품의 가치에 따라 도매가로 떼오는 가격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가격에 파는가."하는 문제가 있겠죠.
    그 해결법 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생산자와 판매자/판매자와 판매자 간의 문제가 되겠죠.
    다만, 새로운 소비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무너져버린 신용을 회복해야 하고, 그러려면 산업화시절 소상공인의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가격정찰제"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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