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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freeboard_1659905
    작성자 : 목젖C컵
    추천 : 10
    조회수 : 307
    IP : 128.68.***.172
    댓글 : 26개
    등록시간 : 2017/11/12 09:32:35
    http://todayhumor.com/?freeboard_1659905 모바일
    느닷없이 찾아온 한 손님
    아는 형이 호스텔은 운영하는데,
    잠시 출장을 가신다고 봐달라고 하셨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스텔에 들어와서 준우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노래를 듣고 있던 시각이었다. 
    새벽 한시가 넘는 시간에도 예약된 손님이 아직 오질 않았기에, 무료한 기다림은 날 더 짜증나게 했다.
     그러던 중 러시아 특유의 기분나쁜 초인종 소리가 정적을 깼다. 

    무슨 소리가 이렇게 기분나빠. 
    러시아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호스텔 맞죠? 
    -네, 맞지만 저희 호스텔에 예약하신게 맞나요? 
    -네, 윗집 사람이 여기가 호스텔이라고 데려다주더군요. 
    -안타깝지만 저희 호스텔은 한국인 예약만 있었습니다. 이 근처에 호스텔이 많아서 헷갈리신것 같아요 
    -너무 늦고 피곤해서 잠시만 앉아있다 갈게요. 

    기분 나빴다. 아니라니까, 당신이 묵을 곳이.  

    막무가내였다. 지치고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 또한 지치고 힘들고 정신 또한 메말라있었다. 남을 이해할만한 처지가 아닌 상태였다. 

     전화를 좀 해달란다. 
    당신이 하라고 했다. 
    다시 해달란다. 
    당신이 하라고 했다. 여기는 당신이 예약한 곳이 아니니 얼른 나가라고 매정하게 굴었다.  왜냐하면 내가 피곤했기 때문에.  

    이곳은 한국사람이 주로 묵는 곳이기에 러시아분이 오면 우리는 분명 알거라고 했고, 예약자 명단에 러시아 사람은 전무후무 하다고 했다.

    - 한국인이요? ‘캄사합니다’ ‘아뇽하쎄요’ 

    뭐야..
    - 한국어 어떻게 알아요? 
    -한국서 일했어요. 호텔에서.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그제서야 그사람의 손을 보았다. 추위에 떨고 묵을 곳을 찾아 더듬거리고 일할 곳을 찾아 문을 두드렸을 그 때타고 꾀죄죄한 손을.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요, 전화를 걸었다. 답이 없다 
    또 걸었다. 답이 또 없다. 

    - 묵을곳은요?  
    -없습니다. 
    -계획은요? 
    -일자리를 찾아지요.  

    내가 너무 차갑게 군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두달 전 나 또한 잘곳을 걱정하던 그 사람이었기에.  

    -나가시죠. 나가서 경비에게 물어봅시다. 이 근처 호스텔이 어디 또 있는지. 

     함께 나가서 경비실에 찾았지만 그녀 이미 많이 두드렸던지 화난 경비원이 여기엔 호스텔이 없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란 매정한 말과 함께 문을 쾅 닫는다. 
    보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다시 원점이다. 

    -어디서 자요? 
    -글쎄요. 이만 들어가요. 당신은 충분히 할만큼 했어요. 늦은 시간에. 

    나는 그때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내 발목을 잡는 한가지가 있었다. 오늘은 돌아가신 할머니 생신이었다. 제사를 드리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께 드리는 예의 한 형식으로 타지에서나마, 비록 제사를 따로 간소하게나마 제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손님이 늦게 오는 바람에 할수가 없었다. 
    그 죄책감일까  혹은 할머니와 겹쳐져 생각되어서 일까. 반드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제가 마음이 불편해요. 
    -아닙니다. 한국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단걸 압니다. 지하철에서도 항상 할머니들 짐을 서로 들어주려 하고 도움을 꼭 주어야 하는 사람들임을 저는 겪어봐서 압니다. 

     어쩌라고.. 
    당신은 지금 잘곳이 없고 난 지금 도움을 줄수가 없는데.  
    돕고싶었다. 
    그사람이 딱해서도 있지만 왜인지, 할머니의 생신에 느닷없이 찾아온 그 사람에게 잘해주어야 할것같은 묘한 의무감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국인은 한화 35유로를 받는다. 환산해보니 2,630루블정도 된다. 이사람에게 그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일단은 기다려보라 했다. 
    위에 올라가서 매니저와 이야기해본다고.  매니저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하루만 재우자 했다. 

     밑에 내려가보니 그녀는 온데간데 없다. 
    무작정 뛰었다.  
    멀리서 얼핏 보인다. 
    지친 어깨와 그 어깨를 더욱 움츠리게 하는 짐들을 끌고가는 힘없는 여인이. 

     다짜고짜 화를 냈다. 
    어디가냐고 잘데도 없는데 어딜 가냐고 이 밤에. 
    역에 간단다. 

    -역에 가면. 뭐가 있어?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왔다.
     밤 새고 내일 찾아본단다. 그러지 말고 우리 숙소로 가자고 했다. 물론 우리에게 그런 권한은 없었지만.  
    2000루블까지 깎아주자는 준우형 말을 무시한 채 당신은 지금 1500루블밖에 없는겁니다. 내말을 기억해요. 라고 말하고 무작정 데려왔다. 
    준우형한테는 1500루블밖에 없다는데 어쩌죠, 라고 했더니 맘여린 형은 1000만 받자고 한다.  
    손수 둘이 이불커버를 씌워주고 나왔다. 괜히 형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의미모를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보니 웬 싸구려 믹스커피 봉지가 있더라. 
    자세히 생각해보니, 잠시 앉을 곳을 준 우리에게  고맙다며 주고 떠난 싸구려 커피였다. 
    잘곳도 없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던 사람이 유일하게 언 손과 마음을 녹일 유일한 수단일 그것을, 고맙다며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그 커피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값진 커피일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진 싸구려 커피는 내가 본 그 어느 것보다 고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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