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무실 보조해주면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인데요.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이 갑자기 "XX 씨~~"하면서 다소 부드럽게 부르시는데
왠지 부탁임을 직감했습니다..
역시나.... -_-..
내용인즉
크리스마스에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산타 복장을 하고 선물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한데
알다시피 학교에 남자 선생님들이 별로 안 계셔서 XX 씨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교장선생님께 부탁하기는 정말 너무 리얼리티지 않겠느냐..
하길래..
"아 선생님.. 저는 맨날 점심시간 되면 애들이랑 딱지 접고 놀아주느라
애들이 제 얼굴 다 알 텐데 어떻게 그걸 해요. 애들 눈치채면 어쩌려고요 "
했더니.
"그건 걱정 말어. 내가 수염 그럴듯한 거 준비해놔서
아예 XX 씨인 거 눈치도 못 채게 완벽하게 분장시켜 줄게"
하시길래.
솔직히 한 번쯤 산타클로스 분장하고 애들한테 선물 주고 그런 일해보고 싶잖아요 ㅋ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애들한테 막 선물 주고 기분도 풋풋할 것 같고.
어차피 저 말고는 한가한 남자가 없기도 하고(-_- ) 해서 승낙했죠.
대신 저인 거 못 알아보게 완벽하게 분장시켜 달라고 ㅋ
만약 애들이 저인 거 눈치채면 동심이 깨지는 거잖아요~ 하고 ㅋ
그래서 솔직히 싫은 척은 했지만
괜히 저도 막 설레고 떨리고 재밌을 것도 같고.
그날 다가올 때까지 두근두근하면서 카운트다운도 세고 기다렸습니다.
'아 내가 드디어 산타복도 입어보는구나!!' 하고 좋아했었는데.......
문제의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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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득한 어린이들의 친구 산타클로스..
이게 무슨 산타야 ㅠㅠㅠㅠ!!!!!!!!!!!!!!!!!!
ㅁㄴ러아ㅣ러ㅏㅣㄹㅁㅈ더ㅏㅁㄴㅇㄻㄷㅈㅣㅈㄷㄱ닝ㄹㅁㄴㅇㄻㅈㄷㅎㅈㄷㅅㅎㅈ다ㅓ심ㅈ댜셤제ㅐ다ㅣㅁㄹㅈ다ㅣㅓㄹ
..이 산타 등장과 동시에..
저 멀리서 5살짜리 여자애 하나가 제 모습을 보고
오열을 하면서 뒤집어지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미친 듯이...
문 딱 여는 순간 "와아 어서 오세요 산타 할아버지!!^^"를 기대했는데..
문 여는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악!!!!!!!!!"하면서...
저 갈 때까지 내내 하염없이 울더군요...
개 무안...
내가 암만 애들 못 알아보게 얼굴 분장 좀 해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사람 분장은 해줬어야죠 ㅠㅠㅠ
유치원 선생님이 일주일 전부터 수업시간마다 카운트다운 세면서
산타클로스 올 거라고 얘기해가면서 아이들이 1주일 내내 기다린 산타클로스인데..
분명 아이들은 하루하루 손가락 접어가며 저런 산타를 기대했을 텐데...
이것은 현실.. 시궁창 같은 현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친구 산타클로스와
6년 인생 일찍이 겪어보지 못 했던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고 있는 어린아이..
제가 생각해도 저 몰골을 맞대고 있는 저 아이의 기분은 정말 참
ㅈ 같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선물 하나하나 주면서
"올해는 친구랑 싸우고 그랬다면서? 할아버지는 다 알아요" 하면서
담부턴 싸우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요. 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하락했는데..
꼬마 아이 반응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면서 손을 파르르 떨면서.....
"다신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하면서 눈물을 글썽글썽 거리는 겁니다....
아놔 진짜..
원래 참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산타클로스를 했다. 고 하면
풋풋하고 기분 좋은 기억만 있어야 하는데...
이 어쩔 줄 모르는 찜찜함과 죄책감....
암튼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