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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자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게임의 복잡성과 게임성의 깊이를 착각하고,유저 친화적인 요소와 게임성의 얕음을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복잡성과 깊이는 2개의 다른 요소입니다. 게임의 복잡성은 유저 친화적인 요소와 결합되어야만 합니다. 게임의 복잡성이 게이머에게 충분히 설명되고, 게이머가 스스로 생각해서 여러 개의 선택지중 하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게이머가 스스로 내린 선택의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게임이 유도해야만 게임의 복잡성은 게임성의 깊이가 되지, 게임의 복잡성과 게임성의 깊이가 같은 것은 전혀 아닙니다.
세금을 게임 내에서 조절할 수 있다고 칩시다. 제가 조절할 수 있는 세금이 게임의 나머지 요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게임이 설명해주지 못했으며, 제가 지금 세금을 늘리거나 줄이면 현재의 문제점에 어떤 도움이나 해악이 될 수 있는지를 게임이 이해시켜주지 못했으며, 그 세금 컨텐츠를 게임의 나머지 컨텐츠와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해서 굳이 세금을 건드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세금이 있다 해서 게임성의 깊이가 증가하겠습니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고, 제대로 이해시켜주지 못했고, 제대로 게임의 나머지 요소와 연결시키지 못한 복잡성은 그저 게임제작자의 허세일 뿐입니다. 시뮬레이션 장르는 비주류고 돈이 안 되기에, 그저 시뮬레이션 장르가 좋아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살짝 아마츄어적인 게임제작자들이 많아서인지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그런 함정에 자주 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데모크라시 3는 어떤 게임일까요?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 첫 인상
데모크라시 3는 포지테크 게임즈(Positech Games)의 메인 프랜차이즈중 하나인 데모크라시 시리즈의 최신작인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민주정권의 수장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 수가 있지요.
토탈워 시리즈나 문명 시리즈를 해보신 분들은 아마 어느 정도 불만족이 안에 쌓여가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분명 화려하고, 장대하고, 재밌고, 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토탈워 시리즈나 문명 시리즈는 아무리 열심히 플레이한다 해도 절대 이것이 정말 현실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게 모든 게임들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단점도 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니기에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경험들을 마음껏 만끽하고 즐길 수 있지만, 현실이 아니기에 아무리 만끽한다 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컴퓨터 속에서 0과 1이 트위스트 추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은밀히 알고 있습니다. 영웅이 되도 그저 컴퓨터 속 정보 덩어리 NPC들에게 의미없는 환호를 받을 뿐이고, 세계에 둘도 없을 제국을 건설해도 0과 1의 정보 덩어리들을 썰어 넘기며 만들어낸 그저 허상 같은 전기 덩어리 제국일 뿐입니다. 게이머들은 그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기에 그만큼 더 허탈해합니다.
데모크라시 3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화려하고 유명한 게임들을 어째 아무리 플레이해도 가슴 속 무엇인가가 만족되지 않는 사람들, 뭔가 정말 현실적인 국가를 정말 현실적인 방법으로 경영해보고 싶었던 사람들,데모크라시 3는 그런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습니다. 물론 데모크라시 3는 여전히 전기덩어리 국가를 전기덩어리로 경영하는 게임일 뿐입니다. 다만, 데모크라시 3는 그 전기덩어리를 예술적인 현실성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듬어서 마치 그 전기덩어리가 정말 현실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현대문명의 신비와 수학적 알고리즘이 빚어낸 하나의 전자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유저 친화적 요소
하지만 이미 위에서 말했듯 게임의 복잡성과 게임성의 깊이는 2개의 독자적인 요소입니다. 현실성 또한 단순히 게임이 복잡하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이 유저 친화적인 요소와 잘 융합되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데모크라시 3의 유저 친화적인 면모는 어떨까요? 당연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 튜토리얼이 없다면 그것은 미쳐도 제법 상당한 수준으로 미친 것입니다. 맛이 아주 갈대로 간거죠.
우선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전해드리자면, 데모크라시 3는 한글패치가 없습니다. 사실 이건 제가 앞으로 리뷰 할 예정인 타 게임들에도 적용 될 사항입니다. 제가 일부로 한글패치 없는 게임을 골라서 하냐면 그것은 아니고 그냥 대중의 관심을 못 받은 게임은 자연스레 한글패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난 중등영어와 고등영어의 일부를 마스터했고 영어와 찰떡궁합이다‘ 라는 분이 아니시라면 안타깝지만 여기서 바이바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겜덕질도 영어 잘 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만 넘을 수 있다면 정치에 대해 그리 많은 관심이 없는 분이라 하여도 데모크라시 3를 플레이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으실 것입니다. 이 게임은 아주 정교하고 잘 짜여진 튜토리얼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차근차근 플레이어를 도와줍니다. 튜토리얼은 게임 시스템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간단하게 짚어주며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주 명쾌하게 이해시켜줍니다. 그렇기에 튜토리얼을 끝내고 나면 이 게임이 사실 얼마나 간단하고 단순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대단한 깊이가 숨겨져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죠? 저거 간단한 튜토리얼만 통과하고 나면 전부 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도 안 어려워요!)
데모크라시 3의 인터페이스 또한 매우 유저 친화적입니다. 플레이어는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당장 보고 싶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아주 간단하게 그 정보들을 이용해 계획을 짜고 국가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폭력범죄를 한번 봅시다. 플레이어는 이 폭력범죄가 국가의 다른 요소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어떤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당연히 알고 싶을 것입니다. 폭력범죄가 어떤 해악을 저지르는지, 또 어떤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잘 파악해야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으니까요. 그럼 플레이어는 그것들을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복잡한 자료들을 뒤척이는 일? 아뇨, 플레이어는 그냥 폭력범죄 아이콘 위에 마우스를 올려놓고 한 몇 초 정도 그대로 두면 됩니다. 그럼 저절로 폭력범죄가 어떤 요소들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지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2가지 색깔의 선들로 나타내줍니다.
빨간색 선은 폭력범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범죄의 수치를 낮추는 것입니다. 폭력범죄의 수치가 높으면 그만큼 악영향도 심각하게 끼치니 폭력범죄의 수치는 낮을수록 좋습니다. 위의 스샷을 한번 봅시다. 폭력범죄는 CCTV, 경찰력, 지역사회 경찰화, 교육수준으로부터 빨간 선을 받고 있고, 관광산업에 빨간 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즉, 폭력범죄는 CCTV, 경찰력, 그 외 기타등등의 것들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힘을 잃고 수치가 낮아지며, 관광산업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초록색 선은 빨간색 선과 달리 수치를 높이는 것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빨간색 선과 비슷합니다. 다 한 눈에 보입니다.
■ 각 요소간의 높은 연계성
데모크라시 3의 장점이 인터페이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제가 예술이라고 말하지도 않았겠지요. 데모크라시 3의 또다른 장점은 바로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여러가지의 다양한 문제는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문제점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을 파고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현실적이지요.
범죄율을 봅시다. 시작할시 대부분의 국가는 범죄율이 그럭저럭 안 좋습니다. 여러가지의 다양한 요소들이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지만 본질적으로 가장 큰 문제점들은 바로 조직폭력, 알코올 문제, 실직율입니다. 전 범죄를 공격하기보다는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기에(전 이상주의자거든요), 조직폭력대신 알코올 문제 쪽을 파고들어가 봤습니다.
알코올 문제역시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은 알코올 소비량과 실직율입니다. 그중 알코올 소비량은 다시 실직율에 제법 영향을 받고, 실직율은 본질적으로 GDP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결국 범죄율이라는 하나의 문제는 다양한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범죄율은 높은 알코올 소비와 낮은 GDP가 부족한 사회보장정책및 조직폭력단과 연계반응을 일으켜 만들어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게임 얘기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게임은 옆에서 매우 친절히 도와주는대, 왠 귀찮은 요정이 뿅뿅거리며 나타나서 '링크!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 라고 방해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고 효과적이며 깊이 있는 인터페이스와 컨텐츠를 통해 도와주는 것입니다.
■ 밸런스
밸런스 문제는 제 게임플레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전 이 게임을 영국으로 해봤습니다. 우선 국가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았지요.
그렇게 살펴보니 우선 기술의 노후화와 교육분야의 후진성이 가장 심각해보이더라고요. GDP에 악영향을 미치며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증가시키고 있었습니다. 마침 영국은 초기 예산이 매우 넉넉하기에 전 우선 기초과학 분야와 교육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함으로서 기술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한 후 창조론 vs 진화론 논쟁에서 진화론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종교인들로부터는 인기를 잃었지만 학자들에게는 제가 기술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기술의 노후화를 금방 해결할 수 있었고 GDP를 성공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GDP가 증가하니 저절로 실직율이 낮아져서 범죄율 또한 어느 정도 낮아지게 됐고 예산안도 풍족하게 짤 수 있게 됐습니다.
전 그렇게 증가한 GDP를 이용해 교통 분야에 나섰습니다. GDP가 증가하니 예전엔 돈이 없어서 자동차를 못 사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게 되서 차량사용량이 제법 높았기에, 석유소비가 제법 상당했고 공기오염도 매우 심각했거든요. 전 우선 석유세를 30%로 증가함으로서 예산을 확보하고 차량사용량에 압박을 시작했으며 공공교통기관에 투자를 함으로서 차량사용량을 그럭저럭 줄였습니다. 엔진효율분야에도 큰 투자를 해서 차덕들도 그럭저럭 만족시켰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덕들은 저를 지옥에서 올라온 사탄처럼 바라봤지만 뭐 그럼 에너지 전혀 소모하지 않는 자동차를 지들이 한번 만들어보던가요.
그렇게 교통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난 후에도 제법 예산안이 풍족하게 남았기에 전 모노레일에 한번 투자해볼까 했습니다. 사실 모노레일에는 한참 전에 투자하려 했는데 값이 너무 비싸서 손을 못 대고 있었지요. 예산자체는 풍부했지만 국제경제가 제법 악화되고 있었기에 언제 경제가 막장으로 변할지 몰랐거든요. 전 일단 국제경제가 어떻게 될지 가만히 시간을 보내며 관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이벤트가 하나 터지더군요. 금융위기였습니다. 국제경제가 바닥에 처박히고 애써 올린 GDP도 함께 바닥에 처박혔습니다.
풍족하던 예산안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국가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회보장정책에 손을 댄다면 당장 국가부채는 막을 수 있겠지만 국가경쟁력이 크게 손상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사면초가였죠.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소소한 것들만 건드려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 이 위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로서는 국가부채가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수준 이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부채로 버텨도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회보장정책은 국가부채가 정말 위험한 수준이 되면 그때나 손을 댈 생각 이였죠.
다행히 국제경제는 1년 만에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GDP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예산안은 위태롭긴 하지만 이 회복세대로라면 금방 괜찮은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금융부채사건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게임이 가끔 무시무시한 공격을 해올 수도 있겠지만, 국가경제가 튼튼하고 건실하다면 잠깐의 위기만 어찌어찌 이겨낼시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마치며
데모크라시 3는 데모크라시 시리즈의 장점과 특징을 매우 훌륭하게 살려낸 다시없을 명작입니다. 시뮬레이션 장르가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게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 데모크라시 3만큼 친절한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기에 데모크라시 3는 시뮬레이션 장르의 입문용으로도 추천할만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하며 무엇인가 불만족을 느껴 오셨던 분들, 현실적인 게임을 원했지만 현실적이라고 자칭하는 게임들이 그저 게임으로만 느껴져 왔던 분들, 데모크라시 3는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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