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종교가 관련되어 논란이 된 발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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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다. 이것은 다소 새로운 종류의 종교다.
나는 자연에 목적이나 목표 혹은 의인화라고 이해될 만한 것을 전혀 갖다 붙인 적이 없다. 우리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생각하는 인간이 겸손으로 채워야 하는 장엄한 구조다. 그것은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감정이다.
인격신이라는 개념은 내게 아주 이질적이며 심지어 소박하게까지 보인다."
"물론 당신이 내 종교적 확신에 관해 읽은 것은 거짓말, 체계적으로 되풀이된 거짓말이었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명확히 표현해왔다. 내 안에 종교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세계의 구조에 관한 무한한 찬탄이다."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첫째와 둘째 인용문은 기독교 혹은 유대신앙을 부정하는 것이며,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세번째의 말은 초정상 과학(사이비 과학), 의사과학, 신비주의자들에게 널리 인용되고 있다.
자연에 대한 경이를 표현한 것이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지를 유리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나 보다.
아인슈타인의 평상시 태도나 발언들은 개무시하고 말이다.
이래서 과학자들은 문학적 수사를 구사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 필요성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분명히 머저리들이 오해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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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의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어떤 분열된 입자쌍이 각각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충분한 시간이 흘러, 입자쌍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거리까지, 수만광년이나 떨어진 후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우리는 어느 한쪽 입자의 스핀을 측정한다.
만약 그 스핀의 방향이 우리의 측정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고서 결정된다는 코펜하겐의 해석에 따른다면, 다른 입자의 방향은 어찌될 것인가?
분명히 각 입자의 스핀은 붕괴되는 순간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그런데, 어느 한쪽의 스핀이 인간의 측정에 의해 원래의 방향과 반대로 바뀌었다고 한다면, 다른 입자의 스핀과 같은 방향이 되므로 이는 모순이다.
그렇다고 한쪽의 스핀이 바뀐후 다른 쪽이 다시 바뀌는 현상은 붕괴순간 이외에는 일어날 수 없다.
더구나 수만광년 떨어진 입자쌍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닐스 보어는 위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대하여 다시 반론을 제기했고, 현재는 보어의 주장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위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신념인가? 과학인가?
호교론자들 중에는 "과학이 증거지상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바, 저 논쟁은 증거없이 주장하고 있으므로 신념의 충돌일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과학은 증거제일주의를 취하고 있지 증거지상주의를 취하지는 않는다.
물론, 일정부분은 아인슈타인이 신념에서 출발한 주장을 펼치기는 하였다.
하지만 저 인용글만 놓고 보았을 때, 저걸 신념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그저 억지일 뿐이다.
아직까지는 코펜하겐 해석이 완승한 것도 아니고 EPR패러독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정현석 박사의 연구결과로 EPR 패러독스는 더 이상 패러독스가 아니게 되었다(물론 아직도 미확정 상태다).
두 개의 대립하는 가설이 있을 때 확고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가설이 맞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더 다양한 현상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더 잘 구현해주는 가설을 임시로 수용할 뿐인 것이다.
다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인들의 양자역학에 대한 호의는 과학적 성찰이나 이해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자신들의 교의(연기법, 해탈 등)에 양자역학이 부합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즉 불교인들은 양자역학에 대해 억지를 부려가며 결국 신념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철학적 이론이 바람직한 결과를 불러왔다고 해서 그 철학이 바람직하다고 우기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과학적 성과가 어떤 철학의 설명들과 다소 부합한다고 해서, 그 철학이 과학적이라고 우기는 것은 유치한 개그가 아니라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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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 말을 두고 아인슈타인이 적어도 유신론자였음이 틀림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아인슈타인이 유신론자였는지 무신론자였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중동의 사막신과 같은 인격신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위에 인용한 발언이 아인슈타인이 유신론자였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문제의 발언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자신의 반대견해를 함축하여 표현한 것일 뿐이다. 호교론자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컨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 해석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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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없는 종교는 미신이고, 종교없는 과학은 흉기다."
또는
"과학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없는 과학은 불구다."
이 말을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근거는 따지지 말고(그랬다 치고), 여기서 종교의 의미는 다소 모호하다.
내 생각에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이 말한 종교란 당시 "종교=윤리"라는 패러다임 하에서 나온, 그러니까 과학의 윤리성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의 다른 글들과 대조하고 유추했을 때 말이다.
만약 윤리가 아닌 우리가 아는 종교에 대한 관념 자체였다고 할 때 위 말에 대한 지발돈쫌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ㅇ 단편적이고, 성급한 일반화다.
ㅇ 원인결과 혼동의 오류다.
ㅇ 결과적으로 심히 위험한 생각이다.
종교 혹은 신앙은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증거 없는 믿음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기복신앙적인 불교를 빼고 봤을 때, 이 믿음에 대한 정의로써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깝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증거없는 대상에 대한 믿음을 거의 가지지 않았으므로 논제로 꺼낸 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에 그 말을 했다면 내가 유추한대로 종교보다는 윤리를 말한 것이다)
과학은 검증을 통과하여 그 사실성이 명백해 보이는 증거에 대한 잠정적인 신뢰다.
종교가 과학을 포함해봤자 종교는 여전히 미신수준에 머문다.
과학적 결과에 철학적/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과학적 결과가 주는 효과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과학이 종교를 포함하면 미신 또는 흉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이 흉기가 되는 때는 과학을 사용하는 사람이 도덕과 이성을 상실하거나(또라이가 되거나), 도덕과 이성이 요구하는 행동양식을 보류하거나 따르지 않기(날강도가 되기로)로 작정했을 때이다.
(과학 때문에 환경오염과 히틀러와 슈퍼박테리아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자칭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이 항상 이성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종교가 보편적(?) 도덕과 상충하지 않을 때에는 과학이 종교를 포함해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지만, 종교가 보편(?)윤리나 도덕을 무시하려 할 때, 종교와 과학의 결합은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
과학이 종교를 포함하는 경우 또다른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발생한다.
과학자 중에는 종교인이 많다. 어떤 종교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과학자가 종교를 가졌다는 것 자체에 고무되어 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호교론자들이 간과하는 것 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과학자들은 전공분야의 과학에는 능통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카이스트에도 창조과학자가 꽤많은 이유다.
종교 말고 과학만 갖고 보아도, 창조과학자들은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연구에는 어느정도 철저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지만,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단편적이고 일화적이더라도 단 하나의 유사성만 있으면 바이블과 과학을 억지로 접붙인다.
이러한 대한민국 과학계의 비극은 과학적 태도와 과학적 사고방식을 결여한채 그저 과학적 지식만 쌓은 의사과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독단적 신앙에 의한)는 어울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과학자가 종교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연구는 자신의 종교와 연관이 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연구의 동기가 될 종교적 충동은 어느정도 예외로 한다.
우주의 근원을 캔다거나, 사물과 운동의 섭리를 규명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우주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은 종교인만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무신론자가 저런 조금의 양보도 하기 싫다면 "종교적 충동이 아니더라도 과학적 활동을 일으키는 동기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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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습니다. 당신은 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까?"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언젠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인용문은 아인슈타인이 기독교의 신을 믿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용은 문맥을 벗어난 것으로서 원래는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해석의 일면을 부정하기 위해 한 말이다.
더구나 아인슈타인의 종교적 배경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였다.
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보여 주기 위한 더 좋은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간섭하는 신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이론을, 사용 가능한 데이타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과학적 모형으로서 인식했다.
그는 그 이론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았고, 확률이나 무작위성이 자연의 근본적 성질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통계적인 해석이나 무작위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더 낫고 더 완벽한 이론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은 그러한 더 나은 이론이 발견되지 않았고 더 많은 증거들은 그런 이론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아인슈타인의 더 긴 인용문은 "과학, 철학, 그리고 종교"(과학, 철학, 종교의 민주적 생활 방식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 출판사, 뉴욕, 1941)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모든 사건의 질서 있는 규칙성에 젖어 들수록, 이러한 질서 있는 규칙성 옆에 다른 자연을 위한 원인이 들어 설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은 더욱 굳어집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규범이나 성스러운 규범은 자연 현상의 독립적인 원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서 자연 현상에 간섭하는 인격적인 신의 교리는 과학에 의해 더 이상 실제적인 의미에서 결코 언급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언제나 과학적 지식이 아직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던 영역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의 대표자들 입장에서 그러한 행동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치명적이라고 확신합니다. 밝은 빛 속에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교리는 필연적으로 인류에 대항 영향력을 잃게 되어 인간의 진보에 계산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들의 윤리적인 선의 추구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인격적인 신의 교리, 즉 과거에 사제의 손에 막대한 권력을 쥐어 주었던 공포와 희망의 근원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 속에서 그들은 인간성 자체로부터 선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배양할 수 있는 힘을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더 어렵지만 비교할 수 없이 더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읽은 그것은 저의 종교적 확신에 대한 거짓말, 즉 조직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거짓말입니다. 저는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으며 그것을 부정한 적이 없고 오히려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 안에 어떤 종교적인 젓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의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한의 우주의 구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일 것입니다.
위 글은 아인슈타인이 영어로 쓴 1954년 3월 24일 날짜의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헬렌 듀카스(역주: 아인슈타인의 개인 비서)와 바네쉬 호프만이 편집하고 프린스턴 대학 출판사가 간행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인간적인 면"에 포함되어 있으며 같은 책에서:
나는 인간의 부도덕성을 믿지 않으며, 윤리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아무런 초인적인 권위 없이 인간의 독점적인 관심사라고 여깁니다.
아인슈타인의 종교에 대한 더 많은 언급은 웹의 <URL:http://www.stcloud.msus.edu/~lesikar/ESR.html>에 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기독교를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