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게임 회사를 운영중입니다.
제작년에 다니던 중국계 회사에서 단체로 뒷통수를 맞아 개발팀이 단체로 정리될 위기에 놓여있어서
책임감과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모두 데리고 나와서 3월에 창업을 했어요.
창업하자마자 하와이에서 열린 게임 행사에서 Top 10에 선정되기도 하고..
한국의 모 투자 행사에서 Top 5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기술인증 등급을 높이 받아 신용보증으로 대출도 크게 받았구요.
신용보험으로 받은 돈이나 투자 행사에서 받은 돈은 급여 이외에 사용할 수가 없어서
제 급여를 떼어 크고 작은 복지 지원도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동료들은 회사 돈에서 복지비가 나간줄 알겠지만,
우리 돈이 아니니 그런 것도 맘대로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저희를 좋게 봐준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대형 퍼블리셔가 3군데나 있어서
그 분들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고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2015년 11월.
창업한지 9개월 째에 큰 고비에 직면했습니다.
틀림없이 저의 판단 미스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 퍼블리셔와 일을 진행하다보니,
계속되는 추가/ 수정 요청이 있었고.. 당연하지만 퍼블리셔마다 그 요청이 달랐어요.
모두 제가 미안할 정도로 자발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세군데 모두 11월에 퍼블리싱 계약은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미 게임은 만신창이가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에요. 퍼블리셔들이 원하는건 BM이니까요.
BM을 위한 시스템이 들어가고 그걸 부각시키고.. 이러다보면 게임의 코어는 사라지게 마련이죠.
손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저희 판단에 이걸 전부 살리려고 수정하느니,
대부분의 요소들은 빼버리고 심플하게 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회사에 돈은 떨어져가고, 제대로 마무리를 하려면 1년은 더 걸릴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제대로 마무리를 해서 액션RPG를 출시한다?
요즘처럼 대기업들이 수십억씩 마케팅하는 시장에서 많이 봐왔거든요..
괜찮은 게임을 출시하고도 마케팅비가 없어서 없어지는 회사들을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아예 장르를 싹 바꿔서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목표 기간은 6주.
그리고 그 6주 동안.. 다른 작업을 병행했어요.
투자자들을 만나봐도 아무것도 없는 회사에 투자할 회사는 없었지요.
그래서 1월 말에 게임 하나, 2월 초에 게임 하나를 출시하고
2월 중순에 저희의 1년의 개발과 6주간의 삭제가 담긴 세번째 프로젝트를 출시했어요.
2주에 하나씩 개발을 완료하려고 정말 빠르게 다들 힘들게 달렸지요.
하지만 여기까지 였습니다.
저희에게 남은 것은 2개월간의 급여 연체와 3개월간의 보험료 미납.
그리고 캐피탈과 카드빚 5000만원, 압류 통지서 한장 이었습니다.
지금은 압류를 막는데 온 신경이 다 쏠려있네요.
첫 급여가 밀렸을때, 크게 감동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투자 진행중이었고, 투자사 측에서 급여 연체가 있으면 심사에 안좋은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흔쾌히 개인 돈을 빌려서 저에게 주셔서 그 돈으로 급여를 처리했어요.
게다가 그 뒤에 받으신 급여를 다시 되돌려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급여가 밀릴때마다 동료들을 불러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저러하고 내년 중순까지도 급여가 밀릴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퇴사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퇴사를 권유하는 내 모습이
'그냥 내가 월급 안주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상황 설명만 주기적으로 해주면서 스스로 판단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는 제가 스트레스로 인해서인지 몸이 너무 안좋아서 못나왔는데,
그 사이에 동료들이 나와서 제가 없는 데도 일본 출시를 진행해주셨더라구요.
너무 감사하고 미안한데, 해줄 수 있는게 없네요.
게임 하나가 출시될 때, 지인들을 통해서 아무리 홍보해봐도 다운로드는 200~500 미만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R모웹에 글 하나 올리니 1000은 넘어가더라구요.
그런데 이 수준으로는 수익은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미비해요.
야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훨씬x100 나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실은 오유에 게임이 나올때마다 홍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아시잖아요. 요즘 게임 홍보 쪽에 대해서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
예전부터 활동을 많이 해오던 오유인들에 대해서는 그마나 괜찮은 것 같은데..
저는 가입도 고작 2년 전이고 대부분 비로그인으로 보다가 추천하거나 댓글 달때에만 로그인했었거든요.
진작 오유뿐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를 자주 활동할걸 그랬다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러더라구요.
혼자서 살 방법은 많습니다.
예전부터 팀 인수 이야기도 많이 나왔었고, 위험한 거래도 많이 제안이 왔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급여도 못받으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동료들을 팔아넘기고 싶진 않습니다.
동료들은 이번달부터 전원 휴직처리를 했습니다.
압류가 들어와서 뭐든 줄여야 하는데, 일단 보험료가 제일 크더라구요.
매출도 없는 회사에서 매달 나가는 돈이 세금이랑 보험료, 기타 잡비 합해서 1000만원이나 되네요.
살 길은 여전히 보입니다만.. 멀리 있는 것이 유일한 단점입니다.
중소기업청에 여러가지 자금 융자 신청도 해 두었고..
친한 지인 회사에서 4월이면 그럭저럭 한두달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일거리도 주실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사이에 저희 프로젝트는 한달에 2~3개씩.. 계속 진행해야지요.
빠르게 개발을 해야하다보니 다른 회사들처럼 뭔가 규모있는 프로젝트를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내면서 활로를 찾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혼자서 빠져나가기보다는 그들이 저를 믿어주는 한은 끝까지 동료들을 책임지고 함께 하고 싶네요.
요즘 끊임없이 하는 고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더 있지 않을까?"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일까?"인 것 같아요.
쓰다보니 길이 엄청 길어졌네요.
너무 넋두리 같은 글이기에 여기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글 쓰면서 그나마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PS..
익명으로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본 아이디로 작성하고 본삭금 걸어둡니다.
많은 사람이 비난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글을 다시 보면서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