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 12년차,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6년차 여자사람입니다.
지난 5월 5일, 저희는 가족으로 맞이할 고양이를 찾아 동물보호단체의 분양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한눈에 반한 3살짜리 여자고양이가 이 글의 주인공인 카탈로그(=Catalog=CATalog...)입니다.
한국어 발음으로는 카탈로그이지만, 네이티브 어메리칸 잉글리쉬 발음으로 "캐를록"이라고 불립니다.
첫 날은 발냄새 나는 남편의 신발장에서 나올 생각을 않았습니다.
신발장 근처에 둔 음식과 물을 먹는 걸 보니 융통성없이 꽉막힌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다 싶긴 했구요.
둘째날도 저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길래 친해지는데 시간 좀 걸리려나했는데,
손만 대면 격렬한 그릉그릉 소리와 함께 폭풍 부비부비. 무릎에 앉혀놓고 쓰다듬어주면 힘찬 꾹꾹이가 이어집니다.
사는 동네가 아주 북쪽이라 5월에도 전기장판을 켜두었는데 퍽 맘에 들었는지, 저희 침대까지 점령했습니다.
낮이면 살짝 열어둔 창가에서 바깥구경을 하고, 밤이면 남편과 저를 오가며 쓰담쓰담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고양이와 함께하는 평화로운 생활이 시작되는가부다 생각하던 그 때 사건은 발생했습니다.
카탈로그가 우리집에 온지 5일째인 5월 9일.
이불을 널고 온 집안을 청소하느라 현관을 열어놓은 걸 깜빡했고, 저녁쯤 카탈로그가 없어진 걸 알게되었습니다.
다행히 뒷집 주차장에 있던 카탈로그를 발견했지만, 카탈로그는 동네 이웃집들 마당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진 밤까지 카탈로그와 저희의 추격전은 계속되었고,
마지막에는 저희집 마당에 있는 작은 창고 밑으로 숨어들어가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쫓아다닌 게 오히려 카탈로그의 경계심과 흥분을 자극해서 더 숨어버린 것 같았어요.
다음날 새벽까지 창고밑에 숨어있던 카탈로그는, 아침이 되어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일단 집근처에 사는 이웃들을 찾아가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보게되면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카탈로그를 분양받았던 동물보호단체에도 연락을 했어요.
정식입양이 끝난 게 아니라 트라이얼 중이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물어보려구요.
동물보호단체 대표님이 직접 포획상자를 들고 와주셔서 놓아주시고, 주변도 함께 찾아봐주셨지만 카탈로그는 눈에 띄지않았습니다.
혹시나하는 기대를 갖고 밤새 집주변에 놓아둔 2대의 포획상자에는 동네 고양이들만 잡혀있었습니다.
이틀후, 단독주택 60채와 밭들이 이어진 동네를 걸어다니며 "고양이를 찾습니다"전단지를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퇴직후 농사지으며 지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사시는 동네라,
텃밭에 계신 분들께는 직접 종이를 보여드리며 이런 고양이 보이면 꼭 연락주십사 부탁도 드렸구요.
하지만 누구하나 보셨다는 분도 없고,
저역시 틈만나면 돌아다녔지만 온동네 고양이들 다 나와있는데 우리 카탈로그는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 동네 사는 고양이들이랑은 다 인사하고 다닌 것 같네요.
3일동안 코빼기 한 번 보지를 못하니, 마음 한 편으로는 이제 카탈로그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카탈로그가 집을 나간지 4일째인 5월 13일 아침.
밭 하나 건너편에 사시는 오오타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집 창고에 니네집 고양이가 있어!"
오타씨는 제 전단지를 보고 일부러 전단지속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두셨다고 하십니다.
덕분에 창고에서 고양이를 발견하자마자 우리집 고양이란 걸 확인하실 수 있었구요.
각종 농기구가 쌓여있는 창고 안에서, 저희가 다가가자 카탈로그는 손도 잘 닿지 않는 구석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미숙한 저희가 잡으려다 고양이가 다칠수도 있겠다 싶어서 동물보호단체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와주신 대표님은 100엔샵의 세탁망과 시트 한 장을 꺼내셨고
약간의 추격전 끝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탈로그를 무사히 포획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당신들처럼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맡길 수 없다"고 카탈로그를 데려가버리시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저희를 탓하거나 비난하시지 않고, 앞으로 고양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주의해야할 점과 활용가능한 장치 종류를 알려주셨어요.
집으로 돌아온 카탈로그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안정되었습니다.
그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는지 물 한대접과 머슴밥처럼 고봉으로 쌓은 먹이를 엄청난 기세로 흡입했구요.
먼지구덩이 속을 헤매고 다닌걸 생각하면 샴푸로 뽀득뽀득 씻기고 싶지만,
혹시나 스트레스 받을까봐 해충방지약 바른 후, 드라이샴푸 파우더와 폭풍브러싱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신기한 게, 저희가 카탈로그를 처음으로 입양한 날,
동물보호단체에서 "혹시모르니 고양이 목줄은 꼭 착용시켜야한다"고 하셔서 주문해둔 목줄이 있었어요.
제 이름과 전화번호, '이 고양이를 외부에서 보셨다면 전화주세요'라고 쓰여있는 목줄인데
카탈로그가 우리집으로 돌아온 날 목줄이 도착했습니다.
몸단장 후, 새 목줄까지 끼우니 이제 진짜 우리 식구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집을 나가있는동안 사람 손길이 그리웠던지 한 번 만지기 시작하면 끝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착 달라붙어 격한 그릉그릉을 이어갑니다.
남편이 슬슬 지쳐하는 게 사진에서도 느껴집니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니 카탈로그가 우리 침대 위에 앉아있습니다.
남편 말로는 어젯밤 내내 침대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집을 나간건 너였는데, 왜 우리가 나갈까봐 걱정하는거 같니...
토요일 오후 1시 지금.
카탈로그는 낮잠자는 남편 옆에서 열심히 그룽밍 중입니다.
남편 깨고 나면 같이 오오타씨와 동네분들께 인사드리러 갈 예정입니다.
근처에 이웃분들이 걱정도 많이 해주셨고, 다들 자기집 창고도 확인해 주시고, 일부러 다른 집 분들한테도 가서 얘기도 해주셨거든요.
우리 카탈로그가 숨어있던 창고 주인인 오타씨께는 고양이 구출기념 수건과 과자를 준비했습니다.
이웃분들께는 고양이모양 쿠키를 준비했구요.
그리고 어리버리한 저희를 믿고 다시 고양이를 맡겨주신 동물보호단체에는 매년 기부금을 내는 회원으로 가입하고,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필요물품'을 보낼 예정입니다.
카탈로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 이야기도 우리에겐 평생 기억할 추억이 될 것이고,
덕분에 주변 분들의 따뜻함도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런 일은 두번 다시 겪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절대 안겪으셨으면 좋겠구요!!
집나갔다 돌아온 우리 카탈로그, 앞으로 동게에 종종 인사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