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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574419
    작성자 : 익명aWhvc
    추천 : 2
    조회수 : 699
    IP : aWhvc (변조아이피)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6/01/06 22:29:51
    http://todayhumor.com/?gomin_1574419 모바일
    40대 말 새벽 (4) - 취업 분투기
    한 달 반만에 다시 이 제목으로 글을 쓰다니 수많은 40대와 50대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별로 읽으시지는 않겠으나, 혹 읽으시다 보면 뭐 이런 병신 아줌마가...하는 생각도 들 테니 
    미리 주의하시라고 말씀을 올린다.


    난 정말 틀린 인간일까,,,,이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동물병원...내가 동물과 교감하는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는 확신이 들게 해준 이 직장.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산전수전 겪어가며 화성에서 490일이 넘게 살아남은 것처럼 나도 내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남으리라...
    결심은 했는데 Martian의 마크 와트니Mark Watney는 Hab을 날려먹는 짓밖에 안 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마크 와트니의 소설을 띄엄띄엄 읽다가 드디어 그가 스키아퍼랠리에 당도한 494일까지 아까 버스 안에서 읽었다.)

    꼰대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자기만 아는 고집쟁이 늙은이' 정도로 이해를 하는 차에, 내가 이 병원에서 내가 꼰대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아 물론 동물병원에서는 잘렸다, 이미.


    1. 동물병원 취직생활

    병원은 은근히 심히 불결했고 -코를 킁킁거리면 갑자기 어디선가 톡 쏘는 냄새가 어디서나 진동했다.
    출근한 첫날, 미용사, 간호사 두 명은 나더러 "이 병원은 원장이 텃으니 다른 델 알아보세요."라고 화려한 서막을 열었다.
    병원장이 개또라이고 개새끼, 라고 했다. 첫날,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안 본 이상 그걸 곧이 곧대로 믿기는 곤란했다.

    그렇게 미용사와 선임 간호사는 3일, 2주일만에 다 나가버리고 나는 혼자 남았다.
    철저히 혼자 남아 내가 한 일은...
    이때다, 싶어 지독한 동물원 냄새가 나는 병원의 구석구석을 탈취세제를 동원하여 손걸레로 일일이 닦는 작업이었다.
    병원장은 이런 나를 좋아했다. 병원 개원 후-개원이 2013년- 이렇게 깨끗했던 적이 없다고.
    내가 간호조무학원에서 배운 건 위생규칙이었다.
    많은 간호조무사, 간호사들이 응당 행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매우 매력적인 위생규칙...은 내 성품과 적성에 맞는 규정이었다.
    ...마는 사실 나는 불결한 냄새에 코가 민감해서 대소변 냄새, 담배 냄새, 하수구 냄새에 못견뎌 하긴 했다.
    이 병원은 내가 들어옴으로 해서 빛을 본 거였다. 오는 고객들마다 병원 냄새가 없다고 도리어 좋은 향기가 난다며 칭찬했다.
    (청소가 끝나면 나는 향수를 퍽퍽 뿌려서 탈취세제의 특유비릿한 냄새를 잡았다.)

    착한 강아지 고양이들은 정말로 황홀할 만큼 사랑스럽고 어여뻤다. 
    그들은 예의발랐고 병원 구석구석에 깔아놓은 헝겊패드에만 배변을 했으며 
    다른 짐승들과 싸우거나 사람들을 위협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행동만 했다.
    내 기억에 남은 개는 5명인데,
    그 중 태어난지 3년된 닥스훈트 여자개가 하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서른살이다.
    엿새간 호텔투숙을 하게 된 개.
    개 보호자는 이 개의 체내 기생충 치료를 마무리 하지않아
    비듬을 토해 기생충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의심되는 개였다.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정경부인이라는 호칭을 받아도 될 만한 개였다. 
    고객들 앞에서 멋모르고 이 품위있는 개를 안았다가 몸 아랫쪽에 비듬이 가득한 이 개를 보며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정성스레 이 개를 목욕시켰고 가는 날이 되어서야 비듬이
    얼굴과 발에 약간 올라왔다. 테이프로 그 비듬들을 살살 조심스레 떼어주었던 그 정경부인 개.
    발바닥을 전동클리퍼로 밀고 발톱을 깍으려 하자 애원하듯 울며 가끔 컹컹, 거리며 나를 만류하던 그녀.
    "두리야, 너 발톱 너무 길어. 이러면 걷기도 힘들어. 깍자,응?"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하는수없이 간식이 개 몸에 절대 나쁘다는 걸 철저 교육받았지만,
    간식을 투하, 그녀가 왁왁 먹는 사이 나는 발톱을 깍았다.
    분명 발톱 깍다가 피를 많이 흘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간식 한 봉지를 거의 다 먹고...
    나는 이 개를 비록 엿새간이지만 사랑했고 그 개도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으리라.

    그리고 미니어처 핀셔 종인 1년된 남자 개. 사람으로 치면 13살이다. 사람만 보면 컹컹 짖어 난감했는데
    그것말고는 배변도 정해진 곳에서만 하고 정말 애교가 많은 조용한 개였다.
    닥스훈트, 핀셔 둘 다 검은 색의 개들이다. 
    뭐 검은 사제들도 아니고....
    이 둘이 붙어다니는 걸 보며 나는 검은 사제들이라고 불러줬다, 실은.

    즐거운 많은 기억들이 있으나 병원장과 나는 월급이 너무 부실하니 최저임금만이라도 보장해 달라, 하는 부분에서
    병원장의 흔쾌한 동의를 얻고 승승장구했던 중간의 즐거운 기억도 있고, 나가버린 미용사, 선임간호사의 말처럼
    병원장의, 매사에 좀 솔직하지 않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면들도 많이 목격했다. 
    12월31일 병원장은 말했다. 불만 있으면 말하라고, 자신은 말 안해주면 모른다고.
    그래서 다음날 1월1일 휴일 근무를 하면서 텔레그램으로 환견의 고객들이 비닐에 담긴 대변을 주고 가는 게 너무 힘들다,
    바깥 화장실이 병원 오는 길목에 있으니 버리고 오라고 하자, 라고 제안했다.  
    병원장은 자신은 개원 후 2년 반 동안 숱하게 대변 비닐봉다리를 받아서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웃긴다,며 말했다.

    그리고 난 잘렸다.
    물론 내 어조가 많이 지나쳤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맛탱이가 간 병원장이, 개 대변 비닐봉다리에 들고 온 거 싫다며 투덜거리는 일 잘 하는 직원 자르겠나.
    내가 좀 어조를 높여서 텔렘으로 채팅을 한 건, 그건 잘 못 한 건 맞다.
    여기서 나는 내가 꼰대가 아닐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참 안 바뀌는 건가 보다.
    난 좀 본디 이런 성품의 인간이었구나.

    내 나이에 맞게, 과거 직업에 맞게, 학력에 맞게
    품위 있는 직장을 원했지만 월급과 업무는 자존심을 유지해주기에 약간 미달이긴 했다.
    내가 병원 생활 50일간 하루종일 한 건 거의 개 똥 오줌 처리였으니까. 
    그리고 동물병원들의 월급이 월~토 근무에 공휴일까지 일하면서 120만원이거나 이보다 좀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수의사들은 왜 그런 최악의 월급을 주는 걸까. 편의점 알바들이 내 동료며 동지였다.



    2. 새 직장-품위와 자존심을 살려줄 직장이 있을까

    이제 잘린 마당에 나는 다시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고 있다.
    어제는 스왈롭스키 보석가게 세일즈 컨설턴트, 쉽게 말해 판매직원에 응시했다.
    이력서 말고도 애니메이숑 만화로 된 -만화맞나?- 시험문제에 응시를 해야했다. 장장 25분...
    미국에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 테스트는 한국성우들에 의해 재연되었다.
    물론 서류심사에서 탈락될 것으로 강하게 확신한다. 
    만화가 영어로 된 거 였다 해도 질문이 영어로 된 거 였다 해도
    난 잘 풀었겠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올해 마흔아홉인데.
    나이가 모든 직종을 좌우하는 전세계적인 전통에서 
    나는 
    폐물인 것이다.

    이마트에서 동물관리점까지 사업확장을 했다면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한국 회사 답게 가족관계, 초등학교는 어디 나왔나, 까지 물어댔다. 
    아니, 집이 전세냐, 자기 집이냐, 까지 묻는 질문에 욕을 하면서 기입했다. 이것들이 진짜...
    론 학교는 고등학교부터만 적었다. 
    거기다가 한국 웹사이트의 위엄에 걸맞게 공인인증서, 핸드폰인증까지 요구했다. 아, 미쳐.

    오늘 본죽 오후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면접을 갔다.
    동물병원들은 올해, 작년 최저 시급 5580원도 안 주는 곳이 100%인데 본죽은 6030원을 준다해서...
    이력서를 내는데 아름다운 얼굴의 성형을 여기저기 한 50대 후반 여자 사장님이 참 친절히도 맞아주셨다.
    4대보험은 안 해준다 한다...
    사위가 공고글을 올린 거라, 4대보험은 잘 모르겠고 복잡해보인다며 난감해 한다.
    이력서를 남겨놓고 사위되는 선생님과 잘 상의해보시라, 하고 나왔다.
    만약 일하게 되도 저 착해보이는 사장에게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니 주휴수당 달라고 하면 얼굴이 어두워질거야...ㅋㅋ


    3. 회고

    난 꼰대인 걸까.
    병원에서 개똥 주고 가는 고객에 대해 화가 나면 안 되는 거였어.
    그 개똥이 데스크 앞 쓰레기통에서 펄펄 냄새를 풍겨도
    원인도 모른 채 어디서 이렇게 냄새가, 톡 쏘는 암모니아성 냄새가 나는 거야?
    고민했었지...
    그리고 이곳저곳 쓰레기통을 치우면서 대변봉지들을 꺼내 일일이 바보같이
    분리수거따위 하지 않았어야 했어.
    그냥 아무생각없이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놨으면 기분도 덜 나빴을 텐데
    나는 뭐하자고 분리수거를 한답시고 그 대변을 비닐봉지에서 뜯어내서...봉지를
    변기에서 씻고..그런 정신나간 짓을 한 걸까...그러니 화가 난 거 아닌가.
    난 참 어리석다.

    나 요 며칠째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내 착한 성품은 매사에 철저하고 열심인데,
    내 욱한 성품은 기분 나빠지면 그걸 너무 과격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단점이 있어, 미안해, 내 착한 나자신아.
    네가 아무리 잘 해도 내 욱한 성품때문에 품위와 자존감이 떨어지는 직종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구나, 미안하다.

    잘 됐다. 이 참에 내 안 좋은 '꼰대' 성품도 반성하고 고치고 더 좋은 길로...나아갈 지는 미지수지만...노력하자.
    하고팠던 많은 직업들이 내 20대, 30대, 40대 초중반 시절...그 일을 위해 노력했던 기억들이, 추억들이
    오늘도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나보다 나은 것들을 
    사랑해야지.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ㅋ
    윤 동주 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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