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시장엔 2017년 대란설이 퍼지고 있다. 근거는 공급 과잉이다. 올 1~9월 전국에서 건축 인허가를 받은 주택은 54만14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7% 늘었다. 지난해 전체 인허가 실적(51만5251가구)을 이미 넘어섰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전체로 65만~70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허가는 곧 분양으로 이어진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분양 물량은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대치인 48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9월까지 32만 가구가 공급됐고, 4분기에도 16만 가구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수도권에만 지난해보다 두 배 늘어난 27만 가구가 집중된다. 아파트는 분양 후 대략 2년 후면 입주가 시작된다. 올해 분양된 아파트는 2017년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7년 입주 물량은 2006년 이후 최대치인 32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입주 물량이 가장 적었던 2012년 18만 가구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물량이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투기 광풍이 불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종합부동산세와 함께 분양가상한제까지 동원한 8·31 대책을 내놨다. 그러자 건설회사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밀어내기 분양에 나섰다. 한데 2008년 입주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달이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쳤다. 아파트 값이 분양가 아래로 곤두박질하자 입주를 포기하는 당첨자가 속출했다. 다급해진 건설사가 아파트 값을 깎아주자 입주 포기자는 더 늘었다. 2006년 1만3654가구였던 준공 후 미분양주택이 2009년엔 5만가구로 불어났다. 그 여파로 실탄이 부족한 지방 건설사가 무더기로 쓰러졌다. 후유증은 2013년까지 이어졌다.
경제 여건도 2008년 못지 않게 우울하다. 다음달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갈수록 농후해지고 있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으로선 금리를 따라 올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금리 상승은 1000조가 넘은 가계 빚 폭탄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집주인이 너도나도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 집값은 떨어진다. 이로 인해 대출금보다 싼 깡통주택이 속출하면 은행이 대출 회수에 나선다. 악순환의 나선효과가 점화되는 순간 부동산시장은 패닉에 빠져든다. 2008년 미국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그랬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구나 가구증가율도 둔화되면 됐지 높아질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아직은 공급 과잉이라고 단정하긴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올해 공급 물량이 늘긴 했지만 2008년 이후 4~5년 동안 공급이 확 줄었던 걸 감안하면 2008년의 악몽이 되풀이될 정도의 과잉이라고까지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지난해 정부가 9·1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2017년까지는 신도시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이후엔 위례나 동탄 같은 신도시가 새로 나오지 않을 거란 얘기다. 대신 앞으로도 인기가 있을 도심 재건축·재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도심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신도시에 비하면 공급 물량에 한계가 있다. 단지도 분산돼있어 한꺼번에 물량이 몰리지도 않는다. 지난 7월22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대책도 물량 공급에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
내년부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까다로워진다. 지금처럼 상당기간 이자만 내는 거치식 대신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하는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이 늘어난다. 그만큼 매달 내야 할 원리금 부담이 늘어나 은행 대출만 믿고 분양에 나서기가 어려워진다. 올해 분양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고는 있지만 내년엔 공급이 올해만큼 늘지는 못할 거란 뜻이다.
내년에 공급 물량이 주춤해진다면 2017년 부동산 대란설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확률이 커진다. 다만 올해 분양이 집중됐던 지역은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졌던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최근 주춤해진 걸 보면 그렇다. 신도시처럼 입주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곳 주변은 역 전세대란도 우려된다. 그러나 만약 고삐 풀린 분양시장이 내년에도 과열된다면 위험하다. 주택 건설시장에서 철수했던 건설사나 비건설사까지 뒤늦게 아파트 분양에 뛰어들고 있는 건 불길한 징조다. 당장 눈앞의 분양대금에 눈이 멀어 밀어내기 분양에 나섰다간 2~3년 후 감당 못할 파국을 맞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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