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상에서 우리 아버지가 가장 구두쇠이신 것 같다. 삶을 누릴 줄 모르는, 그런 사람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가 얼마나 구두쇠이신지, 예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5년 전, 어머니가 가스비를 연체하셔서 과태료가 100원이 붙었다. 그 때문에 그 날 밤 하루종일 아버지와 싸우셨다고 한다. 그 때 아버지가 엄청난 말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를 폭발하게 만드셨다. 무슨 말인고 하니,'땅파봐라. 땅파면 100원이 나오나 안나오나' 이 말이였다...ㅡㅡ;
온가족이 회식을 할 때면, 나와 언니는 많이 먹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잘 드시지 않는다. 특히 고기집을 잘 가는데, 1인분 추가를 하려고하면 아버지께선 '너네 먹어라. 난 안먹을테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나서 집에 가서 밥해달라고 하신다.으..
병이 나도 병원에 가지 않으신다. 뭐, 워낙 건강하셔서 병이 잘 나지 않지만, 감기가 걸릴 때면 기침을 연발하시면서도 병원에 가지않고, 약 하나 안지어잡수시고, 휴지로 코막고 주무신다. 신기하게도 이튿날이면 감쪽같이 낫는다. 눈이 아퍼도 안티푸라민이 만병통치약이라면서, 10분 따끔거리는 것만 참으면 낫는다면서, 병원에 가시지 않는다.
카드대금 청구서가 날라오면 쭉 훑어보면서 누가 썼는지, 왜 썼는지, 꼭 필요했는지 잔소리를 하신다. 그러면서 꼭 이런 말을 하신다. '내가 장 카지만, 꼭 필요한 거 살 땐 뭐라 하나. 꼭 필요한 것만 사.' 라면서... 아버지, 꼭 필요한 거 샀기 때문에 그렇다고요...ㅡㅡ;;
아버지는 물건을 사시면 다 떨어질 때까지 다른 걸 사지 않으신다. 현대판 무소유의 결정판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 가전제품들은 거의 몇 십년된 제품들이다. 텔레비젼 사자고 조르는 우리에게, '아직 쓸만하니까 정 사고싶으면 너네 돈으로 사라'라고 말씀하신다. 고칠 수 있다면, 계속 고쳐서 쓰신다. 이런 것들 때문에 어머니와 많이 다툼하셨는데도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철학을 쉽게 거스를 수가 없다. 왜냐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물질의 풍요로움보다는 무조건 절약하는 법을 가르치신 아버지... 미련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아버지를 쉽게 미워할 수가 없다. 어쩔 땐 이게 과연 절약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를 지나친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다 나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삶의 모델이다.
가난했던 대학시절, 장학금을 타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까지 겸해야했던 그 시절이 지금의 아버지를 만들었다. 절약해야된다는 생각때문에 절대로 충동구매를 하신 적이 없고, 물건 하나도 소중하게 다루셨다. 지금도 아버지 차 안엔 먼지 한 톨 없고, 아버지 양복들은 몇 십년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다. 집에 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양복 먼저 걸어놓고, 양말을 빨고 와이셔츠를 다려놓으신다. 결벽증 수준이기도 하지만, 그런 정신력이 부럽다. 어머니와 돈 때문에 무수히 싸우시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의 원칙을 고집하고자 입사하시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셨다. 그 결과 우리 집은 아버지가 입사한 이후 2년 만에 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뛰어난 살림꾼인 아버지는 직원들에겐 무섭고 엄격한 사람으로 통하지만, 인기투표를 하면 늘 1위를 차지하시는 훌륭한 분이시다.
이런 아버지께선 나와 언니를 쉽게 이해하시지 못한다. 왜 철따라 많은 옷이 필요하며, 노는 것에 왜 그리 많은 돈을 써야하는지.. 우리 자매의 소비패턴을 절대 이해하시지 못한다. 그래서 꾸중도 많이 들었다. 어렸을 땐, 500원짜리 지우개를 샀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아버지께 어쩌다 한번씩은 꼭 사고싶은 것들이 생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절약정신이 약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사고싶은 데도, '집에 있다'라는 생각에 사지 않음으로써 만족을 얻으셨다. 주식에도, 부동산에도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위험이 무서워서) 돈을 불릴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착실하고 미련하게 돈을 모으는 사람이신 건 틀림없다. 아버지의 철학인, '돈은 많이 번다고 해서 모아지는게 아닌 적게 씀으로서 모아지는 것이다' 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기반 아래서 맘 놓고 돈을 펑펑 쓰진 못했지만(이런 가정이 몇 안되겠지만), 그래도 부족한 거 없이 자라서 감사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팔바지가 유행이였을 때 절대 사주시지 않으셨던 점, 모자라는 용돈에 투정낼 때마다 화를 내셨던 점, 남들 다 준비해오는 준비물을 집에서 손수 만들어주셧던 점... 그때는 원망스럽고 창피하기만 했던 날들이였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길위에 버려진 장애인들을 위해 정기적인 후원을 하시며, 사과나무에 적극적인 후원자이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잘사는 집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절약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집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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