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려주세요...흑...”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한 여자가 내게 말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인간의 당연한 본성
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듯 했다. 애초에 난 그녀의 피를 취할 생각이 없었다. 난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인간은 불멸을 원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유한한 생명 때문에 그들은 짧은 생애를 최대한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다른 이의 행복조차 파괴할 정도로 구차한 발악이었다.
난 그런 그들에게 말한다.
“한번 영원히 살아볼텐가?”
죽지 않는다는 것.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갉아먹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한다는 것. 순간의 쾌락일 뿐이다.
모든 것은 적당히 취해야한다. 돈을 너무 많이 가진다거나, 여자를 많이 취한다거나 이런 세속적 쾌락들을 끊임없이 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 노력할 때. 그리고 그 쾌락을 취할 때. 이 순간이 지난 뒤 남는 것은 허무뿐이다.
짧은 인생동안 즐기는 잠깐의 쾌락. 2%부족한 즐거움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다. 뱀파이어는 죽을 수도 없다. 뱀파이어가 죽는다면 그 후는 무(無)일 뿐이다. 인간처럼 영혼이 남지 않는다. 뱀파이어는 영혼 그 자체니까...
모든 뱀파이어는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저주에 걸린다. 태양과 마주한 뱀파이어는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버리니까. 아침에 일어나 느끼는 따사로운 햇살을 영원히 느낄 수 없게된다. 아까 마주친 그녀는 그런 즐거움을 느끼겠지?
따스한 햇살을 느끼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고.... 나로선 불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행복은 모두 경험했다. 질려버렸다.
뱀파이어들은 허무를 채우기 위해 흡혈을 한다. 타는듯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피를 빠는 것은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안 된 신참들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갈증은 약해져간다.
피가 이빨을 통해 혀에 닿은 뒤 목으로 넘어갈 때의 쾌감. 이 쾌락은 아무리 느껴도 질리지 않는다. 색다른 쾌감. 다른 쾌락들과는 뭔가 다른 쾌락.
이런 궁극의 쾌락마저도 질려버린 뱀파이어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죽어간다. 죽기 직전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뱀파이어... 흡혈귀라고도 하는 저주받은 종족.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 죽지않는 육체, 아름다운 외모...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런 뱀파이어의 장점만을 보고 추종자가 된다. 그리고 어리석은 신참 뱀파이어들은 이런 추종자들의 멍청한 요구를 작은 쾌락과 함께 맞바꾼다.
끝나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멍청한 뱀파이어들이 만들어낸 멍청한 뱀파이어들은 또 다른 추종자를 멍청한 뱀파이어로 만들고 그 멍청한 뱀파이어는 또 다른 멍청한 뱀파이어를 만들어내고...
뱀파이어가 된 후 느끼는 성취감도 일종의 쾌락이겠지? 헛된 즐거움일 뿐이다.
쾌락의 대가는 크다. 너무나도 크다. 어둠속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모든 것은 유한한 것일 때 빛나는 법이다. 무한하다면 그것의 가치는 쉽게 잊혀지고 만다.
인간은 인간일 때 아름다운 것이다. 뱀파이어를 동경하지 말라. 그들은 오히려 인간을 부러워하고 있으니까.
한때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던 마법사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때 뱀파이어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뱀파이어들이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종족의 소멸을 우려한 멍청한 뱀파이어 하나가 그 마법사를 죽여버렸다.
난 그때 갓 뱀파이어가 된 상태였다. 쾌락을 탐하기에 정신없었던 나는 마법사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얼마 뒤 난 뱀파이어의 허무함을 깨닫고 마법사를 죽인 그놈을 찾아가 재로 만들었다.
우연히 찾아온 구원의 손길, 기회, 희망... 날아가버렸다.
나는 한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정체를 알고도 나를 받아준 그녀를 사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었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축복받은 존재.
그녀는 시들어갔고 난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그녀에게 제안했다. 나와 같은 존재가 되자고...
내 제안을 거부하며 그녀가 말했다.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어요. 난 만족해요. 이 행복을 누리고 그것이 행복이라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죽었다. 날개가진 천사가 되어 날아갔다.
난 깨달았다. 결국 혼자가 된다는 것을. 난 그때 느낀 절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천년이 지나도 그녀의 목소리가 내 곁에 맴돈다.
햇살이 그리워졌다.
이 글을 쓴 뱀파이어는 지금 죽고 없다. 끝없는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최고의 행복을 맛보며 사라져갔다. 어떤가? 생각이 바뀌었는가? 다시 생각해보라. 아직도 불멸을 꿈꾸는가? 당신에게 충고한다. 현재에 만족하라.
출처
웃대 - 자아붕괴시험크리作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