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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의 겨울은 그야말로 눈과의 싸움입니다.
눈이 어찌나 빨리 쌓이는지 치우고 또 치워도 끝이 없습니다.
이른 아침 자기 집 앞 눈 치우기 바쁠 텐데 마을 사람들이 한 집 앞에 모였습니다.
서둘러 눈을 치우고선 후다닥 자릴 뜨는 데요.
이 집의 주인 때문이랍니다.
도움 받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집주인 대체 어떤 분일까요?
이 집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민분들의 말과 달리 포근하고 인자한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올래 아흔살인 "이인옥" 할머니십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때문에 마을에서 꼬부랑 할머니로 불리우는데요.
꼬부랑 할머니는 무슨 이유로 도움을 거부하는것일까요..
할머니를 찾은 제작진은 쫒겨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겨주십니다.
그리고 제작진에게 따뜻한 아랫목까지 내어주시네요.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척추에 문제가 생겨 허리가 굽긴 했지만
나무를 하고 간단한 소 일거릴 할 정도로 건강하시답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듯 눈이 좀 침침하지만
하지만 손전등 하나만 있으면 문제 없습니다. ^^
할머니는 뭐든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시지만
마을 사람들은 안심이 안된다고 합니다.
수시로 우렁각시가 되어 할머니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귀가 잘 안들리시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것도 잘 모르신다네요.
이곳 사람들에겐 "이인옥" 할머님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평생 모은 재산과 땅 5천평, 그리고 지금 살고 계신 집까지
전부를 마을에 기부를 하셨답니다.
그리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
수급비로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하루 한 번 배달되는 무료 도시락으로 세끼를 모두 해결 하십니다.
움켜 쥐었으면 더 편하게 생활 할 수 있었을 돈
나누지 않았다면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던 노년
할머니는 아깝지 않을까요?
아흔의 할머니는 보살핌이 당연히 필요해 보입니다. 아니 필요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으십니다.
평생 나누며 살던 것이 몸에 베어 있는듯한 할머니
어찌 이렇게 욕심이 없으실까요..
나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행하기는 너무나 어려울 일
그 고마움을 갚고자 마을 사람들은 우렁각시가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꽃단장을 하시고
장농 깊숙한곳에 감춰두었던 돈도 챙기시고
어르신의 필수! 털고무신!!
중요한 약속이 있으신것같네요.
마실이라도 가시는 줄 알았지만
할머니가 가신 곳은 눈 덮힌 산..
길도, 언덕도, 새하얀 눈으로 덮혀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데
할머니가 위험을 무릎쓰고 한 무덤을 찾았습니다.
손 끝에서 전해지는 애틋한 그리움. 바로 20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무덤
살아서 평생을 함께 한 할아버지와 죽어서도 함께하려
미리 묘자리도 봐두셨답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특별한 분이 셨삽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이광식". 생전 이 마을 사람들에게 회장님으로 불리셨던 분이랍니다.
물론 큰 기업을 운영하거나 해서 그런건 아닙니다.
이유는 할아버지가 이 마을에 커다란 유산을 남긴 인물이라 그렇다네요.
과거 이곳 함백마을은 탄광촌이었습니다.
가난한 광부들의 마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는 자신들의 재산으로
방제초등학교르 세웠습니다.
할아버지는 광부의 아들, 딸에게 가난을 이겨낼 지식을 채워주었고,
할머니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워주셨습니다.
그 시절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보시는 할머니의 눈빛이 깊은데요.
6.25때 북에서 내려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탄광촌 아이들은
친자식처럼 가슴으로 품었습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피난길 굶주림 때문에 숨진 할머니의 자식들..
그래서 할머닌 아이들의 가난을 외면 할 수 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건 이제 성인이 되어 떠나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할머니가 가슴으로 키워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광산이 문을 닫고 광부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헤어진 그 아이들도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20년 넘게 학교를 운영하면서 매일 150명의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였던 할머니
오로지 주기만 했던 나무같은 인생입니다.
탄광촌 아이들 중 제일 먼저 연락이 닿은 이는 방제초등학교 2회 졸업생
지금은 강릉에서 커다란 사업체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할머니 기억속에서 그는 아직도 축구를 좋아하던 개구쟁이입니다.
누가 가난을 추억하고 싶을까요
암담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이제는 추억이 된 그 안에 보석이 있어서 라는데요
학교가 있어서 꿈을 꿀 수 있었답니다.
고달프기만 했던 가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곳이 방제초등학교 였답니다.
그곳에선 가난도 배고픔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탄광촌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마술사보다도 더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탄광촌 아이들의 추억 속에 할머니가 있습니다.
사느라 소홀했고 바빠서 돌아보진 못했지만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알려야 계습니다.
할머니가 그리워 하던 그 아이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늘 받기를 거부하던 할머니도 이 선물만큼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줄 겁니다.
그런데 할머니르 다시 만난 이 곳은 길 위였습니다.
바쁜 숨 때문에 힘들어 보이는데도 아랑곳 안고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하십니다.
이렇게 추운데 어딜 가시는걸까요?
할머니는 그 마음을 지금껏 흑백사진으로만 달래왔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에 행복함이 번져 갑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들에게 많은 걸 나눠준 할머니..보답할 방법이 딱히 없습니다.
학교와 할머니 덕에 지난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할머니에게 가장 큰 선물 아닐까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소나무 껍질을 씹던 아이들
광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마저 물려받았던 이들에게
방제초등학교가 없엇다면 어땟을까요?
할머니가 재산을 움켜쥐고 나눔에 인색했다면 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가요?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할머니는 했고 그것은 아이들의 삶을 바꿨습니다.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들이 떠난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기만 하는 이인옥 할머니
곧 서울로 떠날 우리에게 꼭 전해줄 것이 있답니다.
할머니가 서둘러 꺼낸 것은 돈 2만원
아직 할머니의 그 마을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순 없습니다.
솔직히 가늠도 하기 어려운데요.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돈을 어떻게 주기만 할 수 있는지..
작은 체구의 꼬부랑 할머니에게 대체 얼마나 큰 마음이 숨어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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