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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510641
    작성자 : 익명amhwa
    추천 : 0
    조회수 : 912
    IP : amhwa (변조아이피)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5/09/01 09:13:04
    http://todayhumor.com/?gomin_1510641 모바일
    3년 연애 끝에 오늘 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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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어리다면 어리고 늙었다면 늙은 20대 중반 여징어에요.
    제겐 3년을 정말 아름답게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로맨스영화처럼 극적이고 낭만적인 연애는 아니었지만,
    이 남자와 함께일 때의 내 모습이 난 참 좋았어요.

    100일 단위로 기념일 챙기는 연애가 아니라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맛있는 것 해 먹으며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 나누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따라 나도 같이 컴퓨터 게임도 하고
    미술을 좋아하는 나를 따라 같이 미술관도 다니고..
    세상 물정에 어둡던 나와 모든 걸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만 바라보던 남자친구..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궁극적으로 서로 더 나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잔잔하고 소박한 연애였어요.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땐 서로 안마도 해주고,
    안마하다 등에 여드름도 짜 줄 정도로 막역한 친구이기도 했어요.
    사회성도 부족하고 부모님과의 사이도 안 좋은 제겐
    애인이자, 단짝 친구이자, 아빠였어요.

    이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전 참 불안정했어요.
    사귀기 시작한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
    극심한 우울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1주일 입원했었는데
    운전해서 왕복 1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매일같이 보러와줬어요

    내 치부를 드러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고
    내 상처를 보여주면 나보다 더 가슴아파하던
    마음이 참 따뜻한 남자였어요.
    생긴 건 근육 울그락불그락 한 것 까지 영락 없는 마동석이었지만..

    입 벌리고 코 골며 자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웠어요.
    나도 없는 속쌍커풀이 참 고왔어요.
    (물론 입 벌리고 자다 보니 자고 일어난 후 입냄새는 좀 심하더라구요..)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그리고 이 남자를 통해 나를 사랑하는 법도 배웠어요.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자존감이란 게 있어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와 연애하면서 나도 꽤나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최근 난 정말 행복해요.
    우울증 약도 더이상 먹지 않고,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식이장애도 없어요.
    괜찮은 직장에서 괜찮은 일을 하고 있구요,
    친구들도 만들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극적으로 좋아졌어요.
    다 이 남자 덕분이에요.

    하지만 헤어지게 된 건...
    누구의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구요,
    장거리 연애였기 때문도 아니구요,
    누가 바람 피워서도 아니구요,
    누가 상처될 만한 행동을 해서도 아니에요.

    어쩌다가 가족 계획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어요.
    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을 존경해요. 아이를 기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난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을게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 요즘엔 많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남자친구는 아이를 낳고 싶대요.
    남자친구의 사촌들 중 남자친구 혼자 남자에요.
    그래서 가문을 이어가야 한대요.

    사실 난 좀 구시대적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왜 남자만 가문을 이어갈 수 있죠?
    하지만 남자친구의 가치관.. 존중해줘야죠.
    그리고 남자친구도 자신이 원하는 것 때문에 내가 희생하게 하고 싶지 않대요.
    그래서 서로 놓아주기로 했어요.

    25살, 아직 어린데, 출산 문제 때문에 헤어지는 것 참 웃긴 것 같아요.
    어차피 결혼도 박사학위 따기 전까진 하지 않을 생각인데..
    하지만 분명한 끝이 존재하는 연애라면.. 3년 넘게 진지하게 만나지 말아야죠.
    이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가져 줄 여자를 만날 수 있도록 놓아줘야겠죠.
    이 남자가 꿈꿔 왔던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사실 우린 꽤나 진지하게 만나오고 있었거든요.
    서로의 부모님과 친척도 뵈었고, 양 부모님께서도 식사 몇 번 같이 하셨구요.

    이 남자를 정말 사랑하지만..
    난 내가 더 좋은가봐요.
    이 남자가 됐든, 누가 됐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헤어졌어요.

    잠이 오지 않고,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아요.
    며칠 전만 해도 같이 코미디 영화 보면서 웃었는데..
    서로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헤어졌어요.

    미안하기만 하네요... 
    이 남자가 원하는 모든 걸 줄 수 없어서.

    차라리 싸우고 나쁘게 헤어졌으면,
    차라리 나쁜 사람이라면,
    미워할 수 있다면..
    좀 덜 힘들 것 같은데..

    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남자친구에게 털어놨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어서..
    누구한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여기에 쓰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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