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같은 여행이였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다시 온전한 내 세상으로 돌아왔다.
좋아했던 음악들을 찾아 듣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영화들을 찾아 본다.
다시 나의 감성들을 되찾아 나를 만들어간다.
다시 나혼자 오롯이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내 세상에서는 당연했던 상식도
성격도 취미도 선호하는 것들도
어느 것 하나 맞지않는 사람이였다.
연애방식 역시 맞지않았다.
하지만 맞춰가고 싶은 사람이였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사랑에 시달리다가 끝나버릴 것 같았다.
끝이 절벽임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난 이미 절벽밑으로 떨어진 경험을 해본 사람인데.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손을 놔버리고 뒤돌아가버리고 싶었지만
좋아했기에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먼저 내 손을 놔버렸다.
예상했던 일이였고 마음을 먼저 다독여놔서
크게 상처받진 않았다.
아쉬운 정도.
지레 겁먹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내가 아쉬웠다.
이래서 후회없이 사랑해야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하나보다.
쿨한척 이별을 받아들이고 며칠은 꽤나 심란했다.
그와 관련된 온갖 생각들로 지배당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손은 자꾸만 울리지않는 핸드폰으로만 갔다.
혹시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핸드폰 벨소리만 나면 발신자를 확인하기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며칠뿐이였다.
내가 못해준 많은 것들을 다 떠올리고나니
내가 못받은 많은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정한 전화, 수다스러운 문자들,
좋아한다 보고싶다는 진심어린 이야기들,
내가 모르는 그의 과거 이야기,
하루 일상 이야기,
감정에 대한 심도깊은 이야기,
나와 하고싶은 일들,
그리고 가까운 미래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깊은 내면속 이야기까지 주고받고 싶었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 물들어가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정리해 말하자면
몇 번의 데이트와 몇 번의 섹스, 그게 다이다.
물론 아주 안한건 아니였다.
만나고 한 달 가량은 내게 불쑥 미래이야기도 꺼냈었고
좋아한다는 애정표현도 마구 했었고
나와 만나 행복하다는 말도 했던 사람이였다.
무게와 깊이, 진심이 좀 더 담겼으면 하는 나의 성에 차지 않았을뿐.
내가 그의 타이밍을 놓쳐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건 관계는 끝났다.
끝나기 한 달전부터는 내가 받고싶은걸 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에 늘 시달렸다.
애정어린 전화도 문자도 이야기도 없었다.
언젠가부턴 늘 상투적인 말만 늘어놨다.
나중에 무얼하자라는 나의 말에 동조해주는 그에게서 망설임도 느꼈다.
내게 처음 보여줬던 모습과는 달라진 그였기에
더 불안했다.
나에게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아놓고
왜 더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냐 묻는것만큼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말이 또 있을까.
끝나버린 관계에 있어 많은 의문점들이 남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혼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객관적일 수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낮과 밤마저 뒤죽박죽이 된 며칠을 보내고
그 사이 피지않았던 담배를 물고 베란다로 향했다.
때이른 한파네 어쩌네 떠드는 뉴스에
털달린 후드까지 챙겨입었건만
햇살은 참 강렬했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담배꽁초를 버리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왔다.
의문도 미련도, 그 어떠한 감정도 두지 말자.
인생에 남자경험 하나 더 늘렸다 생각하자.
좋은 사람 구별법을 배웠다 생각하자.
나는 다시 나의 삶을 잘 살아나가면 된다.
여행후유증에 잠시 시달렸다고 여기자.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나니
한층 더 강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무작정 떠난 무계획 여행에서
설레임 기쁨 슬픔 고난 뭐 별의 별것들을 다 경험하고 돌아왔음에도
다시는 가기싫어 진절머리나지않음에 다행이다 싶다.
언젠가 만나게될 다음 사람은
좀 더 나와 맞는 사람이길
좀 더 괜찮은 사람이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길
사랑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길
결코 쉽게 이루어질리 없는 그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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