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장 찍었을 사진 중에서 나는 셋째의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온전히 알 수 없는 고양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중하는 것뿐이다.
나와 다른 저 존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고, 탐구하고 깨닫고 또 여전히 알 수 없음을 신기해 한다.
이제까지 네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지금 나의 곁에는 그 중 두 마리의 고양이.
두 마리를 먼저 보낸 것도 내 뜻은 아니었다.
처음 두 돌도 채우지 못하고 보낸 고양이의 마지막을 돌볼 때는 참 두렵고 고독했다.
마치 세상에 그 녀석과 나만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길기를 바랐다.
오늘까지 인연이 이어지는 고마운 첫째도 그때엔 둘째와 나의 원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아마 그런 방식이 고양이들끼리의 이별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꿈에 둘째가 나와 회색 고양이를 소개해주며 이름을 일러주었다.
꿈을 꾸고도 수 개월. 셋째의 이름은 꿈대로 지었다.
셋째는 두 돌을 넘기고 세 돌을 넘겼다. 그러나 네 살이 되지는 못했다.
이번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에 눈 앞에서 그냥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셋째의 죽음과 장례가 만 하루만에 끝났다.
첫째는 며칠 동안 셋째를 찾았다.
갑자기 생겨난 일상의 공동은 좀처럼 메꿔지지 않았다.
이제는 마음대로 재우고 깨울 수 있고, 고장나도 마구 고치거나 버릴 수 있는 녀석을 데려오겠다며
TV를 샀다. 하지만 1년 동안 잠만 재웠다.
일곱 살이 된 넷째까지, 첫째를 제외한 세 녀석은 모두 저렇게 작은 귀를 가지고 있다.
작은귀친구들에 대해 연골형성기형증은 이제 꽤나 많이 알려져 있다.
셋째는 비대성심근증이 아니었을까. 신부전도 드물지 않다.
주변에 건강하게 열 살을 넘긴 작은귀친구들을 세어보면 한 손이 부족하지 않다.
넷째는 일곱 살이 되어서야 신장도 심장도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50년 남짓의 역사를 지닌 품종.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어 놓고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는지.
마음을 빼앗긴 다음에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내가 책임져 줄게. 너 하나만은.
최선을 다해 줄게.
맛있는 것을 먹고, 날고 기는 벌레를 사냥하고, 거대한 감자와 맛동산을 만들어 내렴.
내가 책임져 줄게. 마지막 날까지.
열 살이 훌쩍 넘은 첫째는 운동량이 줄고 식사량도 줄었지만 그런대로 안녕하다.
자신의 법을 만들고 그것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첫째를 보면서 새삼 이질적인 것들의 다양성, 질서있는 불규칙성의 건강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이 가장 아름답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있다.
이 멋진 고양이를 십 몇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키우게 된다면
나는 몇 가지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매일 두 번, 물기 많은 젖은 음식을 주어야지.
물은 깊고 넓은 것, 넓고 얕은 것, 움직이는 것으로 세 개쯤은 놓아야지.
모래는 좋아하는 것으로, 화장실은 두 개 놓아줘야지.
아주 좋아하는 간식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작성해야지.
중년이 되면 꼭 정기검진을 해야지.
고양이 건강에 대해 공부하고 나눌 수 있는 좋은 커뮤니티 회원이 되어야지.
노년이 되기 전에 안약을 넣는 법, 알약을 먹이는 법, 주사기로 물을 주는 법을 연습해야지.
아프지 않아도 주사기로 물을 주어서 무서워하지 않는 습관을 가르쳐야지.
아가들아, 모두 모두 건강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