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기본 전제로 깔고 말씀드립니다.
1. 오유 시게에서 북핵 관련해서 '김정일이 잘했다' 혹은 '김정일 만세다' 혹은 '우리민족도 드디어 핵을 가지게 되었구나' 라고 글을 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북의 핵실험과 (이어질 듯한) 북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합니다. 다만, 북의 핵실험은 옳지 않지만, 그게 단지 미쳐서 한 짓이 아니며, '북한의 입장'에서는 살 길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북한이 일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단 한가지 일관된 모습, 정말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이 위기상황을 조장하면서 벼랑끝전술을 편다면, 그것은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수십년 동안 이 '일관성'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94년에도 북한이 벼랑끝전술을 펼 때, 클린턴 정부는 전쟁과 양자회담 사이에 갈등하다가 양자회담에 응했고 결국 평화적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가 북한에만 이로웠을까요? 미국 쪽에서는 약간의 '손해'를 본 측면이 있었지만, 남한으로 보면 엄청난 이익을 얻은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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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까지 거슬러가기는 힘드니 94년 이후부터만 순서대로 이야기하죠.
1. 94년 제네바 협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미국과 한국 등이 KEDO를 설립하고, 북한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돕는다.
북한은 IAEA 사찰을 받고 NPT 체제에 가입한다.
라는 두 가지 조항에 서로 합의했습니다.
2. 북한은 IAEA 사찰을 받고 NPT 체제에 가입하는 등 약속을 지켰지만, 부시 정부는 위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아무리 우겨도 지나간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3. 김정일은 불안해합니다. 전세계에서 오직 미국만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데, 부시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과 양자회담을 제의해 보지만, 부시는 무시합니다.
4. 부시는 여러 번, 북한을 공격할 것 같은 제스쳐를 취합니다. 94년에 약속했던 지원은 전혀 지키지 않고, 제재 조치만 추가해 갑니다.
5. 김정일은 점점 더 불안해지며, 북한 내 군부세력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갑니다.
6. 김정일은 체제 내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기 위해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를 합니다.
7. 그래도 미국은 북한과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고, 계속 제재 조치만 추가합니다.
8. 이제 북한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완전 커졌습니다. 마지막 단계의 '벼랑끝외교' 즉, 핵실험을 합니다.
9. 미국은 PSI 등 강경 제재 조치를 추가할 뿐 '양자회담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10. 중국은 대북특사를 파견했으며, 북한의 향후 반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예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1)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안에 대응, 2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2)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전후해서 6자 회담에 참여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입장 선회에 대해 포기했다는 뜻이 되겠죠)
이런 두 가지 전망이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데, 북중 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를 관찰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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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이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북한을 얼르고 달래야 되느냐고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 답은 미국이 스스로 지구의 경찰국가를 자임했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미국이 지구의 경찰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1950년대 이래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며, 6.25 즉 한국전쟁의 우리 쪽 전쟁당사자가 바로 (남한과) 미국이기 때문이고, 한국전쟁 후 휴전회담의 우리 쪽 당사자가 (남한이 아닌)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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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과 민주당, 그리고 전세계적인 언론사들인 더타임지, 가디언지, 르몽드지 등이 한목소리로 미국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선 보수당과 민주당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부시의 정책이 잘못된 탓이다'고 주장하며, 보수당은 '클린턴이 예전에 잘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보수당의 주장에 따르면 1994년에 전쟁을 했어야 마땅했다는 뜻이 되지만, 어쨋든 어느 쪽 주장이 맞든, 결국 미국이 잘못한 셈입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서양의 저명한 정치인들과 언론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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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북한 김정일의 정권 연장의 꿈을 이뤄줘야 되는 거냐 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김정일의 정권 연장의 꿈은 저 또한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예전에 블룸버그 통신에선가 지적했듯,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한반도에서의 '예측가능성'이 날아가 버림과 동시에 남한의 정치적, 경제적인 신뢰도는 가장 큰 위협을 받게 됩니다. 김정일 가문의 독재가 중지되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지만, 그 가문의 끝장으로 인한 예측불가능한 사태는 미국조차 원하지 않으며, 남한으로서는 최대한 피해야 할 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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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정권을 연장시켜줘야되는 거냐 라는 의문에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인 대북정책은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을 통한 경제개방과 개혁을 통해 '연착륙'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북의 경착륙이 한국의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부동산 거품이 터져서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의 몇 십배, 몇 백배에 달할 지도 모릅니다. (개인적 예상일 뿐입니다. 아마 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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