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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 병신백일장이 열리는 이곳은 책게시판, 사랑해욥
대한민국의 어느 한적하고 지극히 평범한 동네, 도시는 아니고 그렇다고 뱀이 발에 채이며 굴러다니는 시골도 아닌 적당히 문명화된 동네의 한 구석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는 족히 장정 여섯이 팔을 벌리고 둘러싸도 다 감지 못할 만큼 그 둘레가 커다란 것이었다. 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면 우뚝 솟아 있는 느티나무가 마치 신령처럼 마을을 보듬고 있는 듯 보였으며, 사람들이 가길 두려워하는 뒷산의 음험하고 살벌한 기운을 끌어 모아 그 뿌리에 저장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영험해 보이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낡은 집이 한 채 바스스 스러질 듯 위태롭게 뼈대를 부지하고 있었다. 마을의 어른들은 그 집을 위험한 폐가라며 어린 아이들에게 절대로 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느티나무 아랫집은 해가 거듭 될수록 더욱 메마르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댔다. 마을의 늙은 노인들이 상을 치룰 때마다 느티나무 잎들이 부스스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젊은 여인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고, 어린 아이들은 이불로 온 몸을 칭칭 동여매고 정체모를 악한 기운에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봤어. 어젯밤에 오줌 싸려고 자다가 나왔는데, 담 너머 누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누군가하고 쳐다봤더니 저기 골목 끝집에 사는 호랑이네 아줌마 아니겠어.
야밤에 어디 가는 건지 궁금해서 몰래 뒤따라 가봤는데, 아줌마가 자꾸 느티나무 있는 데로 가는 거야. 안 그래도 어두운데 그 쪽에는 가로등도 하나 없지, 아줌마는 어느 순간 그림자도 안보이고, 잘 못 들은 건지 귀신이 나타난 건지 갑자기 폐가에서 방울 두들기는 소리가 나는 거 있지. 오금이 저려갖고 집으로 부리나케 뛰어왔다니까.”
“에이, 설마 아줌마가 뭐하려고 굳이 밤에 귀신 집으로 찾아가. 우리 엄마가 거긴 가는 데 아니랬어. 그리고 밤중에 나오면 귀신이 잡아간대. 철이 너도 쉬 싸려면 화장실 들어가서 싸지 밖에 나와서 싸고 그러냐? 드럽게.”
“야, 우리 집 화장실 너무 무섭단 말이야. 불도 안 켜지고 어차피 밖에 나와서 싸는 건 똑같거든? 아무튼 그 폐가 수상해. 전번에도 민호가 그 집 근처에서 처음 보는 아이가 돌아다니는 거 봤댔잖아. 내가 언제 한번 만만의 준비를 해갖고 가봐야겠어. 윤희 너도 따라와! 알았지?”
“나도? 내가 왜? 난 그 폐가에 아무 관심도 없어. 가려면 너 혼자 가서 귀신구경 실컷 하고 와라.”
마을에는 아홉 살 꼬마아이가 셋 있었다. 철, 윤희, 민호.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발가벗고 지내며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지낸 죽마고우였다. 며칠 전부터 세 아이 사이에서는 으스스한 폐가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라 무서운 것이 제격인 것도 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다는 폐가에 제법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면서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 철이는 유독 모험심이 뛰어난 아이로 윤희가 무서운 것에 몸서리치는 것을 알면서도 폐가에 가 보기 위해 무작정 두 아이를 끌어들였다.
“야아, 나 무서워.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엄마한테 들키면 무진장 혼날 것 같단 말이야.”
윤희는 철이의 뒤에 숨어서 혹시 뭐라도 나타날까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철이의 옷자락을 꼭 쥔 윤희를 빤히 쳐다보던 민호는 윤희의 손을 빼내어 꼭 잡았다.
“윤희야, 그렇게 눈 감고 있으면 엎어져.”
“야야 그냥 저 대문 너머만 힐끔 보고 튀는 건데 뭐가 그렇게 무섭냐? 오늘은 별로 어둡지도 않고만. 하여간 너는 겁만 많아서 안 되겠다. 쯧쯧.”
느티나무 뒤에 숨은 세 아이는 숨을 죽이고 적진을 노리는 병사처럼 폐가를 쳐다보았다. 달빛에 시커먼 나무 그늘이 더 짙어져 폐가는 더욱 어둡게만 보였다. 고사리 같은 철이의 손이 허공을 한 번 휘휘 젓자 아이들은 조용히 담 밑으로 이동했다.
“담이 너무 높아서 안 보여. 그냥 포기하고 가자.”
“여기까지 와놓고 무슨 포기야. 민호야, 네가 등 대주면 내가 올라가서 보고 올게. 내가 내려올 때까지 움직이면 안 돼.”
“넌 나보다 몸집도 크면서 꼭 네가 올라가야겠냐.”
민호는 투덜거리며 땅을 짚고 철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등을 대주었다. 막무가내 철이 성격에 이 일도 금방 끝나지 않으리란 예감을 받은 윤희는 지친 듯 민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철이라면 담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 싶으면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 안까지 들어가 탐험을 할 아이였다. 윤희가 세상에 무서워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봐주지 않는 철이였다. 윤희는 제발 무탈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신께 기도하기로 했다.
엎드린 민호는 고개 바로 앞에 눈을 너무 세게 감아서 코를 찡긋거리는 윤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애쓰며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세 네 살적부터 봐온 얼굴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윤희가 낯설었다.
아니, 낯설다기보다 자꾸 이목구비를 뜯어보게 된다고 해야 될까, 신기하게 생겼다고 해야 될까. 그 촘촘한 속눈썹과 낮은 코, 작은 입술과 통통한 볼을 보다보면 등을 올라탄 철이가 자꾸 발로 어깨뼈를 아프게 누르는 것도 힘들어서 팔이 덜덜 떨리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어? 저거 뭐야?”
적막을 깨고 당황한 철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장난하지 마. 안에 뭐 있어?”
“뭐가 있긴 있는데, 어두워서 잘 안보여. 고양인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 아멘.”
“임윤희, 좀 조용히 좀 해봐, 정신 사나워. 지금은 집중을 해서 저게 뭔지 잘 봐야 되는데, 어?”
“뭔데. 뭐가 있는 거 맞아? 잘 못 본거 아냐?”
“야, 저거 사람인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름이 확 올라온 윤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폐가뿐만 아니라 주변의 집까지도 들릴 만큼 엉엉 울어댔다. 민호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등 위에 올라탄 철이도 잊고 벌떡 일어나 윤희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철이는 중심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아악!”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철이는 벌써 저만치 혼비백산해서 뛰어가는 두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래, 민호가 언젠가부터 나보다 윤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어. 매번 저 기집애 손 잡을 기회만 노리고, 내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내 말은 귓구녕이 아니라 콧구녕으로도 안 듣지. 흥, 어디보자. 내가 저 기집애 못살게 괴롭힐꺼야. 아, 그렇다고 정말 둘이서만 도망치냐,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송곳이 귀로 들어와서 푹푹 쑤시는 것 같네. 나도 혼나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되는데......"
철이는 자신만 두고 도망치는 두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가슴 속에 불타오르면서 동시에 윤희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순간 휙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던 얼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아이는 누구일까? 의문이 흙에서 올라오는 싸한 냄새와 섞이며 철이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 힘겹게 두 입술을 맞부딪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썩을 것들. 울화가 치밀어서 더 이상 못 쓰겠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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